다양성을 사랑하다

요즘 이찬혁에 미치는 이유

by 꽃고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물론, 확신이 극에 달해 남을 무시하는 정도에 이르면 나르시시즘이 되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에 대해 불확실하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나는 실수를 왜 반복하는지.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마흔이 넘어 새로 직업과 터전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녀를 키우면 또 다른 자아를 마주하지 않는가. 이뤄놓은 것 없이 죽음을 생각할 때 또 얼마나 허무하고 불확실한가. 사람들이라는 주어를 썼지만, 응당 내 얘기다.


요즘 사랑에 관한 노래를 많이 듣는다. 어쩌다 해피엔딩의 <사랑이란>을 이백 번 정도 듣고 불렀다가, 얼마 전부터는 BIG Naughty의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을 오십 번 듣고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을 반복 재생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만큼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것이 없겠지만, 나는 이 사랑을 표현하고 말하는 이들의 예술성에 주목하고 싶었다. K-pop을 사랑하는 딸들 덕에 차에서 주야장천 아이돌 노래를 듣다가 오빠들이 “인제 그만 좀 듣자”라고 말하면 환영하던 2025년 여름. 나는 찬혁의 다양성에 푹 빠진 것이었다.

(저 아이돌 노래도 사랑해요, 미움받지 않을 용기 없음 ㅋㅋ)


아, 좋다. 눈물이 쿠릉쿠릉 맺힌다. 모든 음악이 똑같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행복한지. 흔하디흔한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고민과 사유를 입맛과 취향대로 풀어내는 그 행위가 어찌나 감미롭고 감동이 되는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동안 차마 어휘와 예술력이 딸려서 말하지 못했던 그것을 대신 말해줬을 때의 해방감. 나의 불확실성이 틀리지 않다고 말해주는 그 위로. 우리는 죽지 않은 살아있는 존재라고 토닥여주는 구원과도 같은.


기독교 월간지 <복음과 상황> 6월호의 주제는 “멸종”이었다. 46쪽 녹색정치연구소 박진영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양한 사회가 더 좋은 사회이고, 위기에 더 강한 사회라고 믿는다. 생물다양성이 있어야 멸종을 피할 수 있듯이, 정치 다양성이 있어야 핵 위험, 기후위기,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


똑같이 생긴 나무도 없고, 똑같이 생긴 쌍둥이도 없다. 이 사과가 맛이 없으면 저 사과가 맛있어서 괜찮다. 아니 둘 다 맛이 없어도 좋다. 시고 떫은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못하면, 다른 존재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하니 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다양함이 멸종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은 옳다. 이찬혁은 무대에서 살아남았고, 당신도 나도 지구별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안무에 런지, 푸쉬업이 들어가고 댄서와 함께 즐기는 무대라니!


사진 출처: https://youtu.be/pcf9aH7WhN0?si=-p5jnnhEaN98z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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