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83 - 영국 Bath
오늘은(2019년 6월 5일) 어젯밤을 보낸 Bristol Durdham Park에서 3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Bath로 향한다. Bath가 목욕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Bath는 온천 휴양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Bath를 상징하는 Roman Bath와 The Crescent를 돌아볼 예정이다.
우선 아톰을 적당한 곳에 주차시켜야 한다. 다행히도 Roman Bath에서 가까운 곳에 공용 주차장이 있다. 아톰 길이가 6m라서 뒷면에 여유 공간이 있는 공용 주차장이라면 주차가 가능하다. 이 보다 큰 카운티 같은 경우에는 주차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4시간에 6.4파운드 티켓을 구입. 그러니까 4시간 이상 있을 예정이면 다시 돌아와 주차 티켓을 끊어야 하는 상황. 그래 4시간 안에 Bath 여행을 마무리해보자. 시간 제약이 있는 여행을 해야만 할 때가 나는 싫다.
일단 Roman Bath로 직행. 입장료는 비싼 편이다. 1인당 20파운드나 한다. 오디오 가이드와 영상 등을 활용한 다양한 방식의 해설을 포함한 가격이니 수긍할 만하다.
사진이나 다양한 서적에서 이야기되었던 Bath라 로마인들이 만들어 사용했던 온천이 18세기에 잉글랜드 상류 사회의 온천 휴양지로 발전했으며 그 중심이 Roman Bath라는 사실은 사전에 알고 있었고 소위 인증 샀을 찍는 건물도 알고 있었다.
옥색 빛깔의 녹조 낀 대욕탕에서는 과거 상류 계층 사람들이 누렸던 화려한 온천욕을 느끼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따라서 Roman Bath 건축물에서 큰 감흥이 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전시물에서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물의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탕 속에 던졌던 유물들 중에 현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과거의 신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문구들.
thief should lose his mind and his eyes.
the person who has stolen my bronze pot is utterly accursed.
이 모든 전시물은 로마가 지배하던 시기에 나온 유물들이다. 이 당시에도 이곳은 상류층들이 이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들이 물의 신에게 기원한 것은 도둑들에게 저주를 내려달라는 것이다. 신은 사랑을 베푸는 존재가 아니라 저주를 내려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 문구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면서 한편으로 진짜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잠깐의 웃음을 선물해준 유물들을 둘러보고 서둘러 다음 방문지인 The Crescent. 구글을 이용해서 열심히 찾아가 본다. The Crescent 인근에는 The Crescent와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18세기에 Bath가 상류층의 온천 휴양지로 부상하자 이들을 상대로 렌트해주는 임대주택 같은 곳. 30여 채의 가옥이 초승달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는 매우 독특한 건물이다. 지금은 호텔과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건물 앞에 있는 푸른 잔디밭에 서서 The Crescent를 바라본다. 건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 The Crescent 가옥 안에서 잔디밭을 바라보면 시선이 잔디밭 어떤 한 지점에 모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떤 가옥에서든 푸르고 넓은 잔디밭 전체를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비슷한 풍경을 보게 해주는 배치. 현대에도 풍경은 건축물의 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보면 18세기에 이런 배치 구조를 가진 건물을 만들겠다는 발상이 약간은 놀랍기만 하다.
주차 시간 4시간을 꽉 채우고 Bath를 떠나 오늘 저녁을 보낼 다음 목적지 Castle Combe로 출발. 내비게이션 Maps.me가 또 샛길을 알려준다. 이럴 때에는 내비게이션을 때러 주고 싶다. 한국 내비가 최고야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또 힘든 오후가 되고 있다.
너무 좁은 길을 가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창문에 긴 줄의 상처가 났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은 너무나 예쁘고 조용한 작은 마을. 마을에 도착해 보니 집의 방문에 걸어놓았던 엽서 사진의 그 장소였다. 이럴 수가.
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이 빠져나가 넓은 주차장에는 차 몇 대만이 남아 있다. 주차장 한쪽에 정박 준비를 마치고 나서 예쁜 마을 저녁 산책에 나서본다.
교회를 거쳐 어떤 골목길로 들어서 나오다 보니 대 저택처럼 보이는 Manor House Hotel가 나타났다.
넓고 잘 정돈된 잔디밭에 미니 골프코스와 체스 판이 놓여 있다. 손님들이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정원이다. 호텔 손님은 아니지만 Castle Combe 마을을 방문한 손님이니 우리도 손님처럼 한동안 휴식을 취해본다. 심지어 정원에 Wifi까지 된다. 충분히 이 아름다운 정원을 즐기고 나서 호텔 정문으로 나왔다.
호텔 정문이 있는 근처에 방문객 손님들을 위한 화장실이 있다. 캠핑카 여행에서 공용 화장실은 항상 반가운 존재. 그런데 이 화장실에는 뜨거운 물까지 나온다. 이럴 때에 항상 우리는 유혹을 느낀다. 이렇게 소중한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우리는 화장실에서 뜨거운 물로 수건 목욕을 할 수 있었다.
화장실을 거쳐 다시 마을 안쪽으로 들어와 보니 이 마을 전체가 영화 세트 장으로 사용된 적이 있음을 알려주는 안내판도 보인다.
그리고 창문에 Brexit를 반대하는 문구(STOP BREXIT)를 적어 놓은 집들이 보인다. 영국인들에게 Brexit가 얼마나 뜨거운 주제인지를 이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알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