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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Oct 23. 2022

부유하고 따뜻한 색 황금색

 


가을은 황금색의 계절이다노란 은행잎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킬 때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나무라 부른다또한 누렇게 익은 벼가 가득한 넓은 들판을 황금빛 들판이라고 부른다단지 색이 황금빛이라는 뜻뿐만 아니라우리에게 가장 귀한 곡식인 벼가 가득한 들판이 마치 금이 가득한 금고 속을 보는 뿌듯한 느낌 까지를 포함하는 표현일 것이다


황금은 왜 금색일까?

금색 혹은 황금색은 귀금속 금의 색이라는 말이다. 여러 가지 금속 중 금의 색은 노란빛을 띠면서도 광채가 나는 독특한 색이다. 그렇다면 금의 독특하고 광채 나는 노란빛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금속 내에는 자유전자라는 것이 있다. 결합력이 약한 금속 원자핵의 가장 바깥 전자껍질에 있는 전자들은 한 원자핵에 붙잡혀 있지 않고 금속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는 자유전자가 된다. 결국 모든 금속 원자들은 자유전자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상태가 된다. 빛이 금속 표면에 도달하면 빛이 가지고 있는 전자기파의 에너지가 금속에 전달되는데, 이 에너지를 금속 내의 전자들이 흡수하게 된다. 스프링을 당겼다 놓으면 에너지를 흡수하여 진동을 하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듯, 에너지를 흡수한 자유전자들은 잠시 높은 에너지 상태가 되었다가 원래의 에너지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때 흡수했던 가시광선의 파장과 같은 빛을 다시 내놓게 된다. 그래서 마치 금속이 그 파장의 빛을 반사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런데 금속에 따라 흡수할 수 있는 가시광선의 에너지가 조금씩 다르게 된다. 원자 번호가 79인 금의 자유전자들은 가시광선 중 초록색과 파란색, 남색, 보라색의 가시광선은 에너지가 너무 높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자 안쪽의 전자껍질에 있는 전자에 흡수되고, 금 표면의 자유 전자는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가시광선을 흡수한 후 다시 방출하기 때문에 노란빛을 내게 된다. 반면에 은(silver)은 대부분의 가시광선 에너지를 표면의 자유 전자들이 흡수한 후 다시 방출하기 때문에 백색광과 같은 흰 광택을 내게 된다. 





우주로부터 온 선물 

금은 지구에서 만들어진 금속이 아니다. 우주에서 만들어진 금은 운석들에 실려 지구가 생성되기 시작한 뒤 2억 년 후에 지구로 왔다. 지구가 만들어지는 동안 녹은 철은 지구 중심부로 가라앉았는데, 이 과정에서 생성 초기에 있던 금과 백금 등의 귀금속 대부분이 철과 함께 지구 중심부로 모였다. 지구 중심핵에는 지구 표면 전체를 4 미터 두께의 층으로 덮을 만큼 많은 양의 귀금속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구 중심부에 있는 금을 빼내어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지각층에도 이런 귀금속이 생각보다 많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는 지각층의 금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지각층에 존재하는 금은 중심핵이 형성된 후 지구를 강타한 대격변 운석 소나기로부터 왔다고 한다. 즉 운석에 포함되어 있던 금들은 내부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지각층에만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금은 원소 기호가 ‘Au’인데 이는 고대 라틴어로 금을 가리키는 말 ‘아우름 (aurum)’에서 왔으며, 영어의 gold는 ‘노란색’을 의미하는 고대 독일어 gulp와 인도-게르만 공통의 ghel에서 왔다. 순금은 연성(延性, ductility)이 뛰어나 10 g의 금으로 무려 2.8 km까지의 가는 금선을 만들 수 있으며, 두드려 얇게 펼칠 수 있는 성질인 가단성(可鍛性, malleability)도 가장 좋은 금속으로 10 g의 금으로 거의 10 m2의 얇은 금박을 만들 수 있다. 순금은 대부분의 물질과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색이 변하지 않으며 냄새나 맛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금광석

(사진 출처: https://dasenmining.com/ko/what-is-gold-ore-and-what-is-it-used-for/)


순금은 무르기 때문에 장식품을 만들거나 가공할 때 다른 금속과 섞어 합금을 만들어 사용한다. 합금에 사용하는 금속으로는 구리, 은, 팔라듐, 니켈, 알루미늄 등이 있으며 합금의 종류나 비율에 따라 색이 달라지게 된다. 금반지나 금 목걸이 등에 24K, 18 K, 14K 등의 숫자가 적혀 있는 경우를 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K는 영어의 캐럿(Karat)을 의미하며, 합금 중 금의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순금은 24K이며, 18K는 금이 18/24 즉 75%이고 25%는 다른 금속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12K는 금이 50%가 된다. 구리, 은, 팔라듐과 합금을 만들면 노란색 계열이 되고, 니켈이나 팔라듐 비율이 높아지면 흰빛을 띠는 화이트 골드가 되며, 구리의 비율이 높아지면 핑크 골드가 된다. 


금에서 순도를 말할 때 사용하는 캐럿이라는 단위는 다이아몬드에서의 캐럿(Carat, 영어 스펠링이 다름)과는 전혀 다르다. 다이아몬드의 캐럿은 바로 다이아몬드의 무게 단위로 1 캐럿은 0.2 g에 해당한다. 옛날 지중해 연안에 서식하던 콩과 비슷하게 생긴 캐럽(Carob) 나무 열매의 무게가 거의 일정해 무게를 측정하는 추로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캐럽 콩 한 개의 무게가 평균 0.2 g이었다.


금색의 역사

금이 언제부터 알려지고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등 다양한 고대문화에서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희귀한 금속인 금이 가지고 있는 선명한 색상과 독특한 광채, 그리고 금속 최고의 유연성으로 인해 수천 년 동안 예술가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투탕카멘의 장례 가면(dead mask)으로 잘 알려진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는 많은 양의 금 장식품이 발견되었다. 이 가면은 11 캐럿의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보석으로 상감된 젊은 왕의 얼굴을 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보잘것없는 어린 왕의 무덤인데도 엄청난 양의 금 장식품이 발견된 것을 보면 고대 이집트가 얼마나 금을 많이 사용하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태양신을 믿던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금은 태양빛과 같은 광채를 지닌 물질로 여겨져 ‘신들의 살’로 알려졌으며 불멸의 상징으로 파라오의 무덤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는 나일강 주변에 흩어져 있는 금광에서 흘러나온 강 모래로부터 사금을 추출하여 많은 양의 금을 사용할 수 있었다. 


투탕카멘 장례 가면



금은 비잔틴 제국(4-15세기)에서는 예술 창작의 핵심이 되었다. 금은 영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신성한 빛으로 여겨졌으며 기독교 성화 등에 많이 사용되었다. 모자이크, 스테인드 글라스, 건축물 등에도 금박이 많이 사용되어 화려한 광채를 내는데 이용되었다.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기인 13세기와 14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많은 양의 금박이 그림에 사용되었다. 이 시절에는 기독교 교회가 예술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 중 하나였기 때문에 금박은 종교적인 그림에서 신성성을 나타내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15세기 후반이 되면 금을 직접 그림에 사용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금을 직접 바르기보다는 다른 색을 이용해 금색을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보티첼리는 금을 물감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금을 미세한 분말로 만들어 계란 흰자와 같은 점착제와 섞어 발랐다. 점착제가 마른 후 조심해서 벗겨내면 금의 광채만 남게 된다. ‘비너스의 탄생’을 자세히 보면 비너스의 긴 머리카락과 그녀가 서 있는 조개껍질의 가장자리 등이 가는 금선으로 강조되어 있다. 


황금빛 노란색을 좋아했던 화가 중 반 고흐가 있다. 고흐는 빛이 좋은 남프랑스에서 노란색이 많은 그림들을 그렸다. 황금빛으로 칠해진 ‘해바라기’ 외에도 ‘밤의 테라스 카페’,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에서 황금빛 노란색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가 사용한 노란색 중에는 크롬 옐로가 있다. 크롬이 들어있는 홍연광에서 크롬을 추출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노란색이 발현되는데 금빛에 가까운 크롬 옐로를 사용하여 해바라기를 그렸다. 그런데 네덜란드와 벨기에 과학자들이 2년간 X레이 장비를 이용해 고흐의 '해바라기'를 분석한 결과 그림 속의 노란 꽃잎과 줄기가 올리브 갈색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황금색을 많이 사용한 화가로서 근대 상징주의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화가가 되기 전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금세공 훈련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금은 그에게 영감을 주는 그림의 재료가 되었다. 그의 그림 ‘아델르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 ‘키스’(1908) 등 많은 작품 속에 황금빛이 가득 차 있다. 그는 작품들에 황금 안료와 금박을 사용하여 황금빛을 더욱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고흐의 '해바라기'와 크림트의 '키스'



금빛 향신료사프란

노란 해바라기, 수선화, 민들레, 복수초, 산수유, 국화 등 많은 꽃들이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금색에 가까운 꽃으로 피어난다. 노란색을 내는 과일이나 꽃들은 플라보노이드(노랑을 뜻하는 라틴어 플라부스 flavus로부터 유래)나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를 이용하여 고유한 색을 낸다. 오랫동안 인류는 이런 색소를 지닌 식물들을 이용하여 노랑 색소를 만들었다. 그런데 가장 질이 좋은 황금색 색소는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노랗지 않은 꽃에서 얻어졌다. 


바로 사프란 (Crocus sativus)이라는 꽃이다. 가을에 피는 가을 크로커스로도 알려진 이 꽃은 낮은 키의 보라색 꽃으로 꽃 속에 있는 진홍색 암술이 황금과 같이 귀한 대접을 받는 꽃이다. 가을에 핀 꽃의 암술머리를 따서 말리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인 사프란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금값만큼 비싼 향신료였으며, 2022년 8월 현재에도 최고급 사프란은 1 g에 3만 원 가까운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어 1 g에 75,000원 하는 금의 반값 가까운 금액이라 할 수 있다. 


사프란 꽃과 암술로부터 만들어진 사프란 염료


10월 중순 꽃의 수확기가 되면 모든 꽃은 수작업만으로 꺾어야 한다. 그 후 꽃의 중심부에서 암술머리(실제 샤프란)를 채취하고 조심스럽게 말려야 한다. 사프란 1 kg을 얻기 위해서는 85,000 송이 이상의 꽃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프란(saffron)이라는 이름은 ‘노랑’을 뜻하는 아라비아어 ‘자파란(zafaran)’에서 왔다고 한다. 고대에도 황금색을 닮은 노란색 물감을 원했지만, 금색과는 다른 녹색이나 갈색 계열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사프란은 가장 금색에 가까운 노란색 물을 들여주는 귀한 색소였다.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200년경에서 기원전 1150년) 이후부터 사프란을 재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프란은 과거부터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중세부터 음식에 색을 입히고 맛을 내거나 취하게 하는 향신료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주로 요리에 쓰이지만, 과거에는 비단, 머리카락, 손톱을 위한 값비싼 적황색 염료로도 유명했으며, 중세 필사본에서 금박을 대신하는 중요한 대용품이었다. 사프란은 매염제가 필요 없이 천에 물을 들일 수 있는 염료다. 사프란의 암술머리에 있는 크로세틴(crocetin)이라고 불리는 카로티노이드 성분 때문이다. 사프란으로 물을 들이면 노란색과 발그스레한 색의 중간색이 나오기 때문에 황금색에 가깝게 보이게 된다. 


사프란의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종종 ‘가짜 사프란’이라고 불린 잇꽃(홍화)을 사프란으로 속여 팔기도 하고 분말 형태의 사프란에 잇꽃을 갈아 섞어 팔기도 했다. 15세기의 어떤 독일 상인은 불량품을 판매하다 적발되어 그가 만든 가짜 사프란을 섞은 불량 사프란과 함께 생매장을 당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였다. 

 

금색의 심리학

금은 성공과 성취 그리고 승리를 나타내는 색이다. 또한 긍정적이며 부유함과 따뜻함과 함께 화려함과 고급의 상징이기도 하다. 금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좋아하고, 인생을 만끽하며, 남을 잘 돌봐 주는 성향이 많지만, 때로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오만에 빠지기도 한다. 부유함을 높은 이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살면서 물질적인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도덕성도 높아 옳은 길을 따라가려는 성향이 있으며 리더십도 좋다고 한다.


금색이 가진 특성인 부유함, 욕망, 우아함, 사치스러움, 성공 등의 이미지로 인해 많은 회사들이 금색의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패션 브랜드 게스(Guess), 초콜릿 회사인 린트(Lindt),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MGM과 워너브라더스(Warner Bro.), 자동차 회사인 쉐보레, 람보르기니, 포르셰, 그리고 명품 브랜드 샤넬과 명품시계인 롤렉스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은행나무, 계수나무, 생강나무, 튤립나무, 이팝나무, 그리고 회화나무. 이 나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가을이면 금색으로 변하는 나무들이다. 이러한 나무들이 가을이면 황금빛을 내는 이유는 잎에 있는 카로티노이드의 일종인 크산토필(xanthophyll) 색소 때문이다. 이 물질은 엽록소와 함께 잎에 있으면서 식물들을 태양의 피해로부터 보호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가을이 되어 엽록소가 먼저 잎에서 사라진 후에도 크산토필은 오래 남아 본연의 색인 황금빛 노란색으로 가을 잎을 물들인다. 무채색의 긴 겨울을 보내야 할 우리들에게 따뜻한 금빛 위로를 보내는지도 모르겠다. 이 가을, 황금빛 물결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계수나무 단풍




* 이 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2 가을호에 실린 제 과학 칼럼입니다.

* 사진 출처: KRISS 2022년 가을호 사보, Pixbay, 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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