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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Nov 27. 2022

나이 듦과 새로움을 함께 가진 색, 은색 Silver

할레아칼라 실버스워드(silversword)


하와이 마우이섬의 할레아칼라 국립공원에는 독특하게 생긴 식물이 자란다. 은빛의 작은 칼 같은 잎을 가진 다육식물인데 이름은 할레아칼라 실버스워드(silversword). 하와이 말로는 ‘아히나히나(ahinahina)라고 불린다. 실버스워드는 90 년 또는 그 이상 살 수 있는데, 일생에 단 한 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해발 3055 미터의 할레아칼라 산 정상에서 이 은빛의 식물을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정말로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은과 은색

은색은 금과 같은 귀금속 은(銀, silver)의 색을 말한다. 금속 은의 자유전자들은 가시광선의 대부분의 빛을 흡수해서 에너지가 높은 상태로 올라갔다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면서 흡수했던 대부분의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하기 때문에 거의 백색에 가까운 금속 특유의 광채를 낸다. 그래서 은색을 원래 금속색에 가깝게 표현할 때에는 은분을 사용한다. 광택이 나지 않는 은색은 옅은 회색 계열의 색으로 표현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은색의 코드는 Hex #C2C2C2로 나타낼 수 있다. 모니터와 같은 RGB 색상 계열에서는 빨강(R), 녹색(G) 파랑(B)이 각각 76.08% 씩 섞인 상태다. 한편 프린터에서 인쇄할 때 사용하는 CMYK 색상에서는 시안(Cyan), 마젠타(Magenta), 노랑(Yellow) 성분은 0%이고 검정(Key plate)이 24% 섞인 색이다. 하지만 다양한 검은 계열의 색조로 표현될 수 있다. 


은광석

은은 금과 같이 선사시대 사람들이 발견하여 사용하였던 7개의 ‘고대의 금속’ 중 하나이다. 은이 발견되자 뽀얗게 빛나는 광채의 아름다움과 함께 희소성으로 인해 장식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화폐로도 사용되었다. 은은 화학원소 기호가 Ag인데, 이는 은을 가리키는 라틴어 argentum(아르겐툼)으로부터 왔다. 순은은 무르고 다른 금속에 비해 전기와 열의 전도도가 뛰어나다. 은은 다른 어떤 금속보다도 빛을 잘 반사하는 성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울을 만들 때 유리의 뒷면을 은으로 코팅하게 된다. 


자연에서 은방울꽃, 은사시나무, 은여우 등 은색과 관련된 이름을 가진 식물이나 동물이 더러 있지만 실제로 은색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많은 물고기들은 빛나는 은색 비늘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물고기들의 은빛 피부는 특별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빛을 반사시킬 때 편광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도 반사된 빛이 일정하게 보여 빛의 변화를 추적하는 포식자들에게 덜 위험하다고 한다. 


백발의 과학

 

영화 노인과 바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 민요 중 ‘Silver threads among the gold(금발 중에 은발)’라는 노래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금발이던 머리카락이 은색의 흰 머리카락으로 변해가는 모습 속에서 인생이 빠르게 흘러감을 실감하면서도, 은발로 변해가는 모습이지만 서로에겐 언제나 젊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노년 부부의 사랑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화가 되면서 검은 머리도 마찬가지로 흰색으로 변해가는데 이 빛깔이 은빛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은발(銀髮)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년과 관련된 용어 중에는 ‘실버(silver)’라는 말을 붙여 사용하곤 한다. 예를 들어 노인 복지 시설을 ‘실버타운(silver town)’이라 하고, 노년 관련 사업을 ‘실버산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노화되면서 머리는 은발이 될까?


사람들의 머리카락 색은 모낭에 존재하는 멜라닌 색소와 유전자 속에 있는 유전 암호에 의해 결정된다. 머리카락의 모낭에는 두 종류의 멜라닌 색소가 있다. 즉 유 멜라닌(eumelanin)과 페오 멜라닌(pheomelanin)이다. 유 멜라닌도 2가지 종류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갈색 유 멜라닌이고 다른 하나는 흑색 유 멜라닌이다. 유 멜라닌의 종류와 농도에 따라 검은색 및 갈색 머리가 되며 유 멜라닌의 양이 아주 적을 때에는 금발이 된다. 페오 멜라닌은 분홍 혹은 붉은빛을 띠며 유멜라닌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페오멜라닌만 존재하게 될 때 붉은색 머리카락이 된다. 이러한 멜라닌들은 멜라닌을 생성하는 멜라노사이트라고 불리는 모낭 세포에서 발견되는데,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멜라노사이트의 수는 줄어들고 따라서 멜라닌도 적게 생산되게 된다. 이렇게 멜라닌 색소가 줄어들게 되면 모발에 색소가 부족해져 모발은 은회색을 띠게 된다. 연구에 의하면 30세 이후 10년 동안 멜라닌 생산량은 10% 내지 20% 정도 감소하고, 50세가 되면 남성과 여성의 절반은 적어도 50%의 흰머리를 갖게 된다고 한다. 은발은 실제로 완전히 흰색은 아니며 빛이 머리카락에 굴절되면서 은빛처럼 보이는 일종의 광학적 착시현상이라고 한다.


은색의 심리학


은색 자동차(그림 출처:Pixbay)


은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풍요, 부, 모더니즘과 새로운 기술을 상징한다. 금보다는 희귀성이 높지 않지만 여전히 은도 희귀한 귀금속으로 종종 귀족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연관되는 느낌을 준다. 은색은 노년, 미덕, 매혹, 연약함, 평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달빛에 비쳐 은백색으로 보이는 물결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로 은파(銀波) 혹은 은결이라 하는데 고요하고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새 차를 구매할 때 가장 선호하는 색깔은 흰색 자동차이지만 은색 차도 회색과 검정에 이어 네 번째로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일치하고 있다. 은색은 매끈해 보이지만 너무 과장되지 않다. 은색 자동차를 선호하는 운전자는 실용적이고 책임감이 있지만 인생에서 혁신적이고 약간 화려한 것들을 즐기고 감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회사 로고에 사용된 은색은 균형, 중립, 그리고 차분함으로 느껴지며, 검은색 등 다른 색상과 함께 실버를 사용한 로고는 고급스럽게 보이며 첨단 기술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은색의 파인 사과인 애플사 브랜드 로고나 벤츠 자동차,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많은 자동차 회사의 로고 등에 은색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이러한 고급스러움과 함께 첨단 기술의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은 세아그룹의 사보 <세아 가족> 2022년 9-10월호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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