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용기 Apr 23. 2023

슈퍼마켓에 간 과학자-1

쇼핑 카트

슈퍼마켓에 간 과학자-1


쇼핑 카트

박용기(한국표준과학연구원 명예연구원, 맛있다 과학 때문에 저자)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기 위해 아내와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외손녀를 데리고 대형 마트에 갔다. 마트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할 일은 쇼핑 카트를 하나 챙기는 일이다. 아내와 외손녀는 먼저 마트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카트가 차곡차곡 겹쳐져 정렬되어 있는 카트 보관소에서 카트 하나를 뽑아 손잡이를 소독하였다. 손잡이와 주변부 소독은 전 세계적인 코비드-19(covid-19)의 유행 이후 감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손잡이 소독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것인지 때로는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사진출처: 경향신문)



카트 손잡이의 불편한 진실

2021년에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물건의 표면에 남아있는 바이러스를 통한 COVID-19 감염 위험은 낮다는 새로운 지침을 발표하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호흡기 비말을 통해 전염되며 다른 물체에 남아있는 바이러스를 통해 전염되는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쇼핑 카트에는 박테리아와 같은 많은 미생물들이 남아있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한 연구에 의하면, 대장균의 경우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 버튼,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기저귀 교환대, 식당 테이블 상판보다 쇼핑 카트 손잡이에 더 많이 존재하였다. 


비록 코로나 전염예방에는 크게 기여하지 않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쇼핑 카트의 소독이 일상화됨으로써 다른 질병으로부터 보다 안전하게 된 것은 좋은 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쇼핑 카드의 소독은 핸들에만 집중하면 안 되고, 카트의 측면과 유아용 접이식 바구니 손잡이와 바닥 트레이 등도 하도록 권하고 있다. 특히 젖은 카트 손잡이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이동 경로가 될 수 있어 손잡이는 건조한 후 카트를 소독하여 사용하기를 권하고 있다. 이는 남이 방금 놓고 간 카트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외손녀는 어렸을 때 쇼핑카드의 유아용 의자에 앉기를 무척 싫어했다. 다른 아이들은 잘 앉아 있거나 심지어는 좋아하기까지 하였는데, 외손녀는 카트에 앉기를 거부해 장을 볼 때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쇼핑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유아용 의자는 편리하지만 위험한 요소도 많다. 미국의 경우 매년 20,000 명이 넘는 아이들이 쇼핑 카트에서 떨어져 병원 응급실에 가는 사고가 발생한다고 한다. 더욱이 아주 어린아이들은 카트의 유아용 의자에 앉아 카트의 핸들을 손으로 만지거나 빨기까지 한다. 또한 유아들이 카트의 물건을 담는 곳에 날고기나 가금류 등과 함께 앉아 있는 경우 급성 위장염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과 캄필로박터균(campylobacter)에 감염될 위험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세균은 날고기나 가금류 포장에서도 검출되기 때문에 유아들이 옆에 앉아 이러한 물건들을 만지고 그 손으로 과자를 먹거나 입에 넣음으로써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손녀가 어렸을 때는 쇼핑 카트의 소독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외손녀가 쇼핑카드를 싫어한 게 위생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쇼핑 카트의 역사

쇼핑 카트를 밀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 큰 매장에서 바퀴 달린 카트가 없었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가끔 아내는 살 물건이 별로 없다고 손으로 드는 작은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들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 가다 보면 생각하지 않았던 필요한 물건이 보여 어느새 장바구니는 손으로 들고 다니기에 부담스러운 무게로 변하게 된다. 이쯤에서 나는 다시 매장 밖으로 나가 바퀴 달린 쇼핑 카트를 가져온 경험이 있다. 그렇다면 이 편리한 쇼핑 카트는 언제 누가 만들었을지가 궁금해진다. 


우리가 쇼핑 카트로 부르는 것은 미국식 영어 이름이고, 영국이나 호주에서는 트롤리(trolly)로 불린다.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 쇼핑 카트도 초기에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형태로 시작되었다. 물론 바퀴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기원전 3,500년 경의 메소포타미아로 가야 하겠지만, 그 부분은 생략한다면 슈퍼마켓에서 사용하는 쇼핑 카트는 1930년대 중반으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골드만(Sylvan Goldman)이라는 사람은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슈퍼마켓 체인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고객들이 더 많은 식료품들을 나르기 편한 방법을 생각하다 접는 나무의자의 앉는 부분에 시장바구니를 얹고 다리에 바퀴를 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그는 기계공인 직원과 함께 이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어 최초의 바퀴 달린 쇼핑 카트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 카트에 대한 특허를 1940년에 획득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쇼핑 카트처럼 서로 겹쳐서 보관이 가능한 카트는 그 후 왓슨(Orla Watson)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카트의 뒷부분이 젖혀지면서 서로 포개지는 방식을 1946년에 개발하였다. 왓슨의 카트는 바구니가 2층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 후 골드만은 바구니가 하나이면서 뒷부분이 젖혀져 포개질 수 있는 오늘날의 쇼핑 카트와 유사한 형태의 카트를 개발해 1948년에 특허를 출원하였다. 하지만 왓슨의 아이디어를 일부 차용했기 때문에 장기간의 법정 분쟁 끝에 골드만은 왓슨의 발명을 인정하여 1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고 독점적인 특허 실시 사용권을 부여받게 되었다. 물론 골드만은 왓슨의 회사인 텔레스코프 카트(Telescope Carts)에 자신의 특허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뒷부분이 접혀 포갤 수 있는 네스트 카트(nest-cart)의 판매에 따른 특허료도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그 후 한동안 두 회사는 뒤쪽이 접히는 쇼핑 카트의 독점적 생산권을 누리며 크게 성장했지만 연방 정부가 1950년 골드만에게만 부여된 독점 라이선스가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텔레스코프 카드 회사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동일한 라이선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현재는 그 특허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상태이다. 


그렇다면 쇼핑 카트는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일일이 밀고 다니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아가는 카트, 물건을 일일이 계산대에 올려놓고 바코드를 찍은 후 다시 담지 않아도 되는 카트는 없을까? 그런데 그런 기능을 가진 스마트 쇼핑 카트가 현재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물건을 일일이 스캔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결제하는 기능, 스크린에 유용한 정보를 띄우는 기능, 자율주행 기능 등을 탑재하고 있는 차세대 스마트 쇼핑 카드가 개발되어 현재 월마트, Kroger 등의 슈퍼마켓 일부 지점에서 시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쇼핑카트의 역사(출처: KRISS 소식지  2023 봄호)


스마트 쇼핑카트

(출처: https://advancingretail.tumblr.com/post/180592623183/smart-shopping-carts-are-changing-the-future-of )



쇼핑 카트의 물리학

쇼핑 카트는 비교적 간단한 구조의 장치다. 크게 나누어 보면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프레임 위에 큼직한 바구니가 올려져 있고 밑에는 네 개의 바퀴가 붙어있다. 프레임의 한쪽 부분은 카드를 밀거나 끌고 방향을 조정할 수 있도록 손잡이가 붙여져 있는 구조다. 하지만 이 간단한 장치는 우리에게 넓은 슈퍼 마켓 매장에서 원하는 물건들을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편하게 이동하면서 선택하여 구매할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무거운 생수, 세탁용 세제나 쌀 등을 손으로 들고 매장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면 쇼핑 카트는 대형 마트에서 이러한 고객들의 수고를 크게 덜어주는 1등 공신이 아닐 수 없다. 

 

손으로 드는 바구니를 들었을 때는 물건을 당기는 지구의 중력 즉 모든 무게는 팔의 근육으로 이겨내야만 한다. 하지만 쇼핑 카트에 물건을 담으면 모든 무게는 쇼핑 카트의  바구니를 통해 바퀴가 담당하게 되기 때문에 카트가 멈추어 있을 때에는 우리는 전혀 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카트를 앞으로 밀거나 당기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힘만 필요하게 된다. 


바닥에 놓여있는 물체를 밀거나 당기기 위해서는 물체와 바닥 사이에 작용하는 마찰력을 이겨내야만 한다. 무거운 물건이 바닥에 놓여 있을 때 손으로 살짝 밀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미는 힘의 반대 방향으로 마찰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힘을 주어 밀면 드디어 밀리기 시작하게 되는 데, 이때의 마찰력을 최대 정지 마찰력이라 부르고 이 힘 이상의 힘이 주어져야 물체가 밀리기 시작한다. 물체가 무거울수록 정지 마찰력도 크기 때문에 더 큰 힘으로 밀어야만 물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단 물체가 움직이지 시작하면 미끄럼마찰 혹은 운동마찰이라고 부르는 마찰력이 계속적인 움직임을 방해한다. 즉 정지해 있던 물체를 힘껏 밀면 최대 정치마찰력을 이기고 물체가 밀리기 시작하지만 계속 힘을 주지 않으면 얼마 가지 않아 물체는 다시 정지하고 만다. 뉴턴의 운동법칙(제1법칙, 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물체는 현재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움직이려 한다. 그러나 움직임을 방해하는 마찰력으로 인해 물체의 속도는 줄어들어 멈추게 된다.


바퀴가 있는 쇼핑 카트에도 비슷한 물리 법칙이 적용된다. 즉 멈추어 있는 카트를 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힘이 필요한데, 바퀴가 있는 물체에도 굴림 마찰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굴림 마찰력은 정지 마찰력보다는 훨씬 작은 크기의 힘이며 실제로는 정지마찰력과는 조금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는 저항력이다. 영어로는 정지 마찰을 static friction이라 부르지만 굴림 마찰은 rolling resistance(구름 저항)라 부른다. 구름 저항 역시 물체의 무게(보다 정확히는 바닥에 수직방향으로 작용하는 수직항력이라고 한다)에 비례하기 때문에 상품이 가득 담긴 무거운 카트를 밀 때가 빈 카트를 밀 때 보다 더 많은 구름 저항이 있어 카트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으로 밀어야만 한다. 


바퀴와 바닥면이 단단할수록 구름 저항이 작아진다. 강철 선로 위를 강철 바퀴가 굴러가는 기차의 경우 덜 단단한 고무 타이어를 사용하는 자동차에 비해 구름 저항이 매우 적어 같은 무게라면 에너지 소모가 적게 된다. 자동차의 경우도 타이어의 압력이 적정치 이하가 되면 구름 저항이 더 커져 연비가 떨어지게 된다.


대형 마트에 가 보면 어떤 곳의 카트는 앞바퀴 두 개는 자유롭게 회전이 가능하지만 뒷바퀴 두 개는 회전하지 않도록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마트에는 네 바퀴 모두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종류의 다른 카트는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네 바퀴가 각기 자유롭게 회전하는 카트는 미는 힘이 조금 덜 들 수 있지만 원하는 방향으로의 이동을 위한 조향성에서는 뒷바퀴가 회전하지 않는 카트가 유리하다. 


구름저항: (출처: KRISS 소식지 봄호 2023)



쇼핑 카트의 심리학

쇼핑 카트와 관련된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큰 쇼핑 카트일수록 구매하는 상품의 양이 증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쇼핑 카트 대신 손으로 들고 다니는 쇼핑 바구니의 경우는 어떨까? 물건을 담을 공간이 적어 적은 양의 상품만 구매할 수도 있지만, 덜 건강한 쇼핑 패턴이 나타난다고 한다. 즉 손으로 드는 바구니가 불편하기 때문에 차분히 물건을 고르지 않고 직관적으로 물건을 담게 된다. 그래서 식료품 마켓의 계산대에서 계산한 상품을 보면 손으로 드는 바구니 쇼핑객이 불량품을 구매할 확률이 바퀴 달린 쇼핑 카트 쇼핑객의 6.84배나 되었다고 한다. 


식료품점에서의 과소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식료품점에 가기 전에 식사를 하고 구매할 물건의 목록을 가지고 와서 목록에 있는 물건만 카트에 담으며, 매주 같은 날에 쇼핑을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관성 있는 쇼핑을 할 수 있어 충동구매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림 출처:https://www.revechat.com/blog/shopping-cart-abandonment/)


한 때 대형마트에서는 쇼핑 카트를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놓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후 동전을 넣어야 카트를 사용할 수 있고 지정된 장소에 반환을 해야 다시 그 동전을 회수할 수 있게 된 이후 카트를 방치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미국 등에서는 이 문제가 큰 골칫거리였던 것 같다. ‘왜 어떤 사람들은 쇼핑 카트를 아무 데나 두고 갈까?’ 2017년 인류학자 크리스탈 디코스타(Krystal D’costa) 박사는 사회적 규범과 사람들의 행동을 연결한 재미있는 칼럼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게재한 적이 있다. 이 칼럼에는 몇 가지의 연구 결과들이 소개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 연구원들은 두 개의 다른 좁은 길에 자전거를 주차한 참가자들의 행동을 분석한 것이었다. 두 골목길 벽에는 ‘낙서 금지’ 표시가 붙어 있었다. 한 골목은 낙서가 없는 반면 다른 골목은 낙서 금지 표지판에도 불구하고 낙서를 해 두었다. 연구원들은 양쪽 골목에 주차된 자전거 손잡이에 전단지를 부착해 두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기 전 전단지를 제거하게 했다. 벽에 낙서가 있는 골목에서는 69%가 전단지를 땅바닥에 버리거나 다른 자전거에 전단지를 걸어놓은 데 비해, 낙서가 없는 골목에서는 33%만이 비슷한 행동을 했다. 낙서가 있는 골목에서는 낙서 금지 표지판을 무시하고 벽에 낙서를 한 것을 보면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는데 양심의 가책을 덜 느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KRISS 소식지 봄호 2023)



이와 유사하게 누군가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는 한 사람이 카트를 아무 데나 방치해 놓으면, 다른 사람들도 카트를 방치하는 일을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고, 방치된 카트의 수가 늘 수록 카트를 방치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제 슈퍼마켓에 들어왔으니 다음번에는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고 아내가 고른 필요한 물건들을 카트에 담으면서 슈퍼마켓과 카트에 담긴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나누어 보기로 하자.




* 이 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3 봄호에 실린 제 과학 칼럼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색, 브론즈 Bronz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