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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Jul 09. 2023

슈퍼마켓에 간 과학자-2

소비자를 사로잡는 슈퍼마켓의 진열

슈퍼마켓에 간 과학자-2


소비자를 사로잡는 슈퍼마켓의 진열

박용기(한국표준과학연구원 명예연구원, 맛있다 과학 때문에 저자)



쇼핑카트를 밀고 슈퍼마켓의 입구로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대부분 과일과 야채가 풍성하게 쌓여 있는 코너다. 때로는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빵집이 초엽에 있기도 한다. 대형 마트의 기본적인 레이아웃은 입구로부터 시계방향 혹은 반시계방향으로 벽면을 따라 이어지는 넓은 주 통로가 있고, 그 안 쪽으로는 그보다는 좁은 통로들이 그물모양으로 배치되고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이 그 길 옆에 진열되어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마트들이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대형마트의 면적과 상품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청에서는 매장의 면적에 따라 마트의 종류를 다르게 구분하고 있다. 매장 면적이 150 m² 이하의 공간을 가진 곳을 슈퍼마켓으로, 그 이상의 공간을 가진 곳을 Super라는 단어를 하나 더 붙여서 기업형 슈퍼마켓, 즉 SSM (혹은 HM, Hypermarket)으로 부르고 있다. 보통 대형할인점은 이 HM을 말한다.


국내 대형 마트의 평균 매장면적은 대략 10,000 m² 내외다. 서울의 상암 축구장은 105 m x 68 m로 면적은 7,140 m²이기 때문에 대형 마트의 평균 면적은 상암 축장보다도 큰 편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대형마트인 이마트의 경우 취급품목은 60,000여 가지나 된다. 주로 대용량의 상품을 취급하는 코스트코나, 이마트 트레이더스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은 취급 품목이 4,000여 가지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한편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 마트인 월마트의 경우 슈퍼센터의 평균 매장 면적은 17,000 m²이고 취급 품목은 142,000여 가지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형마트들은 이 많은 상품과 넓은 매장을 어떤 원칙을 가지고 배치하고 진열할까? 그리고 진열에 따라 매출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그 뒤에 숨어 있는 과학적 방법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대형 마트의 레이아웃 

 

마트에는 상품을 공급하는 제조업체, 상품을 판매하는 마트 유통업체, 그리고 물건을 사려는 고객이라는 세 주체가 있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는 곳이다. 상품 제조업체는 그들의 제품이 최고의 위치에 진열되어 가장 잘 팔리기를 원하고, 고객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양질의 제품을 최상의 가격으로 구입하기를 원한다. 여기에 더해 편리하고 즐거운 쇼핑이 이루어 지기를 원한다. 한편 물건을 파는 마트 업체는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전반적인 매출과 수익의 증대를 원하며 또한 재고를 최소화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포진한 대형 마트의 다양한 판매 전략에 넘어가 때로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충동 구매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기도 한다.


POS 국제 프로모션 협회((Point of Sale Promotion Association International)에 따르면 제품군을 매장에 올바르게 진열하면 매출이 10 % 증가할 수 있고, 올바른 상품화는 매출을 15 % 더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한다.



매장에 들어섰을 때 고객들을 처음 맞이하는 것들은 대부분 신선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꽃 같은 것들이며 때로는 빵을 굽는 빵집일 경우도 있다. 이러한 배치는 밝은 색과 좋은 냄새로 고객들의 눈과 코의 감각을 자극하여 고객들이 머리가 아닌 배로 쇼핑을 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이다. 이러한 감각적 자극은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경험과 안정적인 느낌을 주어 필요 이상의 구매를 유도한다. 매장에서 들려오는 배경음악도 대체적으로 조금 느린 템포를 사용함으로써 안정감을 주어 매장에 더 오래 머무르게 하는 효과에 일조를 한다. 이와 함께 일단 매장에 들어서면 밖으로 빠져나가는 출구가 반대 편에 있는 경우가 많아 나가기 위해서는 매장의 주 통로를 거치면서 많은 상품들을 만나도록 동선을 만들어 놓았다. 언젠가 한 대형마트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은 유난히 출구를 찾을 수 없도록 레이아웃이 만들어져 있어 결국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거의 모든 매장을 거친 후에야 출구로 나올 수 있었던 경험이 있다.


대부분의 대형 매장에서 우유나 계란 육류 등을 판매하는 냉장 매장은 입구의 반대편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식품들은 매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꼭 들르게 되는 필수품이기 때문에 이곳까지 주 통로인 링 형태의 매장 가장자리 통로를 따라가는 동안 사람들은 많은 상품들을 자연스럽게 둘러보게 된다.


매장은 매출을 증가시키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레이아웃을 사용한다. 대형 마트에서 주 통로는 외곽을 따라 도는 루프 형태이며 이 길을 따라 상품을 진열하는 루프형 레이아웃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 통로의 안쪽에는 주 통로보다는 좁은 통로들이 격자를 이루면서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양 옆으로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된 매대가 늘어서 있는 형태의 격자형 레이아웃도 일반적이다. 이 배치는 공간 효율이 높고 동일제품을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빈도가 높은 상품들이 진열되는 공간이다. 그밖에 자유형 레이아웃도 있는데 상품을 불규칙한 형태로 진열하고 고객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한 레이아웃으로 고객을 매장에 오래 머무르게 하여 충동구매의 기회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특설매장이나 행사 매장 등에서 사용하는 레이아웃이다.





상품 진열 방식의 비밀


매장에서 상품을 진열하는 데 추천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1.     이익에 따른 상품 진열

마트에서는 제품이 이익을 내는 것에 비례해서 공간을 할애한다. 즉 인기 있는 제품의 경우 판매 공간을 더 많이 할당한다. 만일 특정 그룹의 제품이 총이익의 10 %를 가져온다면 선반 공간의 10 %를 할애한다.

2.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반드시 진열
 어떤 상품들은 많이 팔리지 않지만 제품의 다양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제품이 다양해지면 관리측면에서는 어려움이 증가하지만 다양성이 높아져 때로는 고객들이 그 상품을 사기 위해 다른 마트보다 선호하여 방문하게 함으로써 다른 상품의 매출을 올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3.     6 스텝 원칙

마트에 막 들어온 고객에게 처음 여섯 발을 걷는 동안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즉 입구에 특별 가격이나 할인된 가격의 상품을 배치하면 사람들은 가게의 가격대에 대한 첫인상을 형성하고 이미 입구에서부터 상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4.     "두 손가락 법칙(two-finger rule)"
 제품 가장자리에서 선반 가장자리까지 대략 4.5 cm 정도를 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거리가 너무 작거나 크면 선반에서 물건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시에 물건 사이에 작은 간격을 두어 상품을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 밖에도 한 시즌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배치를 조금씩 바꿔 고객을 자극하되 변화가 너무 크지 않도록 하고, 서로 다른 분류의 상품이지만 연관성이 있는 경우에는 가까이 배치하는 방법 등이 있다. 예를 들어 차와 단 것, 파스타와 소스, 포도주와 치즈 및 포도주잔 등을 함께 진열하여 동반 판매의 기회를 높이는 방법 등이다.


선반의 높이별로 진열하는 상품도 다양하다. 모자 높이(170 cm 이상)는 고객들이 상품을 꺼내기 위해 높이 손을 뻗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상품 진열이 비효율적이지만 작고 가벼운 제품이 진열되는 높이이다. 바닥에서 150 ~ 170 cm, 즉 눈높이에서 20 cm 정도 위와 눈높이인 110 cm ~ 120 cm 높이의 선반은 ‘황금’ 영역으로 불린다. 프랑스 카르푸 체인의 연구에 따르면 눈높이의 위치에 잘 진열한 상품은 매출이 78 % 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바닥에서 50 cm ~ 120 cm 높이의 선반은 손목 레벨이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방문객들이 허리를 굽히고도 상품을 가져가는 필수품들(예를 들어 중간 가격 범주의 소금, 설탕 및 시리얼 등)을 진열한다. 장난감이나 사탕과 같은 물건들도 이 낮은 선반에 진열하는데 이는 아이들에게는 눈높이의 황금 영역 선반이기 때문이다.


진열의 높이뿐만 아니라 같은 높이의 선반에서도 상품이 놓이는 위치에 따라 소비자들의 인지도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중앙 부분이 방문객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가는 부분이며, 한 자리에 서서 선반을 훑어볼 때 시선은 책을 읽을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기 때문에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더 잘 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기 주력 상품이나 마진이 높은 상품은 같은 부류의 상품 진열대에서 오른쪽에 진열한다.





마트 매장의 심리학
 
 같은 품목의 상품을 다양하게 구비하는 것이 판매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 실험에서 연구원들은 진열된 잼의 종류의 수를 다르게 하여 잼의 판매량을 비교해 보았다. 즉 6 가지 종류의 잼을 전시했을 때와 24 가지의 다른 종류의 잼을 전시했을 때를 비교하였다. 잼의 종류가 6 가지일 때에는 지나가는 고객의 40 %가 멈추어 서서 둘러보았고, 잼의 종류가 24 가지일 때에는 60 %의 고객이 멈추어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실제로 잼을 골라 구매한 비율은 어떨까? 아이러니하게도 6 가지의 잼 앞에서는 둘러본 사람들의 45 %가 잼을 구매했지만 24 가지 잼 앞에 멈추었던 고객들 중에는 2 %만 구매를 결정했다고 한다.


우리 뇌의 영역 중 고차원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은 한 번에 약 7개 정도의 정보만을 처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24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과제가 전두엽 피질의 용량을 압도하여 구매자는 의사 결정 과정을 포기하고 당면한 과제에서 손을 떼는 자연스러운 위험 회피 행동으로 전환되었을 것으로 해석하였다.


마트에서 판촉의 한 가지 방법은 희소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상품이 제공되는 시간대에 제한을 두거나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의 수에 제한을 두어 희소성을 부여함으로써 판매를 촉진하는 것이다.


구운 콩과 같은 제품에 적당한 가격 인하를 알리는 홍보 디스플레이를 설치하고 비디오를 통해 관찰한 결과 디스플레이가 대부분 무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할인된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한 사람당 구매할 수 있는 캔 수를 5개로 제한하는 표지판을 추가로 붙여 프로모션을 변경하면 갑자기 훨씬 더 많은 구매자들이 콩을 사기 위해 멈추고 여러 캔을 구매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명당 구매할 수 있는 캔의 수를 제한하는 단순한 행위는 희소성에 대한 인식을 증대시키고 구매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을 인식시킴으로써 판매를 촉진하게 되는 예라 할 수 있다.


 선반에서 상품 옆에 자리를 비워 상품이 몇 개 안 남은 것처럼 진열하는 방법도 희소성에 대한 인식을 이용한 판촉 전략 중 하나다. 이러한 선반을 보면서 사람들이 “제품이 거의 없다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사 갔네?” “좋은 물건인가 봐” “다 없어지기 전에 나도 사야지”와 같은 생각을 하도록 암시하는 방법이다.

 



 판촉 라벨은 대부분 빨간색 표지판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우리의 인지 기능을 잘 활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마트에서 약 초당 1 미터의 속도로 이동하면서 수 백 개의 상품 앞을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초당 최대 3 ~ 6 개의 단어만을 읽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단어 기반의 표지판이나 라벨은 대부분 무시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빨간색은 우리의 즉각적인 주의를 끄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우리 눈의 망막 중심에는 빨간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가 훨씬 많이 분포하고 있어 빨간색을 더 빨리 그리고 선명하게 인식한다. 이는 인류가 원시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진화해 온 결과라는 설도 있다. 자연에서 빨간색은 뜨거운 불이나 맹수의 벌어진 위협적인 입과 같이 위험한 색이기도 하고, 초록의 숲 속에서 잘 익은 빨간 과일과 같이 채취해야 할 소중한 식량의 색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대형마트의 진열 및 판촉 전문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들을 마트에 오래 머물게 하면서 가능한 많은 물건을 둘러보게 하고 또 구매하게 한다. 그 뒤에 숨어 있는 다양한 과학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그들의 전략에 의한 충동구매나 불필요한 구매를 줄이고 더 현명한 쇼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사진 출처: Pixbay 및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3 여름호

* 이 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3 여름호에 실린 제 과학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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