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 아내가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식품의 유통기한이다. 하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챙겨서 사온 식품이 집에서 보관 중 때로는 유통기한이 살짝 넘어갈 때도 있다. 그러면 아내는 이러한 식품들을 아까워하면서도 가차 없이 폐기한다. 이때 아내와 나는 잠시 실랑이를 벌일 때가 있다. ‘이건 유통이 가능한 기한이기 때문에 조금 지난 식품은 먹을 수 있다’는 게 나의 주장이고, ‘그래도 찜찜하니 버려야 한다’고 맞서는 게 아내의 주장이다. 이렇게 애매한 유통기한 표시를 올해부터는 유효기간으로 표시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유통기한과 유효기간
그렇다면 식품 등에 표시된 유통기한과 유효기간은 무엇이 다를까? 우선 유효기간과 관련된 다양한 날짜 표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안내서에 의하면, 지금까지 사용해 온 ‘유통기한’이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과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으로 영어로는 ‘Sell-by date’라고 한다. 즉 슈퍼마켓의 매대에 진열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되는 셈이다. 한편 새롭게 표시되는 ‘소비기한’이란 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 등에 표시된 보관 방법을 준수할 경우 섭취하여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의미한다. 영어의 경우 ‘Use by date’, ‘Expiration date’, 혹은 ‘EXP’ 등으로 표시된다. 또 포장을 제외한 더 이상의 제조나 가공이 필요하지 아니한 시점을 의미하는 "제조연월일"로 표시하는 것도 있다. 그 밖에도 식품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보존방법이나 기준에 따라 보관할 경우 해당식품 고유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기한을 뜻하는 ‘품질유지기한’이라는 것도 있다. 품질유지기한은 영문으로는 ‘Best before date’, ‘Date of Minimum Durability’, ‘Best before’, ‘BBE’, ‘BE’ 등으로 표시된다.
수입 식품 중 때로는 코드 형태(Closed code)로 날짜가 적혀 있는 경우가 있다. 만일 ‘use by’, ‘sell by’ 혹은 ‘best by’와 같은 말이 없다면 코드로 적힌 날짜는 생산날짜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게 이 날짜는 소비자를 위한 날짜가 아닌 제조사나 슈퍼마켓의 제고 관리를 위한 날짜로 사용되기 때문에 제품의 유효기간과는 직접적인 상관은 없다. 만일 제품에 “D1522”라고 적혀 있다면, 앞의 D는 달을 의미하고 15는 날짜 22는 연도를 의미한다. 1월을 A로 시작하여 12월의 L까지 순차적으로 알파벳을 붙이기 때문에 D는 4월이 된다. 즉 생산일이 2022년 4월 15일이라는 의미이다. 또 다른 형태의 코드도 있다. 주로 식품에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120721처럼 숫자로만 되어있는 코드다. 이 경우 두 자리 씩 차례로 월, 일 및 연도이다. 즉 2021년 12월 7일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떤 회사는 연도, 월, 일의 순서로 적기도 한다. 이 경우 2021년 12월 7일은 211207로 표기된다. 이 외에도 3자리 코드도 존재한다. 주로 계란이나 통조림 등에 사용하는데 이 경우엔 생산된 년도의 1월 1일부터의 날수이다. 즉 001은 1월 1일, 365는 12월 31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213이라 적혀 있다면 생산일은 1월 1일부터 213일째인 8월 1일이 되는 셈이다.
유효기간 표시의 역사
식품 등에 표시되는 유효기간 혹은 유통기한 같은 표시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유통기한이 식품에 표시된 건 1985년부터다. 처음에는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국내 제조 식품과 수입식품에 유통기한을 설정하여 운영하였지만 점차 제조사의 자체 실험 등을 통해 설정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율화하도록 하였다. 그 후 2021년 8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으로 바꾸어 2023년 1월부터 표시하도록 하였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우리보다 먼저 소비기한(expiration date)에 대한 표시가 시작되었다. 영국의 할인점 체인인 마크 앤 스펜서(Marks & Spencer, M&S)는 1972년에 식품에 소비기한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M&S가 소비기한을 표시하기 시작한 동기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식품에 대해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어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미국도 비슷한 시기에 대량 생산에 의한 식품 공급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소비자들이 식품의 품질에 대한 정보를 원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경우 제조업체들은 20세기 초부터 제품에 대해 유통기한(sell-by) 정보를 인쇄해 놓았지만, 이 날짜는 코드로 쓰여 있어 판매 직원들은 각 코드를 키를 사용하여 해독할 수 있었으나 일반 소비자들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비자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제조업체들은 ‘sell-by 코드’ 대신 ‘sell-by 날짜’를 인쇄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영유아 조제식에 대해서만 연방법에 의해 의무적인 소비기한 표시를 하도록 하고 있으며, 달걀, 우유 및 유제품 등에 대해서는 주정부의 규정 등으로 표시를 의무화하는 수준일 뿐 대부분의 식품에 대해서는 자율에 맡기고 있다.
1972년에 식품에 소비기한을 표시하기 시작한 영국의 할인점 체인인 마크 앤 스펜서(Marks & Spencer, M&S) 본점
유효기간의과학적근거
연구에 의하면 영국의 가정에서 낭비되는 음식의 20 %는 식품에 표시된 날짜를 잘못 해석하여 버려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품의 안전에 대한 잘못된 우려 때문에 소비자의 91 %가 ‘유통기한’을 넘긴 음식을 때때로 버리고 있다고 한다. 2011년 식품 마케팅 연구소(Food Marketing Institute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37 %의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매번 버린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유통기한은 실제로 식품의 안전에 관한 날짜가 아니라 판매자가 재고를 회전시킬 수 있게 알려주기 위한 날짜이며, 최고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즉 유통기한은 그 식품이 얼마동안 슈퍼마켓의 매대에 놓여있을 수 있는지를 알려줄 뿐 소비자들에게 그 식품이 안전하지 않게 되는 날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소비일자는 판매자의 입장보다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식품의 품질이 최고 상태로 유지되는 안전한 기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간은 어떻게 산정할 수 있을까? 식품의 소비일자의 산정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은 과학적 실험에 근거한다.
미생물 챌린지 연구 (microbial challenge studies)
가장 기본적인 실험 방법은 그 제품이 슈퍼마켓에 운반되고 마켓에 진열된 후 가정에서 보관하는 조건과 유사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면서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포장을 뜯어 품질과 안전도를 물리적, 화학적, 미생물학적 및 맛과 냄새 등의 관능검사를 통해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변질되지 않는 가장 긴 시간에 대한 데이터를 얻은 뒤 이 보다 조금 짧은 기간을 소비일자로 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적인 시험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공식품 신제품 개발에 있어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가속 실험 방법을 활용하여 소비기한을 추정한다.
대형 식품제조업체라면 ‘미생물 챌린지 연구(microbial challenge studies)’를 수행할 수 있다. 실험 대상의 제품에 리스테리아균과 같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균을 접종한 후 오염된 식품을 운반이나 보관 중 노출될 수 있는 조건에 두고 미생물의 번식 상태를 관찰하여 질병을 유발할 수준 직전까지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게 된다. 회사는 이 기간보다 짧은 기간을 선정하여 소비기한(use by)으로 정하게 된다. 육류 같은 경우 이 소비기한은 실험에서 얻어진 한계 시간보다 며칠 짧게 정해지지만 미국의 경우 안전계수(safety margin)를 얼마로 해야 할 지에 대한 표준이 없기 때문에 회사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약처 안내에 따르면 유통기한은 실험에서 얻어진 품질안전한계기간의 60 % ~ 70 %로, 소비기한은 80 % ~ 90 %로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즉 생면의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이 10일이라면, 유통기한은 6~7일, 소비기한은 8~9일이 되는 셈이다.
또 다른 방법은 온도나 습도 및 산소농도 등을 조절할 수 있는 특수 저장 챔버에서 가속 실험을 통해 변질되는 시간을 측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실제 품질안전한계기간을 계산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또 제품의 형태, 수분의 정도, 산도, 보관 온도 등의 인자들을 이용하여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기간을 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생산 업체의 경우 다른 대형 업체의 유사한 제품을 기준으로 유통기한이나 소비기한을 산정하기도 한다. 식약처의 안내에 따르면, 실험을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제조업체의 경우 유사 제품과 비교하여 소비기한을 설정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또한 식약처는 자체적으로 소비기한 설정실험을 수행하기 어려운 영업자를 위해 2022년부터 식품공전에 있는 200여 개 식품유형에 대한 소비기한 설정실험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그 결과를 제공해오고 있다.
비록 과학적 실험의 결과를 기반으로 소비일자를 정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표준화된 모델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정확하게 조절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유통과정이나 가정에서의 보관 과정에서 달라지는 변수들을 모두 감안하기 어렵고 안전계수의 임의성 때문에 소비기한 산정은 정밀 과학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선의 가이드라인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효기간 사용의 효과 유통기한 표시에 비해 유효기간으로 표시할 경우 안전하게 섭취 가능한 기한을 알려줌으로써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에 대한 오해 때문에 폐기하는 음식물의 양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음식물 쓰레기의 감소와 이에 따르는 이산화탄소 배출양의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식약처에 의하면, 식품폐기 감소로 연간 소비자는 8,860억 원, 산업체는 260억 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도 소비자들은 용어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며 이로 인해 한동안 혼란이 예상된다. 미국 등에서도 소비기한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여 이러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예를 들어 소비기한을 ‘use by’ 혹은 ‘best if used by’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 날짜 이후에는 안전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안전에는 문제가 없지만 맛이 최적의 상태보다 못해진다는 의미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가 규제하는 유일한 식품인 유아용 조제분유에는 ‘use by’ 날짜를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영양 성분, 특히 단백질이 분해되기 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을 면밀히 검사해서 날짜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 날짜가 지나면 영양 성분이 더 이상 보장되지 못함을 의미하게 된다.
언제까지먹어도안전할까?
앞에서 설명한 대로 유통기한은 매장에서 판매가 가능한 최종일이며 대체로 소비기한보다 짧다. 그러므로 유통기한이 1~2일 지난 구매 상태 그대로의 식품은 섭취에 지장이 없다. 예를 들어 우유의 유통기한은 평균 9 ~ 14일이지만, 멸균된 상태이기 때문에 개봉하지 않고 냉장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 보관한다면 45일까지도 먹을 수 있다. 계란은 냉장 보관할 경우 유통기한이 지난 후에도 3주에서 5주까지도 먹을 수 있다. 요구르트 종류의 유산균 발효 식품도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유기산이 산화 방지제 역할을 하므로 유통기한이 지난 후에도 포장된 상태로 냉장보관되어 있다면 우유처럼 상당 기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이 국내 유통 중인 우유, 우유를 주성분으로 한 유음료 및 치즈의 유통기한 초과 후 일반세균 및 대장균 수 변화를 측정해 보았다. 우유는 최대 50일까지 일반세균과 대장균이 검출되지 않았고, 유음료는 30일, 치즈는 70일까지도 세균과 대장균이 나오지 않았다.
최근 식약처는 라면, 조림류 등의 식품유형 120개 품목의 소비기한 참고값을 공개했다. 이 참고값에 따르면 라면의 경유 기존의 유통기한이 92일에서 183일인데 비해 소비기한은 104일에서 291일로,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도 최장 100 일 정도까지도 먹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식품의 경우 섭취 전 냄새, 색 및 맛 등 관능검사를 통해 제품이 변질되지 않았는지 직접 검사한 후 섭취하도록 권하고 있다.
유효기간이있는식품과없는식품
우리나라의 경우 판매 목적의 식품이나 식품첨가물 등에 대해 제품이름과 제조일자, 영양성분, 유통기한 등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유통기한이나 소비기한이 없는 식품도 있다. 예를 들어 빙과류의 경우 유통기한 표시가 없다. 식품위생법에는 빙과류 등의 경우 제조일자를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통기한 표시는 생략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제조·가공·소분·수입한 식품이 유통기한 표시대상인 반면, 자연상태의 농·임·수산물, 설탕, 식용얼음, 소포장 껌류 등도 빙과류와 함께 유통기한을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제품으로 분류된다. 빙과류가 유통기한을 표시하지 않는 이유는 영하 18 oC 이하의 환경에서 제조·보관되기 때문에 미생물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규정된 방법에 따라 보관할 경우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을 ‘상미기한(賞味期限
)’으로, 규정된 방법에 따라 보관할 경우 부패나 변질 등으로 안전성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기간을 ‘소비기한’으로 정의하고 있다. 도시락, 생면류나 생고기 등에는 ‘소비기한’을, 과자, 통조림 유제품 등 품질이 서서히 나빠지는 품목 등에는 ‘상미기한’을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공식품 중 아이스크림류, 냉동과일, 설탕, 껌, 소금 등은 상미기한 표시를 생략할 수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소비기한 표시는 기존의 유통기한을 사용할 때 보다 생산에서부터 소비까지의 기간이 늘어 국가적으로 자원 절약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저감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표시 기간이 지난 식품을 조금 더 사용할 수 있을지 말지 아내와 다툴 일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사진 출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3 가을호
* 이 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3 가을호에 실린 제 과학 칼럼입니다.
글을 실어준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멋진 편집을 해준 '(주)홍커뮤니케이션즈'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