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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산책-26

금잔화 Calendula arvensis L.

by 박용기


6월 초

강원도 홍천의 리조트에 하루 머문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혼자 방을 나와

카메라를 들고 리조트 정원을 산책하면서

꽃들을 만나는 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지만

아침 잠이 많은 아내는

단잠을 깨운다고 참 싫어합니다.


꽃들이 풍성했던

몇 년 전의 그 정원을 생각하며,

이날도 아내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최대한 조용히 방을 나섰습니다.


아직은 본격적인 여름이 아니어서

아침 공기가 상쾌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올해엔 정원에 꽃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정원 한 구석에 피어난

황금빛의 아름다운 꽃이

저의 발길을 이끌었습니다.


이게 무슨 꽃이지?

백일홍을 닮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고....


금잔화(金盞花)라는 꽃입니다.

이 꽃을 보기 전

얼마 전까지

저도 금잔화가 메리골드의 우리말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리골드와

금잔화는 전혀 다른 꽃입니다.

메리골드의 학명은 Tagetes erecta이고

금잔화의 학명은 Calendula arvensis입니다.

황금색 술잔을 닮았다고 금잔화(金盞花)입니다.

영어 이름이 pot marigold라 그런지

사람들이 marigold와 많이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메리골드의 우리말 이름은 천수국.


조정인 시인의 시

'수요일의 금잔화' 말미에는

금잔화와 금송화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금송화는 아마 메리골드를 뜻하는 듯 합니다.


'좀 더 품위 있고 정교한 금잔화와 수선스런 금송화의 차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에 금잔화는 애상 어린 계집애 같은 꽃이라 덧붙입니다.'


깔끔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꽃

금잔화를 만날 수 있어

초여름의 정원은 풍성해졌습니다.




수요일의 금잔화 / 조정인


일요일의 엷은 구름을 찢어 빚은 꽃들이

한 트럭분 실려 오네. 휴지처럼 둘둘 풀어 일용하는

우리들의 채색구름.


오늘, 귓불이 붉은 꽃들은

아침노을이 물든 어린 구름으로 빚었다지.

신선도 높은 구름샐러드를 주문하고

카페-애플 테라스에 앉네.


빈혈을 앓는 꽃들이 퀵서비스에 실려

사라진 애인들을 배송하러 떠나네.


엉덩이에 잎사귀처럼 달라붙은 팬츠

킬힐

퇴화된 날개 검정 깃털 같은 속눈썹을 껌벅이며

나의 노란 멀미들은 다 어딜 가시나.


어떤 수요일의,


재[灰]로 빚은 꽃들은 만지면 부서져

조용히 가라앉네.


손바닥 위


무너진 사원 뒤뜰, 깨어진 제대 위에

작은 가시관이 놓이네.


옅은 한숨과 함께 가난한 고백이 흘러나오네.


—좀 더 품위 있고 정교한 금잔화와 수선스런 금송화의 차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에 금잔화는 애상 어린 계집애 같은 꽃이라 덧붙입니다. 당신과 모국어로 이야기를 나눌 때 말의 긴 손가락이 왼쪽 귓바퀴를 어루만지도록 두는 일. 이는 사랑이니, 수면을 두드리는 빗방울 수효만큼 무수히 나를 용서하소서.




Pentax K-1
Pentax smc PENTAX-D FA 100mm f/2.8 WR Macro
100mm, ƒ/3.5, 1/640s, ISO 100


#정원_산책 #금잔화 #금잔화와_메리골드는_다른_꽃 #홍천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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