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에서 만나는 과학-1
슈퍼마켓에 간 과학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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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에 간 과학자-5
박용기(KRISS 명예연구원, 맛있다 과학 때문에 저자)
매장을 둘러보면서 필요한 상품들을 카트에 담은 후 계산대 컨베이어 벨트에 구매할 물건들을 올려놓으면서부터 계산이 끝나고 매장을 나오기까지 계산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에 과학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과학 기술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계산대에서 만나는 과학을 하나씩 알아보기로 한다.
컨베이어 벨트가 있는 계산대
대형마트의 경우 쇼핑 카트에 담긴 물건들을 계산대의 끝에서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게 되면 물건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자동으로 이동하여 계산원 앞에서 멈추게 된다. 컨베이어 벨트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미국의 발명가 올리버 에반스(Oliver Evans)로 그는 1795년에 증기 기관을 사용하여 작동하는 자동화 제분기 개발에 참여했으며, 곡물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의 초기 형태를 고안했다. 그 후 1892년 미국의 토마스 로빈스(Thomas Robins)는 석탄과 광석을 운송하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발명했다. 그의 발명품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컨베이어 벨트가 산업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게 된 것은 헨리 포드(Henry Ford)가 미시간에 있던 포드자동차 공장에 컨베이어 벨트 조립 라인 아이디어를 도입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슈퍼마켓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있는 계산대는 193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클레런스 손더스(Clarence Saunders)라는 사람이 시작한 피글리 위글리(Piggly Wiggly)라는 체인 슈퍼마켓에서 도입되었다. 이후 이러한 계산대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가며 슈퍼마켓 산업의 일반적인 기능이 되었다.
계산대의 컨베이어 벨트는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진 물건을 올려놓으면 벨트 아래쪽에 설치된 무게 센서가 감지하여 움직임이 시작되도록 하며, 계산원 가까이에는 광센서가 있어 물체가 이 영역에 들어오면 움직임을 멈추고 물체가 제거되면 다시 벨트를 움직이도록 한다. 센서들의 신호는 계산대의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어 이러한 움직임이 제어된다.
컨베이어 벨트에 구매할 물건을 올려놓을 때 앞사람의 물건과 구분하기 위해 올려놓는 바가 있다. 얼마 전까지 필자도 이 바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그냥 ‘막대’라고 불렀다. 이 막대의 영어 이름은 체크아웃 디바이더(checkout divider). 우리 말로는 ‘상품분리바’ 혹은 ‘계산대 상품분리바’라고 불린다. 벨트 위에서 구르지 않게 긴 삼각기둥 혹은 사각기둥 형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품분리바를 어떻게 놓아야 정확한 것일까? 즉 앞사람의 물건과 내 물건 사이에 길이 방향으로 길게? 혹은 물건들과 평행하게 옆으로?
미국의 한 기상 캐스터인 라이언 본(Ryan Vaughan)은 그의 페이스북에 상품분리바는 앞사람의 물건과 내 물건 사이에 거리를 두기 위해 길게 놓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사진을 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에 댓글을 달면서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았고, 벨트를 멈추는 센서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라이언 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물건들과 평행하게 놓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저자도 길지 않은 컨베이어 벨트에 많은 물건을 올리다 보면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가능한 앞사람의 물건과 가까이 상품분리대를 평행하게 놓았지만 벨트가 계산원 앞에서 멈추는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간격을 벌리기 위해 약간 비스듬하게 놓아볼까 생각한다.
벨트에 올려진 물건이 계산대 앞에 도달하면 계산원은 물건에 인쇄된 바코드를 바코드 인식장치로 읽게 된다. 그러면 품목과 가격이 자동으로 모니터에 찍히고 모든 물건의 인식이 끝나면 합계가 표시되어 빠르고 편리한 계산이 이루어진다. 얼핏 보면 옛날의 금전등록기와 비슷해 보이는 대형 슈퍼마켓 계산원의 모니터는 사실은 POS(Point of Sales) 시스템의 단말장치다. POS 시스템이란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등 소매점에서 이용되고 있는 판매시점에 판매된 상품을 기록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재고관리, 납품수량 결정 등에 사용하는 정보관리 시스템을 말한다. 각 계산대에서 입력된 판매 정보는 매장의 컴퓨터로 보내지며 이를 통해 매상 및 재고의 실시간 관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객에게는 편리한 계산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매장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장치다. 요즘 사용하는 POS 단말 장치에는 바코드 혹은 QR 코드 리더 장치와 신용카드 및 삼성페이나 구글 페이 등 디지털 신용카드를 인식할 수 있는 장치까지 붙어 있어 최신 디지털 기술의 총합체라 할 수 있다.
바코드의 역사
모든 상품에 인쇄되어 있어 계산 시 편리한 바코드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원리는 무엇일까? 바코드는 1948년에 태어났다. 미국의 드렉셀(Drexel) 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노먼 우드랜드(Norman J Woodland)와 버나드 실버(Bernard Silver)는 슈퍼마켓의 제고관리와 고객들의 빠른 계산을 위한 방법을 연구하여 최초의 바코드를 발명했다. 우드랜드는 모스 부호의 점과 선이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익숙한 패턴을 어떻게 구체화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변에서 모래에 점과 선을 그려보다 네 손가락이 모래에 만든 선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들의 발명품은 1952년 특허를 받았지만 지금 사용되는 형태와는 다르게 여러 개의 동심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황소의 눈(Bull’s eye)’이라 불렸다. 자신의 집에서 만든 프로토타입 시스템은 바코드를 읽기 위해 500 와트의 강력한 백열전구를 사용해야만 했으며 전체 시스템은 책상 크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실에서는 작동했지만 그 당시의 기술로는 현장에서 사용하기에는 실용적이지 못한 20년 정도의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였다.
실용성이 있는 바코드는 1960년대에 나타났다. 미국 철도협회가 후원하고 매사추세츠주의 실바니아(Sylvania)가 KarTrak ACI(Automatic Car Identification, 자동 차량 인식)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3M 스카치 라이트(Scotchlite)의 파란색과 주황색 스트립 패턴을 배열한 세로 방향의 대형 바코드를 화물 차량에 부착해서 화물 차량의 소유권 정보와 고유한 차량 번호를 인코딩했다. 이러한 철도 차량 KarTrak 바코드를 인식하기 위한 리더기는 냉장고 크기의 기계였으며, 기차가 접근할 때 활성화되어 차량에 500 와트의 빛을 비추고 센서가 바코드에서 반사된 빛을 읽는 방식이었다. 1968년에는 미국 표준이 되었으며 1975년에는 미국 기차의 90%가 KarTrak 라벨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바코드의 유지 보수 등이 잘 안 되고 읽기 정확도가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1978년 이 시스템은 폐기되었다.
그러나 슈퍼마켓을 위한 바코드는 생산성 향상에 획기적이기 때문에 성역으로 남아있었다. 1970년대 이 시스템 개발을 위해 RCA와 IBM이 기술 경쟁을 벌였다. RCA는 원래의 바코드 특허를 구입해서 선도적으로 연구를 추진했다. 하지만 원 발명자 중 한 명인 노먼 우드랜드가 일하고 있던 IBM이 뒤늦게 경쟁에 끼어들었다. RCA가 원래의 특허처럼 둥그런 바코드에 집중할 때 IBM은 연구 책임자를 조지 라우러(George Laurer)로 변경하여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특허의 둥그런 바코드 아이디어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심벌 선택 위원회가 제시한 엄격한 규정에 보다 적합한 아이디어인 직사각형 형태의 바코드를 개발했다. 1973년 3월 30일 심벌 선택 위원회는 두 회사의 시스템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IBM의 라우러가 개발한 직사각형 바코드를 유니버설 제품 코드(UPC)로 선정했다.
바코드가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바코드를 읽고 해독할 수 있는 빠르고 간편한 리더 장치가 필수적인데 ‘레이저’의 발명이 그런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레이저는 1960년 7월 16일 캘리포니아 컬버 시티의 휴즈 항공(Hughes Aircraft)사 연구소에 근무하던 테오도어 메이먼(Theodore Maiman)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만든 레이저는 루비를 이용한 붉은색 레이저였다. 레이저(LASER)는 복사 유도 방출에 의한 광증폭(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이라는 복잡한 말의 줄임말로 단색광의 집약되고 강력한 빛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성질로 인해 바코드의 흰색과 검은색의 줄무늬에서 반사되는 빛을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1 밀리와트의 작은 출력의 레이저도 단위 면적당으로는 태양빛의 100만 배의 에너지 밀도를 지닐 수 있어 초기 바코드 리더기에 사용하던 500 와트의 백열전구 보다 훨씬 밝은 빛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슈퍼마켓의 계산대에서 바코드로 계산이 이루어진 것은 1974년 6월 26일이었다. 미국 오하이오주 트로이라는 도시에 있던 마시(Marsh) 슈퍼마켓이 그 역사적인 장소였다. 슈퍼마켓 직원들은 전날 매장이 끝나고 밤을 새워가며 상품에 인쇄된 바코드 스티커를 붙였으며, 다음날 아침 8시에 슈퍼마켓이 개장되자마자 한 직원이 테스트용으로 계산대에 들고 온 리글리스 주시 푸르트 껌(Wrigley’s Juicy Fruit Gum) 10개 들이 한 팩의 바코드를 샤론 뷰캐넌(Sharon Buchanan)이라는 직원이 스캐너에 통과시킴으로써 슈퍼마켓에서 최초의 바코드 사용이 시작되었다. 그날 판매된 껌과 영수증은 현재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바코드와 바코드 스캐너의 원리
1988년 우리나라에 바코드가 처음 도입되기 전에는 수입 상품에 인쇄되어 있던 이상한 암호 같던 바코드를 보고 이게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 다 알지만, 아직도 복잡한 암호 같은 줄무늬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 않다.
북미지역에서 판매되는 소매 상품 식별에는 12자리 숫자 코드인 UPC-A 바코드가 사용되지만, 우리나라 슈퍼마켓에서는 세계표준인 총 13자리의 GTIN-13 바코드가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 바코드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다.
GTIN-13 바코드 예
바코드의 왼쪽부터 맨 처음 숫자 3개(880)는 국가코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바코드도 처음 도입된 해인 1988년을 기념해 국가 코드를 880으로 부여받았다. 최근 수요가 늘어 추가로 881도 국가 코드로 부여받았다. 국가 코드 다음 4~6개 숫자는 업체코드다. 제품을 생산한 업체의 고유번호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 5~3자리는 상품코드다. 그리고 마지막 한자리 수(6)는 앞의 숫자들의 조합으로부터 계산되어 바코드를 잘 인식했는지를 체크하는 체크 숫자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산자 번호는 대한상공회의소 유통물류진흥원에서 번호를 부여하고 있는데, 2017년 이후 가입한 생산자에게는 생산자번호를 6자리(123456), 상품번호는 3자리(001)로 발급하고 있다.
바코드 스캐너는 빛의 반사를 통해 검은 부분과 흰 부분을 인식하고 이를 ‘0’과 ‘1’로 변환하여 컴퓨터에 보내면 컴퓨터는 입력된 2진법의 숫자를 해석해서 우리가 아는 숫자로 인식하게 된다.
10진법의 0에서 9까지의 숫자는 바코드에서는 일곱 개의 열로 나타낸다. 예를 들어 ‘0’은 흰색 3칸+검은색 2칸+흰색 1칸+검은색 1칸 즉 (0001101)으로, 2는 (0010011), 9는 (0001011) 등과 같다.
양쪽 끝과 가운데에는 조금 긴 가드 바가 위치한다. 왼쪽과 오른쪽 끝은 ‘검정-흰색-검정(101)’으로 되어 있으며, 가운데 있는 가이드 바는 ‘흰색-검정-흰색-검정-흰색(01010)’으로 되어 있다. 가운데 가이드 바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오는 숫자의 패턴은 서로 흑백이 반전되도록 되어 있다.
가이드바 왼쪽의 숫자들은 까만 부분(1)의 개수가 홀수이고, 오른쪽의 숫자들의 까만 부분(1)의 개수는 짝수이기 때문에 바코드 스캐너는 코드의 방향을 인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2차원 바코드-QR코드
기존의 바코드는 기본적으로 가로 배열에 최대 20여 자의 숫자 정보만 넣을 수 있는 1차원적 구성이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를 포함한 코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94년 일본 도요타 자동차 자회사인 덴소 웨이브가 도요타 자동차 전용 부품을 구별하기 위해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QR 코드는 빠른 응답 코드(Quick Response Code)의 약자로 가로, 세로를 활용하여 숫자는 최대 7,089자, 문자는 최대 4,296자, 한자도 최대 1,817자 정도를 기록할 수 있는 2차원적 구성이다. 때문에 바코드는 기껏해야 특정 상품명이나 제조사 등의 정보만 기록할 수 있었지만, QR코드에는 긴 문장의 인터넷 주소(URL)나 사진 및 동영상 정보, 지도 정보, 명함 정보 등을 모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QR코드는 위치 찾기 패턴과 얼라인먼트 패턴, 그리고 셀 패턴의 3가지 패턴으로 구성된다. 모든 QR코드의 세 모서리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사각형이 위치 찾기 패턴이다. 이를 통해 QR코드 인식기가 360도 어느 방향에서 감지하더라도 QR코드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빠른 정보 탐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일종의 나침반과 같다. 얼라인먼트 패턴은 QR코드에 얼룩이 묻거나 일그러지거나 파손된 경우에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셀 패턴은 흑백 점과 흰색 여백으로 이루어지는데 데이터가 저장되는 곳이다.
QR코드가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은 바코드와 같다. 데이터 영역의 ‘바둑판무늬’가 검은색이냐 흰색이냐에 따라서 ‘0’과 ‘1’을 구분하는 것이다. 바코드는 정보를 수직선을 통해서만 표시할 수 있다면, QR코드는 가로와 세로 모두 정보를 담을 수 있어, 거리와 넓이까지 데이터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다.
QR코드에 담긴 데이터 인식은 빛의 흡수와 반사를 감지하는 적외선 센서를 통해 이뤄진다. 적외선 센서는 적외선을 방출하는 발광소자와 이를 감지하는 수광소자로 분리돼 있다. QR코드의 검은색은 빛을 흡수하고, 흰색은 빛을 반사한다. 바코드 스캔과 마찬가지로 빛 반사 정도에 따라 ‘0’과 ‘1’의 정보를 읽어 이 정보로부터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인식한다. 별도의 스캐너가 없어도 스마트폰의 경우 카메라 모드에서 QR 코드를 읽고 내장된 앱을 통해 정보를 해독할 수 있어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