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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Aug 28. 2024

욕지도-3

출렁다리 가는 길

숙소 방에 앉아 바라보이는 여름바다 풍경


별빛정원에서 채 마시지도 못한 아이스커피를 들고

아쉬운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시원한 숙소 방에 앉아 

들고 온 남은 커피를 마시면서 바라보는 풍경은

욕지도 어느 카페보다 훌륭했습니다.



커피를 마신 뒤

숙소 방에 누우면

창 가득 파란 하늘만 펼쳐졌습니다. 


창 가득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노라니

가득 펼쳐진 흰구름 사이로

성경 속 홍해가 갈라지듯 

똑바로 길게 갈라진 길이 보였습니다.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뒤에는 그 길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왠지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황화코스모스


더위가 조금 누그러들었으리라 생각되는 늦은 오후

아내와 함께 세 개의 출렁다리를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습니다. 


순서대로 제1 출렁다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를 세우고 출렁다리 가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상당히 가파른 길을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조금 가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모두 덥고 힘든 기색이 역력하여

우리는 다시 뒤돌아 올라와

제2 출렁다리로 가기로 했습니다. 

제2 출렁다리는 길가에 바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2 출렁다리 옆에는 

벌써 황화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있었습니다. 

출렁다리는 길지 않았지만

출렁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제2 출렁다리 입구에 핀 황화코스모스
제2 출렁다리

다리를 건너갔다 다시 건너오니

제1 출렁다리로 가는 오솔길이 보이고

입구에 제1 출렁다리까지 0.8 km라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나무 사이로 난 길은 평탄하고 그늘져 있어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제1 출렁다리를 가기로 했습니다. 


길을 조금 가다 보면 두 절벽 사이로 바다가 보이고 

멀리 삼여도가 보이는 멋진 풍경도 있었지만,

아직 찜통더위가 가시지 않은 오후에 걷는 800 m는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중간쯤 갔을 때

아내는 온통 땀으로 목욕을 하다시피 하여

머리칼이 다 젖고 힘들어했습니다. 

그래도 돌아갈 수는 없어 

힘겹게 제1 출렁다리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우리가 꾀를 부리다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곳에 서 있는 표지판에는

제1 출렁다리 주차장까지는 0.45 km,

우리가 온 제2 출렁다리가 있는 고래강정까지는 

0.7 km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래도 제1 출렁다리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도 일품이어서

힘들지만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1 출렁다리
제1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바다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는 덜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왼쪽으로 나무와 수풀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벼랑길을 감상하는 여유가 생겨서 일까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고 좋았습니다. 


높이 있는 포도를 따먹지 못한 여우가

'저 포도는 실 거야' 하는 

이솝우화 '여우와 포도'처럼,

우리도 원래 가려다 만 그 길은

'짧지만 가파르고 그늘도 없어 더 힘들었을 거야'하며

위안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이던 바다 풍경


실수로 선택하게 되었지만

어쩌면 처음 가려던 길을 가지 않고

조금 멀지만 우리가 간 길을 갔던 것은

힘들긴 했어도 잘 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에서 늘 가보지 않은 길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최선이라 판단하여 결정한 길은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길의 끝자락에는

엉겅퀴 한 송이가 예쁘게 피어

우리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더위에 지친 모습의 코스모스 두 송이도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고 조금 지나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천국으로 대려다 주는 것 같았습니다. 


엉겅퀴


더위에 지친 모습의 코스모스


제3 출렁다리도 다녀온 후 

첫날 아쉬웠던 석양을 보기 위해

다시 노을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더 상황이 안 좋아

수평선 위는 아예 구름으로 덮여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하늘에 고래들이 나타나 유유히 수영을 즐기는 

또 다른 모습의 저녁노을을 보여주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준비해 간 간단한 메뉴로 저녁 식사를 하니

마치 집밥을 먹는 것처럼

개운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아내가 있는 곳이 

우리 집이 되는 나이입니다. 


하늘을 헤엄치는 고래들




에움길 / 권영하


가끔은 큰길보다는 오솔길로 가봐라

내비게이션을 달고

고속도로만 달리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울퉁불퉁한 산길을 걸어봐야

자갈길 가시밭도 헤쳐 나갈 수 있다

벼랑길도 걸어봐야

종아리와 심장이 딴딴해진다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뻐꾸기 소리와

땅에서 돋아나는 풀벌레 소리도 들어봐라

굳어있던 마음도 금세 보송보송해지니까

그래야 상처 나고 진흙길 걸어온 사람들과

어깨동무하고 갈 수 있단다

사람은 길을 만들지만 길은 사람을 변화시킨단다


* 에움길: 빙 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 길

- 시 전문 계간지 『시와 소금』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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