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제주-2, 작은 거미
아침에 일어나
연못의 수련과 한참 인사를 나눈 뒤
작고 소박한 뜰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개머루 덩굴과 계요등 덩굴이 어우러진
뒤뜰 어딘가에서
나를 막아서는 거미줄을 발견했습니다.
태풍에도 잘 견뎌준
제법 탄탄한 거미줄 위에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아침 인사를 합니다.
아직 아침거리가 하나도 없는 빈 집에 매달려
아침의 맑은 음악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임영조 시인의 귀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으로 들린 음악이
나에게는 아름다운 빛의 교향곡으로 보입니다.
거미- 곤충채집 6/임영조
그물을 짠다
투명한 유혹의 은실을 풀어
끈끈한 욕망의 신경을 늘여
그물을 친다
씨줄과 날줄을 걸어
사방팔방 짜 늘인 레이스
경계가 삼엄한 레이더망이다
지난 과오를 줄줄이 실토하듯
감히 공중에 내건 죄가
저토록 길로 아름다울 줄이야
속셈이 교활한 자의 언어는 늘
현란하고 멋지고 향기롭다지?
그러니까 머리만 큰 짐승이 뱉어낸
답변과 혀를 조심하도록
그건 대개 사람 잡는 덫이 아니면
어디서 슬쩍 해온 장물이므로
저런! 그새 또 걸려들었군
오죽잖은 날개로 겁 없이 설치더니
그물에 걸려 버둥대는 날벌레
거봐, 내가 뭐랬어?
거미는 죽은 건 먹지 않는다니까
그렇다, 시상(詩想)도 역시
산 걸로 낚아야 제 맛이 난다
잡는 즉시 단단히 포박한 채
고문하듯 비틀고 뒤집고 까 봐야 안다
실컷 두들겨 혐의가 풀린 다음
꼭꼭 씹어 먹어야 좋은 실이 뽑히듯
오늘도 나는 그물을 짠다
빈방에 홀로 웅크린 거미처럼
은빛 투명한 그리움 풀어
막막한 허공에 그물을 친다
온 하루 날파리를 기다리다 지치면
내가 친 그물에 매달려
대롱대롱 그네나 타고, 때로는
가장 팽팽한 현을 골라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탄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