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용기 Oct 09. 2020

The Number-7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7


어느 날 세상에서 숫자가 모두 사라진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지금이 몇 시 인지, 내 나이가 몇 살인지를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마치 갑자기 심한 치매에 걸려 모든 걸 망각한 상태와 비슷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숫자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여행을 떠나 보기로 한다.



숫자가 없는 사회

앞서 숫자가 사라진 사회를 잠시 상상해 보았는데, 정말 숫자가 없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숫자는 인류의 탄생과 함께 만들어진 건 아니고 그 후 어느 시대의 어떤 집단에 의해 발명된 아주 유용한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의 인류학자인 칼렙 에버레트(Caleb Everett) 교수에 의하면 피라하(Piraha)라고 불리는 아마존 지역의 토착민들은 양을 나타내는 어떤 말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는 테이블 위에 배터리를 여러 개 올려놓고 성인 토착민들에게 다른 테이블에 같은 개수의 배터리를 놓아보도록 테스트해 보았다. 하나, 둘, 그리고 셋 정도의 배터리만 놓여 있는 경우 어려움 없이 잘 수행했지만, 4 개 이상의 배터리가 올려져 있을 경우 토착민들은 헷갈리기 시작하여 숫자가 많아질수록 그대로 따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즉 3개까지는 그런대로 셀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모두 ‘많다’ 정도로 그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에버레트 교수는 수학적인 개념은 사람들이 타고 나는 게 아니라 문화와 언어로 변환된 수의 개념을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류는 아마 오랜 시간 동안 피라하 부족처럼 숫자가 없는 사회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 후 필요에 따라 점차 양을 나타내는 숫자와 숫자의 이름을 만들었을 것이며, 그를 통해 수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와 같은 고도의 과학 문명사회를 이룩하게 되었다. 



숫자의 출현

그렇다면 숫자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숫자는 인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왔을까? 인류학자나 수학자들에 의하면 숫자와 양을 세는 일은 ‘하나, 1’라는 양에서 출발했다. 물론 처음에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라는 개념이 존재하고 그것을 이용해 수를 세기 시작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 중 하나는 약 20,000년 전의 유물에서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 콩고에서 규칙적인 선이 새겨진 개코원숭이의 종아리뼈가 발견되었다. ‘이샹고의 뼈(Ishango Bone)’라고 부르는 유물은 무언가를 추적하는 표시처럼 규칙적인데 달의 주기 변화와 관련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학자들은 고대 인류는 말 2 마리의 ‘2’와 계절이 2번 바뀔 때의 ‘2’가 같은 수학적 공통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으로 추측한다. 


‘1’과 ‘0’

숫자와 계수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도시의 출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며, BC 4,000년 경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과, 가축, 곡물과 장인들이 만든 물건들이 있어, 이들을 정리하고 관리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하나, 1’라는 개념을 수를 세는 기본 단위로부터 물건을 측정하는 단위로 변환시킴으로써 또 다른 문명을 만들어내게 하였다. 기원전 3,000년 경, 이집트에서는 ‘하나, 1’가 길이를 측정하기 위한 단위가 되었다. 즉 피라미드나 사원 그리고 운하 및 뾰족한 기념탑(오벨리스크) 등을 건설할 때 정확한 측정을 위해 단위가 필요했다. 그들이 발명한 최초의 길이 단위는 ‘큐빗(cubit)’이었다.  큐빗은 파라오의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길이에 그의 손 폭 하나를 더한 길이였다. 즉 모든 수가 1의 몇 배인가로 그 크기가 결정되듯이, 모든 길이는 이 길이를 기본 단위(즉 하나, 1)로 하여 이 큐빗의 몇 배인가로 결정되게 되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큐빗이라는 길이 표준을 엄격하게 잘 관리함으로써 거대한 건축물들을 놀라우리만큼 정밀하게 건설할 수 있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또한 숫자 하나하나를 다른 모양으로 표시한 최초의 문명 집단이었다. 예를 들어 ‘1’은 ‘선 하나’로, ‘10’은 ‘말발굽처럼 굽은 밧줄’로, ‘100’은 ‘나선형 밧줄’ 그리고 ‘1000’은 ‘연꽃’ 모양 등으로 표시하였다. 


이집트의 숫자에 대한 개념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나 아르키메데스와 같은 위대한 수학자들로 하여금 인류에게 수학이라는 학문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수학적 발전은 로마의 군인이 기원전 212년에 아르키메데스를 죽임으로써 한동안 단절되게 되었다. 수학자들은 로마 시대를 수학의 암흑기라 말한다. 로마도 숫자를 표기하는 로마자가 있었지만 이 숫자는 수학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복하는 일에 국력을 집중했고 그 결과 정복지로부터 가져온 풍부한 물자를 세는 계수법만 있으면 충분하였다. 그래서 로마시대에는 유명한 수학자가 탄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인도 사람들은 BC 500년 경부터 1부터 9까지의 수들을 모두 다른 기호로 나타내어 숫자를 사용하였다. 이 인도 숫자는 후에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실제로 발명된 곳은 인도다. 이 인도 숫자는 후에 아라비아 사람들이 가져가 발전시키고 유럽에 전파함으로써 오늘날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수메르 이후 숫자와 수학에 있어 가장 큰 진전은 AD 500년 경 역시 인도에서 나타났다. 즉 ‘영, 0’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숫자가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영향으로 인도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단히 큰 숫자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추상적 개념을 숫자로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0’이라는 숫자로 표시 함으로써 큰 숫자를 마술처럼 쉽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수학적 연산이 너무도 쉬워졌다. 뿐만 아니라 1보다 무한히 작은 수도 쉽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행운의 수 7

영국의 수학자 알렉스 벨로스(Alex Bellos)는 2014년에 가장 좋아하는 숫자를 묻는 설문 조사를 하였다. 30,000 명이 넘는 사람들로부터 온 응답을 분석한 결과, 수많은 숫자 중 숫자 7이 10%를 차지해 다른 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호감도를 나타내었다. 사람들이 7 다음으로 좋아하는 수는 3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7을 좋아할까? 많은 설명이 존재하지만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60’이라는 수가 가장 중요했다. 그들은 이 수를 수학과 달력의 기본 수로 사용했다. 지금도 그 영향으로 우리는 한 시간은 60분, 1 분은 60초의 시간 체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는 ‘12’라는 수가 특별하였다. 그 영향은 지금까지 미쳐, 우리는 일 년을 12달로 나누고 낮과 밤을 12시간씩으로 나누고 있다. 수학적으로 볼 때 60과 12는 반으로 나누거나 1/3, 혹은 1/4로 나누기가 용이하여 화폐나 측정의 단위로 사용하기가 좋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런데 7은 1과 자신 이외로는 나누어지지 않는 소수(素數, prime number)로 이러한 특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벨로스는 설문을 통해 사람들은 짝수보다는 홀수를 이국적으로 느껴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7과 같은 소수를 좀 더 특별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기독교가 정신적 지주인 서양에서는 성경에서 숫자 7이 신성하고 완전한 수로 표현되기 때문에 좋은 수로 인식한다는 설명도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1 주일이 7일인 달력을 사용한다. 각 요일의 이름 또한 고대 로마인들이 고대의 7 행성인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및 토성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 또한 신성하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무지개는 7가지 색을 가지고 있고, 우리를 즐겁게 하는 음악의 서양 음계는 7개의 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7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기도 한다. 심리학자인 조지 밀러(George Miller)에 의하면 우리 뇌의 단기 기억력(Short-term memory)은 5개에서 9개 정도의 단위로 기억한다고 한다. 즉 우리는 단어나, 해야 할 일, 그리고 사실들을 기억할 때 대략 7개의 덩어리씩으로 정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 후 다른 뇌 연구를 통해서도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자극을 받는 가지의 수가 7개 일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한다고 알려졌다. 전화번호의 경우 7개의 숫자로 이루어져 있는 이유도 이런 단기 기억력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우리는 7을 좋아하게 되고 그로 인해 또 많은 사람들이 ‘7가지’를 이야기 함으로써 7은 더욱 흥미롭고 좋은 수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자의 피라미드, 그리스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등이 포함된 ‘세계 고대 7대 불가사의’다. 여기에 2007년 7월 7일 스위스의 영화제작자이자 탐험가인 베르나르드 베버가 인터넷 등의 여론 조사로 결정하여 발표한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도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만리장성, 인도의 타지마할 등이 포함되어있다. 그 밖에도 어린아이들의 동화 ‘백설 공주’에는 ‘일곱’ 난쟁이가 등장하고, 제임스 본드의 007 영화 시리즈도 인기를 끌었다. 


측정의 7가지 기본 단위

우리나라 측정표준 대표기관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문은 좀 특별한 모양을 하고 있다. 각기 재질과 두께가 다른 7개의 기둥이 비 대칭적으로 서 있다. 이 7 개의 기둥은 각기 측정표준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국제단위계의 7개 단위들을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가 측정 단위를 사용함으로써 정밀한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었듯이 현대 과학 문명은 이러한 7개의 기본 단위를 기초로 하고 있다. 고대에는 각기 필요에 따라 지역별로 단위가 만들어져 사용되었기 때문에 대단히 많은 단위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으며,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각 단위들은 복잡한 환산을 거쳐야만 상호 비교가 가능하여 널리 사용되는데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야드와 파운드를 사용하고 동양에서는 근, 관, 자 등 척관법을 기초로 하였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적인 단위체계는 1790년 경 프랑스에서 시작된 십진법을 기초로 한 미터법으로부터 출발하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이 7개의 단위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과학분야에서는 1874년 센티미터, 그램, 초를 바탕으로 하는 CGS 단위계를 도입하여 사용하였으며, 그다음 해인 1875년 17개국이 미터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국제적인 단위체계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1900년 경에는 보다 실용적인 크기의 단위를 기반으로 하기 위해 미터(m), 킬로그램(kg), 초(s)를 바탕으로 하는 MKS 단위계를 사용하기로 하였으며, 1946년 전기의 단위 중 암페어(A)가 추가되었고, 1954년에는 온도의 단위 ‘켈빈(K)’, 광도의 단위 ‘칸델라 (cd)’가 추가되어 6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1971년 마지막으로 물질량의 단위인 몰(mole)이 7번째로 추가되면서 현재의 SI 단위계가 완성되게 되었다. 


7 개의 단위는 상호 독립된 차원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되며, 명확하게 정의됨으로써 과학적 연구활동에서 실용적이고 영속성이 있도록 결정된 기본 단위이다. 2019년 5월에는 킬로그램, 암페어, 켈빈 및 몰의 정의가 새롭게 바뀜으로써 모든 단위들이 변하지 않는 물리상수를 기반으로 정의되도록 하였다. 때문에 앞으로도 7개의 단위를 기본으로 한 SI 단위 체계는 과학 기술 발전의 기반으로 오랫동안 유지 발전될 것이다. 


슬롯머신에서 최고의 당첨금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7-7-7 조합으로 잭팟이라 부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7을 행운의 숫자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잭팟은 사람들에게 7이 정말 행운의 숫자로 인식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찌 보면 감정이 없고 논리적일 거 같은 수학의 기본 요소인 숫자가 때로는 언어처럼 우리의 기분을 좋게도 하고 나쁘게도 하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 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0년 봄호에 게재한 제 칼럼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The Number-2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