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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Jan 03. 2021

The number, 생명의 각도 23.5도

지구 자전축은 왜 기울어졌을까?


기상학자 잭 홀 박사는 남극의 빙하를 탐사하다 기상 이변 징후를 감지한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해류의 흐름을 바꾸고
이로 인해 지구가 빙하로 뒤덮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믿지 않았지만 얼마 뒤 그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
지구의 북반구가 얼음으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2004년에 개봉된 영화 <투모로우, The Day after Tomorrow>에서 등장하는
전 지구적 재앙의 시나리오다.



지구 자전축 변화와 빙하기


정말 영화의 시나리오와 같은 빙하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지난 2억 5천만 년 동안 지구는 50번이 넘는 빙하기를 겪었다. 최근 수백만 년 동안에도 지구는 대략 10만 년 주기로 대빙하기를 경험하였다. 이 중 가장 최근에 겪은 빙하기는 불과 21,000년 전에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구에 빙하기를 오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다음번 빙하기는 언제쯤 올 것인가? 


1941년 유고슬라비아의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인 밀란코비치는 지구 공전 궤도의 중심이 조금씩 벗어나는 정도인 이심률, 자전축 기울기의 변화, 그리고 지구 자전축 세차운동(자전축 자체가 도는 팽이의 손잡이처럼 원 모양의 요동을 하는 운동)의 주기 등에 의해 지구 표면에 흡수되는 태양열의 분포가 주기적으로 변화되고 이것이 지구 기후 변화의 원인이 된다고 발표하였다. 이를 밀란코비치 주기라 한다. 


그 후 과학자들은 해저 퇴적물 속에서 산소 동위원소를 분석하여 실제 빙하기의 주기를 측정하고 이 주기가 지구 궤도를 결정하는 3가지 변수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지구의 궤도는 타원인데 이 모양이 96,000년을 주기로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면을 기준으로 볼 때 지구의 자전축은 41,000년을 주기로 22.1도에서 24.5도 사이를 오르내리며 변한다. 현재의 기울기는 23.44도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자전축의 세차운동도 21,000년을 주기로 변하고 있다. 최근 하버드 대학의 피터 허이버스(Peter Huybers) 교수는 세 변수 중 지구 자전축 기울기 변화가 빙하기와 가장 연관이 깊다고 주장한다. 


지구 자전축은 왜 기울었을까?


지구에 4 계절을 있게 하고 생명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만든 건 바로 지구가 공전궤도면과 23.5도 정도 기울어져 자전하면서 태양의 둘레를 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구는 왜 이렇게 기울어져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5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 우리가 속한 태양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작은 가스와 먼지의 입자들이 원시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응축하여 작은 행성체를 만들고 이것들이 모아져 행성을 만들어 갔다. 질량이 커지면서 물체를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도 증가하여 점점 근처의 작은 물체들을 흡수해 나갔다. 지구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데 초기에는 지금보다 덜 기울어진 채로 천천히 회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성 크기의 물체가 지구의 한쪽에 강하게 부딪히면서 큰 폭발과 함께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게 되고 지구는 지금과 비슷한 기울기로 기울어져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떨어져 나간 물질은 지구의 인력에 의해 멀리 가지 못하고 지구 주위를 돌게 되었다. 바로 지구의 유일한 위성인 달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충돌이 있은 바로 직후 지구의 자전 속도는 상당히 빨라 하루가 10 시간에서 12시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달도 지금보다 지구에 더 가까이 있었다. 최근에 발표된 달 생성에 관한 새로운 모델에 의하면, 달이 만들어질 때의 충돌이 대단히 커서 지구의 기울기가 70도에 가깝게 기울었으며, 자전도 2시간에 한 번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구와 가까운 초기 달은 지구의 바다에 커다란 밀물과 썰물이 생기도록 하였으며 이 때문에 지구의 자전 속도가 점점 느려지게 되어 오늘날처럼 24시간의 주기를 가지게 되었다.


지구 자전축이 기울지 않았다면


만일 지구의 자전축이 지금처럼 기울어지지 않아 4 계절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지금의 인류문명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추운 고 위도 지방을 피해 적도 부근의 더운 지방에 모여 살게 되었을 것이며, 낮은 농업 생산성으로 인해 인구밀도도 낮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겨울이 없기 때문에 병균이나 해충들과의 전쟁이 극심했을 수도 있다. 또한 밀이나 보리 같은 겨울을 나야만 하는 곡물을 재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현대 문명은 어찌 보면 겨울이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온대지방 사람들은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석탄을 사용하였고, 여기로부터 증기기관이 발명되었으며 이 기술은 산업혁명을 일으켜 오늘날 기술 문명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45억 년 전에 우연히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은 생명이 지구에 살 수 있는 환경과 현대 과학기술 문명을 발전시키는 환경을 만들었다. 어쩌면 지구 자전축 기울기 23.5도는 생명이 있는 지구를 위한 우연이 아닌 필연적 숫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인간의 활동에 의해 지구가 온난화되면서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물의 증발량이 증가하면서 지구 자전축이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만든 변화된 지구 환경은 먼 훗날 어떤 모습으로 지구의 기후와 환경에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지구 사진 출처: Pixabay

#본 칼럼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사보인 <지질, 자원, 사람> 2018년 3-4월호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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