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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Apr 11. 2021

자연의 색, 녹색 Green

녹색은 잘 확립된 희망의 새로운 상징이다.
 파란색에서는 영혼이 방황할 수 있지만,
 녹색에서는 쉴 수 있다.
- 메리 웹 Mary Webb (영국의 시인, 소설가)


자연의 색이 무엇인지 물으면 별로 고민하지 않고 녹색이라고 말하게 된다. 겨울을 지나고 나면 풀밭에는 연록의 새싹들이 돋아나고, 나무에도 녹색의 새순들이 돋아나 세상을 온통 녹색으로 물들여 가기 시작한다. 봄부터 여름 내내 우리는 녹색에 풍덩 빠져 지내면서 편안함과 힐링을 느끼게 된다.


자연의 색

 

그렇다면 풀과 나무 등 자연은 왜 녹색으로 보일까? 답부터 말하면 바로 풀과 대부분의 나뭇잎 속에 있는 엽록소 때문이다. 인간의 눈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빛의 파장과 각 파장의 세기를 읽고 그 결과를 뇌로 보내 색으로 인식하게 된다. 어떤 물체가 색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물체가 다른 파장의 빛들은 흡수하고 그 물체의 색으로 보이는 파장의 빛만 반사하여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붉은 사과는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하고 붉은빛에 해당하는 파장의 빛만 반사하며, 노란색의 필터는 모든 빛을 흡수하고 노란빛에 해당하는 파장의 빛만 통과시킨다.


식물 잎의 녹색은 잎 속에 들어 있는 엽록소라는 광합성을 하는 물감에 의해 나타난다. 엽록소는 푸른 계열 및 붉은 계열의 빛을 흡수하고 녹색의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녹색을 띠게 된다. 그러나 잎에는 엽록소 말고도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도 함께 있어 이들의 비율에 따라 잎의 색이 달라지게 된다. 카로티노이드는 푸른색 계열의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노란 계열의 빛이 산란되고 반사되며, 잎 속에 엽록소의 비율이 낮은 이른 봄이나 엽록소가 분해되어 없어지는 가을에 고유의 노란색을 나타내게 된다. 연두는 바로 초록과 노랑이 섞여 만들어지는 색으로, 영어로는 yellow green이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軟豆로 나타내어 완두콩처럼 연한 콩 색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식물들은 햇빛의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지 않고 초록빛은 반사하도록 진화했을까? 만일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온통 까만 풀과 나뭇잎으로 뒤덮인 자연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인트 루이스의 워싱턴 대학 교수인 로버트 블랭켄쉽 (Robert E. Blankenship) 교수에 의하면 식물들은 녹색 빛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식물에는 엽록소 이외에도 다른 색소가 있어 실제로 녹색 빛의 90 %를 흡수한다. 다른 파장의 빛은 반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 10 %의 녹색 빛이 우리 눈에 들어와 식물의 색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의 눈은 녹색 빛에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들이 다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된 적은 양의 녹색 빛이 우리 눈에 자연의 아름다운 녹색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색 인지


사람들의 눈 뒤쪽에 있는 망막에는 두 종류의 감광 세포가 있다. 막대 모양의 간상세포와 고깔 모양의 추상세포가 있는데, 추상세포는 색을 구분하고 간상세포는 밤처럼 어두운 환경에서 흑백 모드의 상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망막 세포에 광자가 부딪히면 세포에 있는 옵신이라는 색소 분자가 전자기 에너지를 흡수하여 전기적인 신호를 만들고 이 신호가 시신경을 따라 뇌로 전달되어 색과 상을 만들게 된다. 색을 구분하는 추상세포는 광자의 각기 다른 주파수에서 감도가 가장 높아지는 세 가지 타입이 있다. 즉 짧은 파장의 파란빛 계열, 중간의 초록빛 계열, 그리고 긴 파장의 붉은빛 계열을 감지하는 세포들이다. 이 세 가지의 조합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색을 구분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거의 1백만 가지에 가까운 색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색약이나 색맹의 경우 추상세포가 3개보다 적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적은 10,000가지 정도의 색만을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망막에 있는 추상세포는 전자기파의 넓은 주파수 영역 중 파장이 380 nm (나노미터, 1 nm는 10억 분의 1 m)에서 720 nm의 아주 좁은 일부 영역만을 감지할 수 있으며 이 구간을 가시광선이라 부른다.


앞서 말한 대로 사람들은 녹색 빛에 매우 민감하다. 미국 웰즐리 대학(Wellesley College)의 베 콘웨이 교수는 이러한 인간의 빛 인지능력은 바다에 살던 생명체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유산일 수 있다고 말한다. 바닷속에서는 많은 빛들이 걸러지는데, 녹색 빛은 상당히 깊이까지 잘 들어간다. 그에 의하면 적-록 색맹인 사람도 녹색의 미묘한 그러데이션에 민감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람들이 녹색에 민감한 이유를 다른 진화적인 측면으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즉 수렵시대의 인류는 초록색 숲 속에서 사냥을 하거나 열매를 채취해야 했기 때문에 녹색 사이에 숨어 있는 맹수나 열매 등을 잘 구별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녹색과 창의성


잠시 녹색을 바라보기만 해도 창의성이 좋아진다? 독일의 뮌헨 대학교(University of Munich)의 한 연구팀은 65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짧은 온라인 창의성 테스트를 해보았다. 각 참가자들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으면서도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빈 깡통의 용도를 적게 했다. 그런데 테스트를 시작하기 전에 각 참가자들의 로그인 스크린은 녹색 혹은 흰색 스크린으로 세팅을 해두었다. 그런데 녹색 스크린으로 로그인을 한 참가자들이 다른 스크린으로 로그인한 참가자에 비해 20 % 정도 높은 창의성 평가를 받았다. 실험자들은 녹색과 각각 빨강, 회색 및 파란 스크린을 비교해가면서 실험을 수행했는데 마찬가지로 녹색이 창의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실험자들은 우리 두뇌가 자연의 색인 녹색과 ‘성장’, ‘발전’, ‘생명’, ‘희망’ 등의 의미를 결합시킴으로써 창의성 향상에 도움을 준 것으로 설명하였다.


유사한 연구가 그 후 영국의 리젠츠 유니버시티 런던(Regent’s University London)의 연구팀에 의해 다시 수행되었다. 이번에는 108명의 학생들을 임의로 자리를 배정하였는데, 식물들로 둘러 쌓여 있고 블라인드가 열려있어 자연을 볼 수 있는 자리와, 식물이 주변에 없고 블라인드도 닫혀있는 두 종류의 자리였다. 두 번째 자리에 앉은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는 흰 종이에 그리고 나머지 반은 녹색 종이에 과제를 수행하게 했다.


언어적 창의성 검사를 위해서는 “당신이 생각하는 벽돌의 모든 용도를 적으시오”와 같은 문제가 제시되었고, 시각적 창의성을 검사하기 위해서는 종이 위에 그려진 30개의 원을 최대한 사용하여 도형을 완성하도록 하였다.


과제 수행 결과 언어적 창의성 검사에서는 오히려 닫혀있는 방 혹은 흰색 종이에 과제를 수행한 학생들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시각적 창의성 부분에서는 독일의 연구결과와 마찬가지로 녹색 환경 혹은 녹색 종이에 노출된 학생들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연구자들은 언어적 및 시각적 정보를 처리하는 두뇌의 과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녹색 효과는 주로 시각적 분야에서 창의성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녹색의 심리학 및 건강


녹색은 자연과 자연세계를 상징하는 색으로 평온, 행운, 건강 등과 같이 긍정적인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느낌으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녹색은 오랜 기간 동안 다산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15세기에는 결혼 예복으로 사용되었다. 녹색은 안정을 주기 위한 장식에 사용되며, TV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긴장을 풀게 하기 위해 녹색 방에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녹색은 긴장을 완화시켜주고 치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어두운 녹색 계열의 색이 그런 효과가 크다. 이런 현상은 녹색이 뇌하수체를 자극하여 근육의 이완을 유발하고 혈중 히스타민 수준을 증가시켜 알레르기 반응을 완화시키기 때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녹색이 차분하고 안정을 주는 색이지만, 때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흥분을 느끼게 하는 색이라고 한다. 특히 라임 색과 같이 밝은 계열의 녹색이 이런 경향이 있다. 이러한 밝은 녹색은 신선한 느낌이 들게 하고 어떤 일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녹색이 차분하고 안정을 주는 색이지만 이러한 느낌은 개인의 과거 경험과 어떤 집단의 문화적 관습 등에 의해 다르게 영향을 주게 된다.


2016년의 한 연구에 의하면, 여성들의 경우 녹색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기대 수명이 길고 정신 건강도 향상되었다고 한다. 하버드 T.H. 챈 보건대학원(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 및 브리검 앤드 위민스 병원 (Brigham And Women's Hospital)의 연구팀은 100,000 명 이상의 여성들 집 근처에 있는 식물 및 식물의 양과 죽음의 위험 정도를 비교 연구했다. 8년간의 연구 끝에 녹색이 가장 많은 지역에 살던 참가자들은 녹색이 가장 적은 지역에 살던 참가자들에 비해 12 % 낮은 사망률을 나타냈다. 녹색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야외에서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어 정신 건강에 이로웠으며, 호흡기 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낮추는데도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녹색 신호등, 그린 백 달러


최초의 신호등은 자동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차를 위한 것이었다. 기찻길에는 붉은색과 초록색 두 가지만 있었다. 많은 문화권에서 붉은색은 위험을 의미한다. 붉은색은 가시광선 중 가장 긴 파장을 가지고 있어 다른 색 보다 멀리서도 인식이 가능하다. 붉은색 신호는 자동차가 생기기 전부터 기찻길의 앞쪽에 장애물 유무를 알려주는 기계적 신호 장치에 사용되었다.



녹색은 가시광선의 중간 정도의 파장을 가지고 있어 붉은색과 노란색 다음으로 가시성이 높은 색이다. 초기 기차 신호에서 녹색은 ‘주의’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아무 장애물이 없을 때에는 흰색 혹은 투명 등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야간에 기관사들이 수평선 부근의 별을 보고 흰색 혹은 투명색의 신호로 혼동하여 충돌 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 후 녹색이 ‘직진’의 신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 오랫동안 기찻길에서는 녹색과 붉은색 신호만 사용했다. 자동차가 등장한 뒤 1900년대 중반까지 어두운 곳에서는 붉은색 신호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노란색 신호가 붉은색 신호와 함께 정지 신호로 사용되었다. 그 후 기술의 발달로 붉은색 신호의 가시성이 높아지게 되면서 붉은 신호가 정지 신호로 다시 자리 잡게 되고, 가시성이 높아 눈에 달 보이는 노란색 신호는 ‘주의’ 신호로 자리 잡게 되었다.


1860년대 미국 정부는 새로운 지폐를 인쇄했다. 지폐의 한쪽을 녹색 잉크로 인쇄했는데 이는 그 당시에 있던 카메라는 흑백 사진만 찍을 수 있어 위조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때부터 이 지폐를 ‘그린백 달러(green back dollar)’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1929년에 지폐의 크기를 줄이고 디자인을 바꾸었지만 녹색 잉크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 이유는 녹색 잉크가 풍부하고 오래갈 뿐만 아니라 녹색이 안정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녹색은 감성적으로 긍정적인 색이며 파란색 다음으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자연 속에 가장 풍부하게 존재하는 색이기도 하며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인식할 수 있는 색이기도 하다. 색체 심리학적으로는 균형과 조화의 색이며, 성장과 새로움 그리고 부활의 색이라고 한다. 연둣빛 새싹이나 막 돋아난 어린잎들을 보면서 정말 생명력이 넘치는 사랑스러운 어린아이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 이 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 <KRISS> 2021년 봄호에 실긴 제 글입니다.

* 그림의 일부는  <KRISS> 2021년 봄호에서 가져왔으며, 신호등 그림의 출처는 Pixbay

#color #녹색 #green #자연의_색 #창의성 #녹색의_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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