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1
봄마다 찾아오는 제비는 동네에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보랏빛 제비꽃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돌아옵니다.
집 앞에 몇 년째 비어있어 이제는 폐허가 된
연구소 사택이었던 낡은 아파트가 있습니다.
오래전
미국에서 돌아와 4년 정도를 살았던
추억이 담긴 아파트입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주차장이었던 자리는 풀밭이 되었고,
깨진 시멘트 바닥 사이사이에
제비꽃들이 제 세상을 펼쳤습니다.
외손녀가 봄꽃들과 놀고 있는 사이
나는 바닥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꽃들과 같은 높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이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에서 '이해하다'라는 말은 'understand'입니다.
원래의 어원은 고대 영어의 'under(between, among)'와
'standan(to satand)'가 합쳐진 말로,
'~의 중간에 서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래에 서다'라는 말이라고도 주장합니다.
아무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최소한 같은 눈높이에 서는 것이겠지요.
이 봄엔
봄 꽃들과 가능하면 눈높이를 맞추고
꽃들의 마음을 사진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제비꽃에 대하여/ 안도현
제비꽃에 대하여 -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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