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빛

by 박용기


가을이 깊이를 더해간다. 주변의 나무들도 가을 색으로 물들고 가을꽃들도 한 해의 마감을 향해 마지막 향기를 발하고 있다. 가을은 꽃과 나무가 빛의 향연을 펼치는 계절이다. 빛이 고운 꽃과 열매 그리고 나뭇잎들의 가을 빛 속에 잠시 빠져들어 본다.




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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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빛을 꽃과 이름에 잘 담고 있는 꽃이 있다.
바로 대상화(待霜花)다.


이름 그대로의 뜻은 ‘서리를 기다리는 꽃’이다.

영어 이름은 Anemone hupehensis.

그래서 가을 아네모네라고도 부른다.

또 추명국(秋明菊)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가을을 밝히는 국화’라는 뜻 이리라.


가을에 피는 꽃이어서인지 꽃말은 좀 서글픈 뜻을 가지고 있다.

‘시들어 가는 사랑’

그래도 이 꽃 속에서 이 가을의 참 아름다운 빛을 본다.

선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를 느낀다.




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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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을에 피어나는 꽃 중에
나는 구절초를 가장 좋아한다.


국화처럼 화려하지도,

쑥부쟁이처럼 너무 연약해 보이지도 않는

적당한 화려함과

적당한 청초함을 지닌 꽃.


10월의 구절초는

꽃이 아니라 시로 피어난다.

천사들의 합창으로 피어난다.




산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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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은 아침 이슬 맺힌 구절초나
붉게 물든 단풍나무에만 내리는 게 아니다.

작고 앙증맞은 산사나무 열매에도

이 가을 붉은 가을빛이 내려앉는다.

가을이 되면 붉게 익는 열매들이 많은데

즐겨 찍는 가을 열매의 하나가 산사나무 열매다.


작은 사과를 닮은 모양과

긴 톱날 같은 결각이 있는 잎이

다른 열매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산사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성 소교목으로

한자로는 산사(山査)라고 쓰며,

산에서 자라는 아침의 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순 우리말로는 아가위나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산사나무를 호쏜(Hawthorn)이라고 부르는데,

'벼락을 막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나무가 벼락을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밭의 울타리로 애용되며,

5월이면 흰색의 작고 예쁜 꽃이 피기 때문에

5월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메이(May)라고도 부른다.


1620년 유럽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신대륙으로 건너가면서 타고 간 배의 이름은

바로 '더 메이 플라워(The May Flower)호'다.

여기에는 산사나무가 벼락을 막아주는 나무이므로

안전을 기원하는 뜻이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위해

정들었던 조국을 떠나 미지의 신세계로 간 청교도들의

간절한 믿음을 간직한 듯 느껴지는

산사나무 열매가 이 가을에도 붉다.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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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이제 곧 절정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절정’이라는 말은 ‘끝’이라는 말과 잇대어 있습니다.

절정에 도달한 모든 것은

이내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됨을 뜻한다.


이 가을을 붉게 물들이는 산수유 열매도

가을빛으로 물들어

절정의 빛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 붉은빛 속에서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아쉬움과 슬픔도 느껴진다.


하지만 산수유는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여

새 봄을 준비하고 있음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 죽음의 종말을 넘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는 것처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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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낙엽의 계절이기도 하다.

포근한 이끼 위에 내려앉아

아침의 햇볕 속에서

가을빛으로 물들어

편안히 쉬고 있는 낙엽을 만났다.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물들어

다시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원숙한 성자의 모습.


한참을 들여다보며

정성스레 사진에 담았다.


내 가을의 모습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솔로몬의 계절/ 이영균


가을

황금 들녘, 천고마비

풍요의 계절입니다.

아닙니다.


추풍낙엽, 스산한 산천

슬픔의 계절입니다.

그래요.


희로애락, 풍요와 빈곤

이율 배반의 계절입니다.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삶의 무게를 달리합니다.




#가을의_빛 #대상화 #구절초 #산사나무_열매 #산수유 #낙엽

* 이 글은 대덕교회 소식지인 <대덕행전> 2021년 가을호에 게재된 제 포토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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