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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Jan 02. 2022

그해 겨울

꽃 사진을 주로 찍는 나에게 겨울엔 사진에 담을 꽃들이 없다. 하지만 겨울에도 생명은 살아가고 가까이 다가가 마주하면 봄을 준비하는 작은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그 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계절이다. 어느 해 겨울에 사진에 담아놓은 겨울 이야기를 모아 보기로 한다.



산사나무 열매



겨울은 춥지만 춥기 때문에 특별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날이 있다.

성애가 돋은 녹색 잎의 덩굴과

그 위에 떨어져 쉬고 있는 산사나무 열매가

더 붉게 느껴진다.


사실 이 열매는 여기가 아니라

땅에 떨어져야 제 구실을 하는 아이지만

왠지 여기가 안식처인 듯

더 편안해 보인다.


옥토에 떨어진 씨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세상은 언제나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중 좋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 이리라.



얼음


어느 해 겨울

얼음 사진을 찍으러

추운 밖에 나간 적이 있다.


흐르는 물결과 하얀 기포가

마치 화석이 된 듯

사진이 된 듯

그대로 얼어 아름다웠다.


겨울 강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디테일이 숨어 있었다.

얼음이 언 강가에서

낮은 자세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잠자는 듯 보이지만

봄을 향해 천천히 흐르는

겨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백당나무 열매


눈이 내리는 포근한 날엔

수목원으로 달려갔다.

마르고 여윈 겨울 열매를

보물처럼 매달고 서있는

겨울나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눈 없이 춥기만 한 날에는

나이 들어 주름진 노인의 얼굴처럼

볼품없고 처량해 보이던 백당나무 열매들도

눈이 내리는 날이면 생기를 되찾고

볼이 발그레한 수줍은 새색시가 된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렇게

수목원 겨울 숲은 따뜻했다.


사라질 순간을 담는 일

그리고 언젠가 그 시간들을

살짝 꺼내 보는 즐거움

나에게 사진을 찍는 일은

시를 쓰는 일이다.



서양톱풀


원래 6월에서 9월 사이에 꽃을 피우는 서양톱풀이

늑장을 부리다가 흰 눈을 만났다.


꽃이 무척 시릴 것만 같아 안타깝지만,

서양톱풀 설중화는 보기 드문 모습이어서

반갑고 신기했다.


잎 모양이 톱을 닮았다고 붙여진 톱풀은 국화과에 속한다.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온 서양톱풀(Achillea millefolium)은

얘로(yarrow, common yarrow)라고도 불린다.


서양톱풀은 케모마일에 함유되어 있는 성분들인

정유, 플라빈, 아줄렌(Azulen, 탄수화물의 일종) 등이 함유되어 있어

병원균을 죽이는 역할을 하며,

오래전부터 여러 증상의 치료에 사용한

약효가 매우 뛰어난 허브라고 한다.


꽃말은 ‘변함없는 사랑’인데,

변하지 않는 사랑을 위해

눈 속에서 그대로 얼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 해 겨울에 만난 이 꽃의 봄소식이 궁금하다.



겨울 모습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


마른 씨앗 몇 개 달고 서있는

앙상한 단풍나무,

그 가지에 내려앉은 차가운 서리,

그리고 허공을 이리저리 헤매는 뿌연 안개.


겨울 아침 수목원을 걸으며

춥고 쓸쓸한 이런 겨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안갯속으로 천천히 떠오른 해는

따스하고 온화한 느낌으로

나를 그 자리에 멈추게 하였다.


어려움 속에서도 늘 우리를 향해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뻗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겨울은 앙상한 나무 가지처럼

숨어있던 내면의 나를 보게 하고

추위 속에서도 포근한 햇볕처럼 나를 감싸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발견하는 계절이다.





겨울 고해/ 홍수희


겨울밤엔

하늘도 빙판길입니다


내 마음 외로울 때마다

하나 둘 쏘아 올렸던

작은 기도 점점이

차가운 하늘밭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떨어지더니


잠들었던

내 무딘 영혼에

날카로운 파편으로

아프게 박혀옵니다


사랑이 되지 못한

바램 같은 것

실천이 되지 못한

독백 같은 것


더러는 아아,

별이 되지 못한

희망 같은 것


다시 돌아다보면

너를 위한 기도마저도

나를 위한 안위의

기도였다는 그것


온 세상이 꽁꽁 얼어

눈빛이 맑아질 때야

비로소 보이는 그것


겨울은,

나에게도 숨어있던

나를 보게 합니다




*이 글은 대덕교회 소식지 <대덕행전>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제 포토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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