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길어진 해 덕분에 하루 점점 길게 느껴진다. 춘분도 지났고 하지 때 까지는 해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세상은 어수선한데 계절은 어김없이 변화되고 움직인다. 이제 여름이 가까이 다가오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 중에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다.
평생 동안 잊지 않고 지낸다.
"세상에 돈도 잃을 수 있고 재물도 사라질 수 있고 사랑도 저 멀리 떠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네 곁에 오래오래 있을 것이다. 아들아! 네가 머릿속에 채워 둔 배움은 절대로 달아나지 않는다. 목이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너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살면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지식은 남아 있다."
아버지의 말씀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라도 책을 손에서 놓아 본 일이 없다. 뭐라도 읽고 쓰고 생각을 하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끔 수업 중에 교과서로 가리고 소설책 읽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그야말로 초 죽음이 되돌 맞아 본 적도 있을 만큼 고교 시절 책 읽기에 열중한 때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오십 중반을 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늘 뭔가를 읽고 뭔가를 쓰고 어떤 일에 대해 생각을 하는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일하는 시간을 빼고는 그리 지루하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다.
학창 시절 뭐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사춘기 시절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은 그래서 기다려지는 모른다. 아무리 고등학교 삼 학년 방학이라도 꼭 책 몇 권은 읽었다. 노벨 수상 작이라고 한글로 번역되어 나오면 어떻게든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시켜 책을 사서 읽었다.
기억의 저편에서 들리는 소리가 고 2 때라고 소리친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시절에 고교생은 방학이 방학이 아니다. 어지 놀러를 간다든지 바캉스를 간다는 것은 불량학생 아니며 간 큰 인간으로 취급당했다. 그리고 교외 지도부 선생님(그 시절 그러니깐 교복을 입고 있다가 어떤 대머리 놈이 총으로 권력을 빼앗고 미안한지 교복 안 입어도 된다고 하던 시절, 서슬 퍼른 학생 지도 선생님이 대부분 학교 밖에서 학생 지도를 하던 시절이었다. 무서워!)에게 걸리면 정말 죽음이었으니깐!
차라리 방학이라도 학교에 나오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았다. 삼 학년 선배들은 방학이라도 수업을 계속했고 1학년 2학년도 학교에 나오는 학우들이 꽤 많았다.
입시가 뭐라고 모두 대학을 가기 위해 청춘의 즐거움과 이상저 멀리 던져 버리고 서열 정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는 모습이 왠지 싫었다. 아니 공부를 못하니깐 ㅎㅎㅎ
난 공부에 별 취미가 없었다. 수학의 기호와 숫자는 외계인의 기호 같았고 물리와 화학의 공식과 주기율표는 악마의 주문과도 같았다.
그나마 국어와 역사는 나의 가슴속에 깊은 감성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과목이었다.
그러나 국어와 역사만 잘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나도 대학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했다.
더운 여름 교실에 앉아, 그것도 한 반에 70 명 가까운 인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창문을 모두 떼어 버리고 있어도, 러닝 샤츠만 입고 있어서 더위는 어쩔 수 없었다.
저녁 시간이 되면 그래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시간 견디기 힘들다. 창 밖의 나무 그늘에서 매미가 시원한 그늘을 유혹한다. 매미 소리에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면 나도 나무 그늘에서 노래하는 매미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곤 했다.
당연히 교과서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책상에 머리를 붙이고 자는 친구도 있고 멍하니 창 밖을 쳐다보는 친구들도 있다.
당시에 유행하던 휴대용 소형 라디오나 워크맨이라는 카세트테이프 재생기를 꽂고 음악을 듣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 같이 책을 들고 와서 보는 친구도 한 두 명 정도는 있었다.
그 한 둘 중에는 가끔 야한 책을 돌려 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소설보다 들킬 때의 벌 보다 야한 잡지 보다가 들키면 그야말로 저승을 살짝 갔다 와야 할 정도다. 신기하게도 그 잡지는 그 뒤로 교무실 여기저기를 여행하고 있다는 반장의 말이 들린다. (남자 학교에 남자 선생이 전부였다면 믿을까!)
말이 좋아 자율학습이지 각 반 담임 선생님들이 수시로 순찰을 돈다. 열개 학급에 선생님들은 교대로 학교 나오셔서 우리를 감시했다. 그리고 다른 학년의 선생님들도 방학이지만 아이들 자습 지도를 위해 학교에 나오셨다.
그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서 모두 알아서 행동해야 한다.
들키는 날에는 오 형제 바람을 맞는다. 오 형제 바람이란 선생님 손바닥을 말한다. 다섯 손가락이 가지런하고 넓덕 한 손바닥에 얇은 빰을 사정없이 강타하면 눈물이 찔끔 흐른다.
특히 학생 지도부 선생님이나 아직 젊은 30대 나이의 선생님들에게 걸리는 날에는 속된 말로 뼈도 못 추린다.
대학 입시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지만 그때 읽은 책은 이 나이에도 아직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칼 세이건 박사의 코스모스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요즘 모 유명하신 전직 장관 출신 작가님의 권장도서라 더 유명해진 책이다)
그나마 토요일 오후에는 학교 어디에 있어도 간섭할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는다.
자습을 하러 오는 친구들도 별로 없다. 토요일도 특별히 학교 외에 갈 곳이 없는 나는 도시락에 밥만 싸서 학교로 온다. 책 몇 권과 함께.
가방은 교실에 던지고 책을 들고 학교 교정 주변에 심어 놓은 커다란 나무 밑 그늘을 찾아간다. 적어도 학교의 연륜이 오래되었으니 교정에는 이 삼십 년 된 큰 나무들이 많았고 당연히 넓은 그늘이 만들어져 있다.
벤치도 있고 책을 들고 누워 매미 우는 소리, 여름 벌레 우는 소리를 친구 삼아 책을 읽을 때 나는 천국에 와 있었다.
누워서 바라보는 여름 하늘은 지금처럼 미세먼지가 뿌옇게 있는 그런 하늘이 아니었다.
습기 가득 먹은 솜사탕 같은 뭉개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흰 뭉게구름 사이에 보이는 파란 하늘은 손을 찌르면 파랗게 물들 정도의 빛깔을 뽐내고 있다.
책 속에 주인공이 되고 책 속 주인공의 연인이 되기도 한다. 읽어 내려가는 책은 어느새 반이 넘어가고 배 속은 천둥 치듯 요란하다.
오전 햇살이 뜨겁지 않으니 감시자 선생님이 없는 토요일 하루는 운동장서 마음껏 공을 찬다.
슬슬 배가 고프니 친구들은 공 차는 일을 멈추고 내 이름을 부른다.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읽던 책의 페이지를 접어 읽을 곳을 표시하고 교실에 던져 놓은 책가방에 도시락을 들고 교문을 나선다.
학교 앞 분식집에 라면이 참 맛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라면에 수프 넣고 파 송송 계란 탁 깨어 넣고 고춧가루와 후춧가루 조금 넣어 주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라면이 지금 라면보다 훨씬 맛있던 이유가 뭘까!
모래라도 씹어 삼킬 듯한 질풍노도와 같은 십 대들이니 먹는 양도 대단하다. 라면과 밥을 함께 말아먹고 후식으로 여유가 조금 되는 친구들이 빵까지 산다. 그리고 꺼억꺽 거리며 다시 학교로 간다.
슬슬 더워지는 정오를 넘긴 시간에 벤치에 눕기도 하고 주변에 굴러 다니는 포장 박스를 가져와 운동장 바닥에 드러눕는다.
모두 잔뜩 떠들다가 살짝 잠이 든다. 그 여름 날 낮시간 서늘한 그늘에 누워 자는 잠은 꿀 잠이다. 맛있는 잠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잠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한참 깊이 잠들었으니 코를 골고 잠을 잔다. 순간 나의 코 고는 소리에 내가 놀라 잠을 깬다.
시계를 본다. 1 시간이 넘게 잠을 자고 있다.
다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다.
긴긴 여름의 해가 아직도 중천에 떠 있지만 3시가 지난 시간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온다.
나는 다시 책을 펼쳐 들고, 친구들은 다시 공을 운동장으로 향해 던진다.
그렇게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젊은 청춘들은 뒤엉켜 한 바탕 신나게 논다.
자 멀리 서녘 하늘에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집으로 향한다. 저녁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햇살은 그 모습을 숨기기 싫은지 벌겋게 상기된 표정으로 우리의 귀가 길을 밝혀 준다.
우리들의 짧은 여름은 이렇게 또 하루를 떠나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