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 시작과 함께 찾아오는 향기
추위가 절정에 다다른다.
음력 12월, 양력 1월에 이르러 추위는 기세가 대지를 꽁꽁 얼어 붙게 만든다.
지구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래서 계절도 바뀌고 시간도 흐른다.
매서운 칼바람과 찬 공기가 기세 등등하지만 시간은 기어이 흘러 음력 정월이 오면서 찬바람 속에 가만히 귀를 귀울여 보면 봄의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공기 속에 봄이 아주 조용히 소리를 내 듯 겨우내 굳었던 땅도 봄이 어느새 살금살금 다가옴을 느낀다.
어느 순간 땅을 내딛고는 '아~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느낌이 다르다. 딱딱하게 굳은 느낌이 어느새 약간의 폭신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차갑고 굳게 얼었던 대지에 생명의 기운이 움터 오른다.
앞마당에 겨우내 생기 잃은 누런 빛의 풀들 사이로 파릇파릇 쏟아 나는 작은 새싹들이 조심스레 머리를 낼까 말까 하는 그들의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마당과 논두렁 밭두렁에 꼼지락꼼지락 봄이 몰래몰래 숨죽이며 다가온다.
밝은 달이 휘영청 떠 오는 정월 대보름이 가까워질수록 떠나기 싫은 겨울은 시샘을 하지만 봄은 조금씩 조금씩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쟁반 같이 커다란 둥근 황금빛 보름달에 소원을 빈다.
새 생명이 알려 주는 봄의 시작에 우리의 마음도 다가올 새 날을 설렘 속에 맞이 한다.
시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다. 그래서 봄은 기어코 우리 곁에 다가와 새로운 시작을 던져 준다.
보름달이 겨울에게 말했을까 겨울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떠날 채비를 한다.
그 떠나는 빈자리에 이제 봄이 찾아 든다.
땅에서는 파릇파릇 수줍게 올라오는 풀잎들이 조금더 힘을 내어 본다. 그렇게 봄은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이제 봄을 맞이 하는 농부의 시간이 다가온다.
들녘에는 농부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보이고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동녘의 따스함이 겨울을 한기를 조금씩 조금씩 밀어낸다.
집 앞마당 텃밭에도 앞산에도 뒷산에도 파릇한 초록이 아쉬움에 떠나기 싫은 지난 겨울을 밀어낸다. 땅 속 얼었던 동장군도 서서히 힘을 잃는다. 여린 파란 새싹들이 조금 더 힘을 내어 본다.
떠나기 싫은 차가움이 초록을 시샘하지만 그래도 불어오는 바람의 숨결에 속에 따스함에 밀려 떠나 간다.
따스함의 바람에 힘을 얻은 쌔싹들이 좀 더 기운을 낸다.
따스한 동녘의 바람을 맞으며 농부 겨울 동안 싸인 먼지를 떨고 얼었던 땅속에 기운을 불어넣는다.
새벽 단잠에 빠져 있던 아내는 아침 햇살의 속삭임에 잠을 깨고 볕 좋은 초봄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붉은 매화 꽃잎과 하나가 된다.
밭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남편의 팔을 붙잡고 뭔가 큰 발견을 한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들에 핀 들꽃의 속삭임과 들꽃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부지런한 벌 이야기를 정신없이 솟아내고 있다.
무심한 시간에 무심히 바라보고 지나친 앞마당 뜰에는 들꽃이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작고 앙증맞은 벌은 꽃들의 함박웃음에 답이라도 하듯이 여기저기 꽃들을 간질이고 있다.
작고 앙증맞아 보이는 벌의 분주한 모습이 귀엽다.
봄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부지런히 꿀을 따는 모습에 내 마음속에도 깊은 감동의 물결이 일렁거린다.
산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인공을 가미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에 맡기고 자연의 흐름 속에 던져 놓기로 했다.
한 두 해가 흐르고 작년부터 심지도 않았는데 잡초들 사이로 냉이며 민들레 같은 들꽃들이 서로의 색을 뽐내며 봄의 교향악을 울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나는 노랗고 하얀 꽃들이 초록의 풀들과 어우러진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봄꽃이 피어나고 벌들도 꽃을 따라 함께 봄을 합창한다.
이 작고 귀여운 봄의 전령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주변에 벌을 키우며 꿀을 채집하는 농장도 없는데 참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아내는 벌통이라도 갖다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야단법석을 떤다. 나도 그 장단에 맞추어 연신 고개를 끄덕이지만 벌을 키워 본 일도 없고 누가 가르쳐 줄 사람도 없다.
혹시 이웃에 피해를 줄까 걱정도 되고, 아내 역시 무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그저 하는 말일 뿐이다.
봄의 기운이 겨울을 완전히 몰라내고 들꽃 내음과 풀내음이 짇어진다. 따스한 봄 햇살을 희롱하는 벌들이 소리 높여 노래한다.
자연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아침을 도시에서 상상할 수도 없다. 인생의 1막 2장을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물질이 풍요와는 담을 쌓고 사는 전원생활이지만 세상을 다 가진 듯 착각에 빠져 들게 하기 족한 봄의 풍경화다.
한 해의 시작을 알려 주는 봄은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에 그 끝을 알린다.
시작과 끝은 항상 맞물려 돌아간다.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시작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와 같다.
자연은 순환하는 생명 그 자체다. 살아 숨 쉬는 자연 앞에 마음도 절로 겸손해진다. 나는 자연을 방해할 수 없다. 흐르는 자연 속에 그저 나를 던져 놓고 흐름 따라 살아간다. 흐름이 나의 마음을 살찌운다. 마음이 풍요로우니 보는 세상의 모습이 달라진다.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봄이 전령사 벌이 오늘도 붕붕거리며 분주하다.
일 년의 시작은 봄이요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다.
'대학'에 이런 말이 있다.
'일신우일신!'
매일매일이 새롭다. 자연의 모습도 매일 새롭게 다가온다. 같은 옷을 입지 않는 모델처럼.
어제의 고통은 어제로 흘려보내고 오늘의 새 아침을 맞는다.
지난해의 고통과 아픔도 떠나보내고 희망 가득한 새해, 새봄을 맞이 한다. 자연을 벗 삼아 자연이 주는 많은 선물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나 스스로에게 감사하고 싶다.
반복되는 평범하고 작은 일상의 하루가 나에게는 행복이다. 만물이 새롭게 돋아 나는 봄은 나에게 희망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