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얼굴을 보지 않고 상대방과 하는 말이 어쩐지 어색하다.
어딘가에 전화를 하려면 망설여진다. 성격이 소심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할 말을 마음대로 못 해서 그런지 전화 목소리로 상대방과 긴 이야기를 못한다. 아내나 주변 사람들이 전화를 들고 오랜 시간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문자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들어 나지 않는 게 아니라 문자를 보내는 동안 감정이 많이 정제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글도 험악해질 수 있다. 그러나 글은 감정을 쉽게 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자신도 어느새 흥분이 가라앉고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문자에는 욕을 쓰지 않는 한 그 겨해 있는 감정을 표현하기 까다롭다. 감정을 실어 내는 일이 그다지 평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은 아무나 쓸 수 있지만 또 아무나 쓰기 힘든 도구다.
감정을 공유하는 일은 힘들다. 어떤 이가 나에게 전화가 왔다. 화가 나고 분이 풀리지 않으니 어디 화는 풀어야겠고 마땅한 사람을 찾던 중 내가 얻어걸린다.
세상 일이 어디 자기 뜻대로 될 것이며 자기만이 옳은 일은 없는 법이다. 가만 듣고 있자 하니 어떤 이도 그리 잘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흥분한 상태이고 나의 응원을 받고 싶은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다.
어떤 이의 잘못을 이야기해 주고 싶지만 받아들일 상태가 아니다. 나는 단순한 말로 그의 행동과 말에 동조만 한다.
'그래' '아니 그런 나쁜 사람이 있나' 혹은 '그래 잘했다 잘했어!'그리고 가끔 한숨도 크게 내어 준다.
어떤 이는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하고 속이 후련한 모양이다. 긴 한숨을 내 쉬고 언제 만나면 밥 한 끼 하자는 이야기를 끝으로 통화는 끝난다.
보통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면 한 시간은 족히 흘러간다. 곱씹어 보면 그 어떤 이가 조금만 양보했으면 크게 타툴 문제도 아니었다. 정말 사소한 일에서 서로의 감정 혹은 자신의 감정이 상한다.
통화 때문에 전화기는 아직 뜨듯한 열기가 남아 있다. 귀도 간지러운 듯하다.
뭐지?
나의 한 시간을 어떤 이의 넋두리로 흘려버렸다.
그 어떤 이가 친구니 충분히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든가 아니면 자신이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함께 서로를 나눈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대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오늘 직장에 누구 때문에 기분 나빴다는 둥 아니면 주변에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로 자신의 감정이 격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하는 통화도 많기 때문이다.
통화를 끝내고 나면 나는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잠시 허공을 응시한다. 감정이입이라고 말할까?
상태의 흥분 상태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진다. 전화를 끊고 바로 내 일에 몰두하는데 필요한 잠깐의 틈이 필요하다.
거리에 사람들은 누구와 와 통화를 나누며 가는 길을 재촉하며 걷는다. 전화하는 사람들의 옆을 스쳐지나갈 때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싶어 듣는 것이 아니다. 열린 귀를 통해 들려온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통화는 그저 일상의 사소한 일에 대한 대화가 대부분이다. 누구는 어떻다는 둥 어디 쇼핑을 갔다는 둥 아니면 어제 술자리에 그 친구가 오랜만에 나왔는데 행색이 어떻다는 둥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정말 업무에나 필요한 전화를 통화하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전화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의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고 소위 손전화라고 하는 셀룰러 폰이 생기고 스마트 폰까지 발전한 오늘이다.
사람들의 의사소통에 과연 혁명적인 바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기계를 통해 사람에는 속박이 생기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이 짧아졌다.
나는 전화기에 대고 말하는 것보다는 문자 보내기를 더 좋아한다. 말은 즉흥적이고 사람의 마음을 오히려 고단하게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에게 통화보다 문자를 보내는 일은 예전에 연필과 펜을 들고 상대방을 생각하며 찬찬히 써 내려가던 편지를 연상하게 한다.
말은 바로 사라지지만 문자는 삭제를 하지 않는 한 일정기간 머무르게 된다. 가끔 어떤 이가 보낸 카톡이나 문자를 읽는다. 통화로는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문자로 주고받은 말은 남아 있다.
그래서 말보다는 글이 힘이 있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내친김에 잊고 지내던 어떤 이들에게 짧은 안부 문자라도 보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