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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Nov 08. 2019

삶의 여적

사는 순간을 즐겨라

한 순간 한 순간이 모여 결국 그때 그 순간이 행복했다는 것을 추억을 통해 알게 된다. 

짧은 찰나의 순간이 그렇게 소중한 순간이었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지난 추억의 조각들이 행복했던 지난날을 생각하게 해 준다. 기뻐서 행복했고 슬프고 힘들 때 어깨를 토닥여 주던 이들이 있어 불행 속에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지나고 나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다 잊어버린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만이 기억된다.

잠깐 찾아오는 그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가! 


 순간의 삶이 소중하다고 외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생각난다. 

문학을 가르치는 첫 시간 아이들에게 이제까지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모두 지운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과 감성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그는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을 외친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순간을 즐겨라'는 말은 어찌 들으면 방탕과 쾌락 속에 지내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물론 방탕과 쾌락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세월을 낭비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의 순간을 즐겨라는 말은 방탕과 쾌락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늘 즐거운 일만 있을 수도 없고 늘 슬픔과 고통만이 있을 수도 없다. 즐거움 속에 힘든 삶이 찾아오고 슬프고 힘든 나날이 계속되어도 순간순간 행복한 시간이 따라다닌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그 행복을 너무 멀리서 찾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파랑새'에서 주인공은 파랑새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렇고 힘든 여정 뒤에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창문을 열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파란색 작은 새가 정원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파랑새는 멀리 있었던 것이 아니야 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우리는 가까운 곳에 행복을 두고 너무 멀리 있는 것만 쫓는 게 아닐까?


잔잔한 가족 영화 중에 러브 엑츄 어리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가족을 만나는 장면, 사랑하는 연인과 다시 만나는 장면, 멀리 떠나 있던 아들이 부모님을 만나는 장면을 생각해 본다. 사람과 삶의 관계에서 인생의 모든 행복과 불행이 존재한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딪히며 살아가는 삶 속에 즐거움 성냄 사랑 즐거움이 숨어 있다. 좌절할 때도 있고 가슴 가득 희망을 가질 때도 있다. 그 순간순간에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이 잠깐잠깐 스쳐 지나간다.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아버지는 어느 날 아들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힘들고 고달픈 삶에도 기쁨은 찾아온다. 아버지의 고단한 일상은 불현듯 찾아오는 행복으로 보상받는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힘들고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저물어가는 석양의 빛 속으로 걸어간다. 순간 손수레가 가벼워지고 뒤를 돌아본 어머니는 기쁘고 즐겁다. 어엿한 대학생이 된 아들은 말없이 어머니의 무거운 손수레를 뒤에서 밀고 간다. 하루의 무거움을 엄마는 이 순간 날려 보낸다. 엄마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덥고 더운 한 여름, 좁은 골목길에서 힘겹게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운전하는 남편을 위해 뙤약 빛 아래에 서서 남편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손으로 신호를 보내는 아내의 손짓이 아름답다. 

짧은 순간순간이 모여 행복한 추억을 만든다. 


언젠가 시장을 보고 오시는 길에 어머니는 인상 깊게 보셨던 모습 말씀하신 생각이 난다. 

자식을 키운 엄마들이 그 자식의 자식을 돌보는 시절이 있었다. 자식을 돌보는 일에 허리가 휘었건만 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자식들이 마음 아파 그 자식의 자식인 귀여운 손자 녀석을 돌보신다. 

아이는 이제 일곱여덟 살 쯤으로 보인다. 할머니는 60대 중반을 넘겨 보인다. 시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손자 녀석의 입에 한자는 나와 있다. 할머니는 먼 산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걷고 있다. 양손에 거머쥔 비닐봉지 안에는 반찬거리가 가득하다. 

손자 녀석이 할머니를 애달프게 부르고 있다. 

"할머니~!"

"왜~에~"

"할~머~ 니~!"

"왜~에~"

를 반복한다. 그 모습이 참 우스워 보이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자 그 할머니는 웃으며

"이 녀석이 자꾸 시장에서 파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는데 제 어미가 아무거나 막 사주리 말라고 해서 사주지 않았는데 저렇게 입이 나와 있네요" 입가는 그래도 한가득 웃음을 머금으며.

어머니는 그날 일이 너무 우습고 재미있고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이시더란다. 그렇게 손자의 응석을 받아 주시는 할머니의 웃음 띈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사는 게 별거 아니야. 그 할머니의 얼굴이 행복으로 가득 차 보였어. 행복이 뭐 별거 있니? 순간순간의 즐거움이 추억이 되고 즐거운 추억이 행복함을 만드는 것 아니겠니!"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그 일상이 행복으로 충만되어 있다. 그런 작은 순간의 행복을 사람들은 잊고 지낸다. 


삼사십 대에 나는 너무 큰 꿈을 꾸고 있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들 때가 있다.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걸 쫓아다니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생긴다. 

나이 오십을 공자는 '지천명'이라고 했다.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는 말이다. 

하늘의 뜻을 왜 오십에 알게 된다는 걸까?

인생의 쓴 맛 단 맛 모두 맛 본 뒤에 하늘이 뜻을 알게 된다?

너무 가혹하다. 하늘의 뜻을 이십 대나 삼십 대에 알았으면 지금처럼 후회되는 일이 많지 않았을까?
때로는 불행하고 때로는 즐겁고 행복하고 이 모든 것이 모여 삶을 만든다. 

나이 오십 줄이 넘어 철이 들어가는 걸까? 작든 크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나를 행복의 길로 이끈다. 


어느 저녁!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 안에 앉아 유키 쿠라모토의 '레이크 루이스'를 듣는다. 

가보지 않은 그림 속의 호수에 나는 서 있다. 눈을 감고 나는 멀고 먼 나라로 여행을 하고 있다. 

상상의 날갯짓을 마음껏 해본다. 가보지 않았지만 나는 그곳의 풍광에 흠뻑 취해 있다. 

그 순간 코 끝에 강열하게 들어오는 이 냄새는 뭐지? 여행은 이쯤에서 멈춘다. 

그리고 눈을 뜬다. 부엌에서는 아내가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고 있다. 감미로운 음악에 소박한 찌개가 끓는다.

저녁 시간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입 맛 돋우는 맛 투박하지만 맛있는 찌개 냄새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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