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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Nov 17. 2019

어머니의 요리

잡탕찌개

보글보글 자글자글 끓는 소리가 요란하다. 계란 물을 입히고 구워낸 전들과 제사상에 올라갔던 생선들이 냄비 속에 어우러져 잘도 끓고 있다.  두부와 갖가지 전도 함께 넣어 끓인다. 명절 연휴  끝 무렵 집에서 해 먹는 잡탕찌개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불려지던 이름도 다양하다. 

뽀글이 탕 짜글이 탕 짬뽕 찌개 잡탕찌개 이름도 다양하지만 들어가는 재료는 명절 차례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명절 연휴 동안 내내 질리도록 먹고 또 먹는 차례 음식이다. 기름기가 많아 느끼해진 음식을 계속 먹는다는 게 위에서는 벌써 부담으로 다가온다. 명절 연휴 마지막에는 혹시 문을 열어 놓은 중국집이 없나 하며 전화를 걸어 본다. 느끼한 명절 음식 끝에 무슨 중국음식이냐고 하겠지만 매콤한 짬뽕 맛이 생각난다.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드디어 라면을 끓인다. 김치와 고추 가루를 듬뿍 넣고 끓인 라면은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와 여동생까지도 젓가락을 들고 한 점 먹게 만드는 명절 끝 마법의 라면이 된다. 

김치를 넣었으니 김치의 시큼한 냄새가 입의 침샘을 자극한다. 라면 수프의 냄새는 육개장 같이 매운 듯한 냄새를 풍기고 거기에 고춧가루까지 더해져 침샘을 폭발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한 끼 맛있게 먹은 라면도 두 끼는 먹지 못한다. 

명절 끝에 가게가 문을 연 곳도 없고 있는 반찬을 이리저리 요리하여 먹어야 한다. 

얼큰한 찌개가 생각난다. 


냄비에  고춧가루를 풀고 이것저것 넣고 끓이면 속풀이로 꽤 괜찮은 찌개 요리가 된다. 

우선 부추전 두부전 동그랑 땡 명태전 산적이 있다. 가자미를 밀가루와 계란물로 전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는 경우도 있고 조기 같은 생선도 차례상에 올리고 남는다.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생선을 넣지 않지만 적어도 부산에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생선도 함께 넣는다. 고기 국물이 혹시 남아 있으면 고기 국물을 넣거나 아니면 멸치 육수를 만들어 함께 끓인다. 밀가루와 계란을 씌워 만든 전 때문에 약간 걸쭉한 국물이 된다. 비릿한 향이 조금 섞인 시원한 국물에 술 생각이 절로 난다. 


일 년에 두 번 만 먹을 수 있는 찌개다. 추석과 설 명절의 끝에는 항상 일명 짬뽕을 먹었다.(우리 집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생선을 함께 넣지만 어머니의 찌개는 생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주로 비린내가 나지 않는 굴비나 가자미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명절 끝쯤 되면 친구 놈들이 어머니 아버지에게 인사드린다고 집에 놀러 온다. 

핑계는 그럴 듯하게 명절 인사를 드린다고 오지만 우리 집 밥을 얻어먹기 위해 온다. 아버지는 집에 아들의 친구들이 놀러 오는 걸 좋아하셨다. 함께 고스톱이나 윷놀이를 하며 즐거워하신다. 마음이 아직 소년 같은 구석이 있으신 분이다. 잘해 주면 편하다고 친구들은 우리 집으로 놀러 와 명절 연휴기간 동안 자리를 잡는다.

모두 똑같은 명절 음식이지만 친구들은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다. 어머니는 자식의 친구들도 자식처럼 대해 주셨다. 당연히 집에는 명절 연휴 끝나는 날 하루는 늘 집이 북적거렸다. 


끼니를 얻어먹는 친구들도 놀지는 않는다. 상도 펴고 어머니가 만드신 음식도 부엌에서 거실에 펼쳐 놓은 상으로 부지런히 옮긴다. 

아버지는 머리 다 큰 아들 친구들과 낮부터 술 한 잔 걸치신다. 

집에 만들어 놓은 특별한 술은 이런 때에 진가를 발휘한다. 매실주가 예쁜 주전자에 담겨 나온다. 

친구들은 이 매실주의 달콤하면서 과일향이 가득한 이 술을 정말 좋아했다. 아버지와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부엌으로부터 참을 수 없는 매콤한 유혹이 슬슬 다가온다. 

잡탕찌개를 두 군데 나누어 내어 오신다. 친구들은 그 찌개를 게눈 감추듯 먹어 버린다. 

집에도 다들 맛있는 거 많을 텐데 이렇게 먹어서 되느냐는 말에 한 친구 아주 솔직하게 어머니이 음식이 제일 맛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음식은 맛없습니다. 

그렇게 당당히 말하고 부지런히 숟가락질을 한다. 모두 웃는다. 


 빈 접시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특히 짬뽕이라 불리는 잡탕찌개는 홀라당 비워지고 없다. 실컷 먹고 나면 단술이나 수정과까지 얻어먹으니 아주 호강하고 간다. 어머니는 사실 힘은 드시지만 은근히 기분은 좋아 보이신다. 

맛은 비워진 그릇으로 증명한다. 얻어먹은 친구들 그래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깍듯이 인사드린다.


친구들은 우리 집 음식을 잘 먹었다. 어머니는 좋은 기분에 음식을 하시고 친구들은 맛있게 먹고, 명절 음식은 그렇게 게눈 감추듯 없어졌다. 

한마디로 명절 음식 잔반 처리반이었다.


명절 전의 설렘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돌아오는 연휴 끝 날! 

먹다 먹다 물린 명절 차례음식을 먹는데 잡탕찌개만큼 훌륭한 지혜가 숨은 음식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것저것 모두 쓸어 넣어 만든 찌개가 주는 느낌은 음식마다 주어지는 고유한 맛이 어우러져 오히려 맛을 느낌을 더하게 한다. 전분끼에 묻어 나는 걸쭉하고 어딘가 어색한 듯한 여러 재료들이 모여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조하를 이룬다. 지겨운 입맛에 오히려 칼칼하고 시원한 맛으로 느끼해진 입 맛을 가시게 한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조화를 이루고 산다는 것이 어쩌면 이런 잡탕찌개와 같지는 않을까?

부 조화스러운 듯한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가 되어 가는 세상이 어쩌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잡탕찌개의 맛과 같은 지 모른다. 


친구 녀석 중에 우리 집에서 지어준 별명이 원수 덩어리라는 친구가 있다. 학교 다닐 때 방학이 되면 거의 밥은 우리 집에서 먹던 녀석이다. 그래서 여동생이 붙인 별명이다.

그 녀석을 명절에 만났다. 이런저런 사람 사는 이야기 끝에 그때 먹었던 찌개 이야기를 한다. 정말 맛있다고 말하면서 먼 곳에 눈의 초점을 맞추며 이제는 그 맛을 볼 수 없겠지 하며 웃는다. 

그 어리게만 보이던 그 친구! 방학이면 어머니 없는 집에 가기 싫어 우리 집으로 와서 저녁까지 먹고 느긋하게 놀고 때로는 잠까지 자고 가던 그 친구가 내 어머니의 손 맛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비록 여동생이 늘 집에 빌붙어 지낸다고 원수덩어리라고 놀렸지만 그래도 동생의 공부도 봐주고 하던 그 친구가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리운 모양이다. 

"어머니에게 한 번 부탁드리면 그때처럼 끓여 주시려나?"



명절 전의 설렘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돌아오는 연휴 끝 날 먹다 먹다 물린 명절 차례음식을 먹는데 잡탕찌개만큼 훌륭한 지혜가 숨은 음식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것 저거 모두 쓸어 넣어 만든 찌개가 주는 느낌은 음식마다 주어지는 고유한 맛이 어우러져 오히려 맛을 느낌을 더하게 한다. 전분끼에 묻어 나는 걸쭉하고 어딘가 어색한 듯한 여러 재료들이 모여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조하를 이룬다. 지겨운 입맛에 오히려 칼칼하고 시원한 맛으로 느끼해진 입 맛을 가시게 한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조화를 이루고 산다는 것이 어쩌면 이런 잡탕찌개와 같지는 않을까?

부 조화스러운 듯한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가 되어 가는 세상이 어쩌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잡탕찌개의 맛과 같은 지 모른다. 


친구 녀석 중에 우리 집에서 지어준 별명이 원수 덩어리라는 친구가 있다. 방학만 되면 거의 세끼 중에 두 끼는 집에서 해결하던 친구였다.


그 녀석을 명절에 만났다. 이런저런 사람 사는 이야기 끝에 그때 먹었던 찌개 이야기를 한다. 정말 맛있다고 말하면서 먼 곳에 눈의 초점을 맞추며 이제는 그 맛을 볼 수 없겠지 하며 웃는다. 


그 어리게만 보이던 그 친구! 방학이면 어머니 없는 집에 가기 싫어 우리 집으로 와서 저녁까지 먹고 느긋하게 놀고 때로는 잠까지 자고 가던 그 친구가 내 어머니의 손 맛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비록 여동생이 늘 집에 빌붙어 지낸다고 원수덩어리라고 놀렸지만 그래도 동생의 공부도 봐주고 하던 그 친구가 갑자기 그 시절이 그리운 모양이다. 

"어머니에게 한 번 부탁드리면 그때처럼 끓여 주시려나?"

나는 피식 웃는다. 이제 어머니는 지붕 위에 소복이 내린 눈처럼 되어 버린 백발의 머리와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이시다.

지금쯤 소파에 기대어 잔쯤 누우신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제는 그 맛을 보고 싶어도 기력 잃으신 어머니에 말씀드리기 어렵다. 그리고 그때의 손맛이 사라진 지 오래되셨다. 

그 녀석에게 말했다. 

"그 잡탕찌개의 맛은 우리의 청춘과 함께 멀리멀리 사라졌다. 이 친구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때의 청춘이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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