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얼굴로 온다.”
한나 아렌트는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두고 그렇게 말했다. 그는 유대인 학살에 핵심적 역할을 한 나치 관료였지만, 법정에 선 그의 모습은 사디스트도, 광신자도 아니었다. 그는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했고, 그것은 단순한 변명이 아닌, 실제 그의 생각이었다.
아렌트는 이 지점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꺼내든다.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행위에 대한 사유가 없었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도 없었다. 단지 시키는 대로, 법과 질서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사유 없는 복종, 윤리적 판단의 부재, 체제 순응적 사고가 상상할 수 없는 악을 만들었다.
이 사유는 단지 나치 시대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구조를, 이 반복을, 너무나 가까운 우리 역사에서도 본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쳤고, 국가는 그들을 ‘폭도’로 낙인찍었다. 그 명령을 수행한 이들도, 언론을 통제한 이들도, 침묵했던 다수도… 대부분은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더 멀리 가볼까. 우리의 조선 왕조 말기, 그 몰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배 엘리트의 무사유, 자기 합리화, 엘리트주의적 위선이 깊게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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