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사의 옛날이야기

초보 농사꾼의 아내 이야기 2

by 사랑니

뜬금없이 표고버섯이 돈이 된다고 하면서 친구랑 표고버섯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냐고 남편이 의논해 왔다.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딸아이가 태어나기 두어 달 전부터 하던 학교 앞 호프집이 생각보다 장사도 시원찮은 데다 생각지도 않게 덜컥 들어선 둘째가 막 태어나서 도저히 윤이 같이 거들어 장사를 할 수가 없게 되면서부터였다.

지금까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아이 만드는 일 말고는

동업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것도 친구랑 같이 한다니 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말이 좋아 의논이지 이미 남편은 시어머니와 경제적인 지원도 다 합의가 된 상태였고 윤의 소심한 반대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추진력 하나만큼은 타고 나신 데다 평생 장사로 잔뼈가 굵은 시어머니의 확실한 지지와 함께 남편은 친구의 고향에서 버섯 재배를 시작하였다.

윤은 하던 장사를 관두고 친정집 근처 아파트에 이사를 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지내게 되었다.

역시나 좋지 않은 예감은 잘 맞는 법이다.

해보지도 않던 농사일에다 같이 하던 친구의 무리한 욕심으로 결국 남편은 그 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에다 다른 어떤 대안도 없던 남편이 생각해 낸 것은 윤을 더욱 기암 하게 만들었다.

본인이 직접 청송에 있는 표고버섯 재배단지에 가서 버섯 재배하는 법을 배워 거기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었다.

" 청송, 청송이 어디야?"

윤이 물었더니 남편은 경북 북부 쪽에 있는 지역이며 그곳에는 표고버섯 재배단지가 많이 있어 잘 배울 수 있을 거라며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남편의 들뜬 음성과는 달리 떠 오른 것은 생뚱맞게도 국민학교 그러니까 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전근을 가시면서 매우 슬픈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청송 어디쯤이라고 하시며 진보 국민학교라고 했던가 너무 골짜기라 집에나 자주 올 수 있을지 걱정하셨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그런 선생님이 안 돼 보여 두어 번 편지를 보낸 기억도 같이 떠 올랐다.


남편은 어떤 확신에서였는지 어머님의 반대에도 결국 청송으로 갔다. 아이들 때문에 움직이기 힘든 윤을 대신하여 따라나선 사람은 시어머니 셨다.

하지만 어머님도 오래 아들 곁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어머님은 저녁마다 윤에게 전화를 하셨다.

" 야야, 어떡하니 아비를 저래 혼자 둬서 되겠느냐? 네가 가서 밥이라도 해 줘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어머님의 뜻이었다.

어쩌면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씀이기도 했다. 남편이 어머님에게 어떤 아들인가!

남편은 어머님이 결혼하시고 십여 년 만에 얻은 아들이다.

시할머니는 자식 못 낳는 며느리를 사람 취급도 하시지 않을 정도로 구박이 심하셨고 아내에게 어떠한 보호막도 되지 못하는 효자 남편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런 중에 남편이 생겼으니 어머님이나 온 가족은 아기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 머리가 반질반질 해질 정도였다고 늘 말씀하셨다.

시누이는 오빠가 군대 가있는 동안 어머님이 오빠는 군대에서 고생하는데 집에서 편안하게 있으면서 고기는 무슨 고기냐고 하면서 고기 한번 못 먹었다고 늘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윤에게 말하곤 했었다.

결국 어머님의 성화에 윤은 별 수 없이 남편 있는 곳으로 아이들과 같이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시어머님은 다행스럽게 생각하셨겠지만 친정엄마는 반대가 심하셨다.

시집간 딸이 그 골짜기로 들어가 살기로 했다는 말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던 딸의 집을 며칠 동안 걸음을 끊으시는 것으로 아픈 마음을 비치셨다.

이사 가던 날은 겨울의 한 중간 일월쯤이었는데 딸이 떠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던 엄마는 이삿짐 차가 떠나기도 전에 먼저 집으로 가셨고 윤은 그런 엄마를 한번 안아드리지도 못하고 떠나왔다.

골짜기로 들어가는 처제를 혼자 보내지 못해 형부가 같이 따라나섰다.

가도 가도 산과 나무만 보이고 길은 갈수록 더욱더 꼬불꼬불 해져 운전하기도 힘든 길을 어렵게 도착해 처제를 내려놓고 돌아가는 길에 눈물이 앞을 가려 서너 번이나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나중에 언니에게서 들었다.

앞으로 청송에서의 윤의 고난의 생활을 암시하듯 도착하던 첫날부터 기름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이사 간 집의 방은 냉골이었고 어느 해의 겨울보다 청송에서의 이 겨울이 얼마나 더 추울지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주위에는 할아버지 한분과 할머니 서너 분이 도대체 왜 젊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지 않고 이런 산골짜기로 들어오나 싶은 얼굴을 하고 힘들게 먼 길을 와서 추위와 피곤에 지친 윤과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윤은 삼십 대를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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