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의 아내 이야기 1
그곳에서의 좋았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향기로부터 시작된다.
새벽에 들려오는 털털거리는 경운기소리에 잠이 깨여 미닫이 문을 열고 나오면 온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던
라일락 향기는 지금도 윤의 코끝에서는 그리움의 향기로 남아있다.
지금도 윤의 사월은 그때의 그 향기로부터 시작된다.
그 향기를 시샘이라도 하듯 복주머니를 조롱조롱 매달고 피어나던 금낭화는 꽃을 따다 어린 딸의 색동저고리에다 달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연히 산에서 옮겨다 심은 할미꽃은 또 어떠했던가!
그렇게도 처연한 붉은색은 본 적이 없었다.
한평생 살아낸 늙은 노파가 다 내버리고도 결코 버리지 못한 하나 남은 자존심의 색깔이었을까?
꼿꼿이 세우지 못하고 숙일 수밖에 없었던 그것을 색으로나마 간직하고 싶었던 게지.
높디높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빛들을 보고 있으면 얼굴 위로 곧 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아 마주 할 수가 없을 정도였으며 창호지 문으로 비쳐 드는 달빛도 너무 좋았다.
달빛에 비쳐 드는 내 그림자에 스스로 놀라 섰다 앉았다 하며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바람에 도둑이 든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었다.
남자애치고는 성격이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아들내미는 그 달빛과 별빛이 좋아 밤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고 지금도 얘기한다.
동네밖에 흐르는 물은 너무 맑아서 그곳에 사는 고기들도 다 투명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고기들은 너무나 작아 귀여웠으며 그 애처로운 고기들을 잡아서 텃밭에서 키운 깻잎이나 푸성귀들을 뜯어 넣어 매운탕을 끓여 먹기도 했었는데 너무나 맛이 있어 고기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금방 잊어버릴 수 있었다.
집 앞 텃밭에는 농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초보 농사꾼 아내가 심어놓은 온갖 것들이 있어 초보 농사꾼은 이름도 다 모를 지경이었다.
수박, 참외, 토마토, 가지, 오이, 고추, 부추, 상치, 대파, 우엉잎, 하다못해 브로콜리까지 있었으니 동네 진짜 농사꾼 아줌마들이 구경까지 오곤 했었다.
농사짓던 첫해에는 한 고랑에 방울토마토를 다 심어놓는 바람에 나중에는 방울토마토가 떨어져 온 고랑이 붉은 물이 들 지경이었다.
초보 농사꾼의 아내는 봄이 시작되면 동네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고랑을 타서 이랑을 만들어 비닐을 깔고 모종을 낼 준비를 한다.
물론 모종은 마을 할머니들이 만들어놓은 비닐하우스의 한 귀퉁이를 얻어 열심히 키워놓았다.
고랑 위에 호미로 비닐을 뚫어 모종을 심을 구멍을 만들어 미리 물을 듬뿍 부어 넣고 물이 다 스며들면 모종을 넣고 흙으로 덮는다. 그렇게 텃밭을 다 채우고 나면 농사꾼 아내는 그것들이 제법 자랄 때까지 새벽이면 일어나 나와서 그것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했었다.
밭 언덕에 가만히 앉아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밤새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는 바쁜 당신 농사일을 뒤로하고 초보 농사꾼 아내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기 시작하신다. 수박은 순을 칠 때 원순은 남겨 두고 원순에서 달리는 수박 중 열한 번째 것부터 달리게 하고 새순은 다 쳐내며 참외는 새순에서 열리니 새순은 놔두어야 된다고 했던가? 고추 줄 치는 법, 토마토 순 치는 법, 포도 가지 치기도 배웠던 것 같다.
그러면 같이 가던 아줌마는 빨리 가자고 채근을 하시는데 아저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마음 바쁜 아줌마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먼저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맘씨 좋은 농사꾼 아저씨는 아줌마가 먼저 가시고 나면 초보 아내에게 집에 소주가 없냐고 물으시면서 한잔 달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저씨는 알코올 중독이셨다. 아저씨의 목적은 농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한잔씩 얻어 잡숫는 술이었다.
젊어 게으름은 늙어 건강의 비결이라고 하시면서 농사일을 소홀히 하셨는데 결국 아저씨는 술병을 얻어 한창 농사지을 나이에 돌아가셨다.
초보 아내는 포도나무에 포도열매가 달리기 시작할 무렵 포도잎이 포도열매의 햇빛자리를 다 가려 열매가 자라지 못할까 봐 포도잎을 다 떼 버린 기억도 있을 정도로 초보였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살았지만 어릴 때의 기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영원한 초보는 없는 법 몇 년 지나지 않아 초보 아내는 텃밭 농사 정도는 거뜬히 지어낼 정도로 전문가가 되었으며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아 농사꾼 남편이 짓던 표고버섯 하우스 옆의 밭까지 다 도맡아 거기에는 참깨와 메주콩, 서리태 등을 심어 거기에서 나오는 콩으로 직접 메주를 쑤어 된장을 담아 시내에 있는 시댁으로, 친정으로 갖다 날랐다.
메주콩을 다 끓이고 그 남은 숯불에 구워 먹던 고등어구이는 너무나 맛이 있어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메주를 쑤고 직접 지어놓은 배추와 고추로 김장을 마치고 나면 마음까지 든든하였다.
농사 중에 농사는 참깨 농사였다. 참깨는 초보가 보기에는 손이 제일가지 않아 수월 했으며 참깨단을 만들어 쭉 세워놓았다가 그것들을 막대로 살살 두드려 흐르는 참깨를 볼 때의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렇게 초보 농사꾼의 아내는 초보의 딱지를 떼고 농사꾼의 아내가 아닌 농사꾼으로 거듭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