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사의 옛날이야기

초보 농사꾼의 아내 이야기 5

by 사랑니

이사하던 첫날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다가 꼬박 밤을 새우고 문밖으로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을 맞았다. 문을 열고 나간 골짜기의 새벽은 추위에 꽁꽁 얼어 있었지만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은 생각보다는 차갑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쾌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추위는 아랑곳없이 바람을 맞으며 집 앞 바로 언덕에 가만히 서서 마을의 모양새를 한참 바라보았다.

시내에서 평평하게 지어진 집들만 보았던 윤은 마을이 희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집 위에 언덕이 있고 또 그 언덕 위로 집이 한 채가 있고 또 그 언덕을 지나 돌아가면 집이 한채 보였다.

마을에는 일곱 가구 정도가 있었는데 집이 대부분 듬성듬성 떨어져 옆집을 가려면 한참을 걸어가고 올라가야 했다. 마을의 생김새를 한참 보고 있던 윤은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아아!! 처음부터 이곳은 마을이 아니라 산이었구나. 산 위에 조금 터를 만들어 집을 한채 짓고 옆에 텃밭을 만들고 또 그 위로 올라가 터를 닦아 집을 짓고 하다 보니 마을이 이렇게 생겼구나. 정말 여기는 산에 만들어진 동네였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에서 나가던 습관대로 스웨터만 하나 걸치고 나간 윤은 마을 한 바퀴를 돌면서 시간이 생각보다 한참이나 걸려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 추위만큼이나 윤의 마음도 추웠다.

그러나 마음의 추위와는 달리 윤의 부부는 이사하던 그해 겨울부터 저녁마다 이웃집 할머니 댁에 불려 가곤 했었다. 겨울은 농한기라 한가했던 동네 어른들은 저녁마다 모여 앉아 겨울의 별미였던 과메기와 막걸리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애주가였던 윤의 남편은 그런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친구 하나 없이 혼자였던 윤의 입장에서도 달리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연세 드신 분들만 계시던 동네 어른들도 시골로 들어온 윤의 부부가 반갑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겨울을 지내고 짧은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농부들의 손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윤의 눈에는 저렇게 연세 드신 분들이 어떻게 농사일을 하실 수 있나? 걱정 아닌 걱정을 했었는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한평생을 농사로 지내신 어른들은 장정 못지않은 힘과 경험이 있어 윤의 눈에는 무척이나 수월해 보였으며

어떤 경이로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윤도 점점 농사꾼이 되어가면서 나이와는 상관없이 마을 어른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었다.

날씨 더운 여름에는 마을의 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어른들과 텃밭에서 금방 뜯은 부추와 상치로 만든 비빔밥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마을 밖 시냇가에서 잡아온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먹기도 하였다.


다슬기를 직접 잡아 텃밭에 있던 부추를 뜯어 끓여 먹었던 다슬기국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산나물이 나던 봄에는 할머니들이 윤을 직접 산으로 데리고 다니며 나물의 종류와 뜯는 방법을 알려주고

도토리를 주워 도토리묵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시어 시내에 계시는 시어른 들게 만들어 드리기도 했었다.

윤이 마을 어른들과 어울리며 시내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경험들을 하며 시골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정작 표고버섯 재배를 위해 청송으로 귀농을 결심했던 윤의 남편은 본인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버섯재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점점 힘들어하고 있었다.

모든 농사가 그렇듯이 특히 버섯의 재배조건은 하늘이 도와야 했다.

버섯이 처음 자랄 때에는 습기가 없어야 되기 때문에 비가 오면 좋지 않고 또 종균활착이 잘 되어야 버섯이

많이 달리기 때문에 종균활착 때에는 날씨가 너무 더우면 활착에 지장이 있다.

희한하게도 버섯 작업만 하면 비가 와서 버섯의 품질이 좋지 못하고 버섯 가격이 비쌀 때에는 수확하는 양이 적고 버섯의 양이 많으면 당연히 경매장에서의 가격은 저렴하여 큰 도움이 되지못했다.

농사라고는 지어본 적이 없던 남편은 매일 해내야 하는 일의 양에서도 지치고 또 한만큼 보상되지 않는 수입 때문에 지쳐 그렇지 않아도 술을 가까이하던 사람이 상황이 힘들어지니 더욱 술에 의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고자 하는 일들이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고 힘들어지면 아무리 심성이 착하고 바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변하기 마련이다.

윤의 남편도 본래의 심성과는 달리 사람이 점점 변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시골의 이웃은 도시의 이웃들과는 달라 서로의 왕래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남편은 이웃의 얼굴이 낯설 때에는 이웃의 부름에 그저 마지못해 참석하는 정도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사정이나 형편을 알기 시작하고 익숙해지면서 모임의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윤의 집 문턱도 낮아져 다른 이들의 방문이 잦아졌다.

아무리 윤이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고 하여도 도시에서 살던 젊은 사람이었다.

도시에서 늘 나만의 공간에서 살던 윤은 이렇게 사방으로 트여 내 집의 시시콜콜한 사정까지 다 드러나는

이런 상황이 정말이지 적응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시쳇말로 윤의 집에 숟가락 몇 개가 있는지도 마을 사람들은 다 알정도였다.

전날 저녁 남편과의 작은 말다툼이라도 있으면 여지없이 다음날은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윤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특히나 남편은 아랫동네의 장정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시골에서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저녁마다 모여서

술자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남편의 힘든 모습이 안쓰러워 술자리에 안주를 해내 주기도 하고 옆자리에 앉아 그들의 대화에

한두 마디씩 거들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저녁마다 벌이는 술판에다 술 취해서 지껄여대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있는 것이 윤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용납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미안 헸다.

그저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남편은 윤의 이런 마음이나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라고는 전혀

없었다.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기색이 비치면 화부터 먼저 내고는 했었다.

본인이 선택한 귀농생활이었지만 농사는 지어본 적도 없던 남편은 자신의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농사의

결과와 또 생각보다 너무나 힘든 농사일에 많이 지쳐 가족들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쳐가는 남편을 바라보는 윤도 남편을 따라 같이 지쳐가고 한창 부모의 마음과 손이 필요한 아이들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서 늘 외로움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야 했다.


그날도 남편은 수확한 버섯을 싣고 경매장으로 가고 윤은 남은 버섯을 채취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준비를 위해 텃밭에서 따온 채소를 다듬고 있었는데 마침 아랫마을 장정들 중에 한 사람이 장날이라

사 왔다며 과메기를 들고 집에 왔다.

저녁에 술안주 감으로 좋겠다며 가져온 것이라 말하면서 엉거주춤 서 있었다.

가로등이 있었지만 마당은 저녁이라 어두웠고 가지 않고 서있는 사람을 매정하게 가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마주 보고 두런두런 쓸데없는 말을 하고 서 있었다.

그때 경매장에서 막 돌아온 남편이 둘이서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별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방으로 따라 들어온 윤을 보면서 남편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 저 사람은 나도 없는데 우리 집에는 왜 온 거야?"

라고 말했다.

그 말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 남편에게 조용히 되물었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부르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윤의 질문에 딱히 뭐라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계속 떨떠름한 표정으로 저녁도 거른 채 앉아있는 남편을 참아 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윤의 집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안방에 걸려있던 해바라기 그림의 큰 액자가 윤의 손에 의해 마당에 내동댕이 쳐졌으며 늦게까지 남아 농장에서 수확해 온 버섯이 마당으로 다 내던져졌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의 미친 듯이 화를 내고 있는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하며 울고 있었고 남편은 아내의 이런 모습이 당황스러웠는지 말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고 생각만큼 일이 잘 되지 않자 남편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주량이 많지 않아 그저 밥 반주 수준이었는데 마을 장정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과음을 하게 되고 또 술에 취해서는 아이들과 윤을 힘들게 하였다.

그저 힘들어서 그러려니 한참을 그렇게 보아 넘겼다.

상황이 좋아지면 괜찮아지겠지 했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고 넘길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대화로 해결이 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바탕 굿을 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놀라서 울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제야 멍하니 서 있던 남편은 부서진 액자를 치우고 내던져진 버섯을 줍기 시작하였다.

구부정하게 엎드려 버섯을 줍고 있는 남편이 너무나 처량해 보여 윤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매일 밤 아들의 밤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좋았던 달빛도 그날 저녁에는 너무나 처량해 보였다.

혼자 살고 있는 옆집 아저씨가 키우던 삼돌이의 짖는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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