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농사꾼의 아내 이야기 6
그다음 날 새벽 남편은 조용히 윤을 깨웠다.
아이들을 잠깐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여보, 미안해. 내가 자꾸 일이 잘 안 되니까 자격지심이 생기나 봐.
나도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윤은 남편을 그냥 꼭 안아주었다.
그때 문득 어린 시절 그 새벽이 떠 올랐다.
어쩌다 오줌이 마려워 방을 나서면 사랑에서 들려오던 부모님의
윤의 기억으로는 윤의 부모님도 다툼이 많으셨다.
아버지의 술버릇이 원인일 때도 있었고 농사꾼의 아낙으로 살기에는 힘든 너무나 깔끔한 엄마의 성격이 원인이 될 때도 있었다.
농사일이라는 게 남자 혼자서는 해내기에는 무리가 있는지라 엄마의 손이 필요했던 아버지는 농사일보다는 집안을 치우는 일이 우선이었던 엄마가 성에 차지 않아 두 분의 다툼이 잦았다.
그러나 희한한 건 전날 저녁에 아무리 두 분이 심하게 다투고 난 후라도 새벽이면 늘 사랑방에서는 두 분의 두런두런 다정하게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어린 윤의 눈에는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제저녁 그 난리를 치르고 오늘 새벽 남편의 딱한 모습을 바라보며 어릴 적 새벽에 부딪쳤던 부모님의 모습을 이해하게 되었다.
' 그래,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의 부부는 그 후로도 한참을 버섯농사에 매달렸다.
물론 남편은 술을 자제하면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지만 농사는 남편의 힘에 부치는 것이었고 윤이 보기에도 계속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버섯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해 두 해 아까운 세월만 낭비하고 있었다.
결국 윤의 결단으로 시골을 떠나지 않으려는 남편을 뒤로하고 큰아이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시골을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초보 농사꾼의 아내는 십여 년 동안 해 오던 농사일을 접고 다시 도회지로 나와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혼자 남아 해보겠다던 남편도 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시골살이를 접고 아이들과 윤이 있는 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힘든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참으로 젊고 찬란한 시간을 그렇게 보내버린 것 같아 지금도 생각해 보면 그 세월이 너무나 아까워 마음이 아리고 아플 때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아까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선택한 일이었고 모든 것이 우리의 결정이었고 우리의 책임이었다.
하나 다행인 것은 그래도 힘든 중에서도 열심히 살아 현재의 우리 가정이 지켜질 수 있었으니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