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에는 아비뇽의 여인들이 없다.
도착하면 저녁 9시가 조금 덜 되어있을 것이다.
TGV-렌페 합동 구간이었던 듯 하다. 승무원은 모두 프랑스인이었던 걸로 봐선 TGV였다.
승객 대부분이 프랑스인이었다. 그간 그나마 듣기에 좀 익숙해졌던 스페인어가 프랑스어로 바뀌니 살짝 긴장이 된다. 3G를 켜고 친구와 여행 필수 프랑스어를 공부해 본다.
Ou se trouve la toilette? (우스트후브 라 뚜알렛) : 화장실 어디지요?
C’est combien?(쎄 꼼비앙?): 얼마인가요?
Je voudrais de l’eau(쥬 부드헤 들로): 물 좀 주세요.
Merci 같은 단어 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문장은 쥬뗌므나 빠흐동(Pardon) 수준이다. 친구는 프랑스어를 한 학기 배운 적이 있어 기초가 되어 있기 때문에 간단한 문장들은 금방 외운다. 반면 나는 프랑스어가 어렵다. 그놈의 "eu" 모음은 아무리 해도 어렵다. 친구가 입은 'w' 발음을 하듯이 오무리고 머릿속으로는 무슨 소리를 발음을 하라는 데 입술과 혀가 따로 논다. 나는 역시 straight한 스페인어가 좋다.
친구가 1부터 100까지 숫자를 되짚어 보는 동안 나는 장난기가 들어서 친구에게 프랑스어로 작업 거는 말을 몇 개 외워보자고 제안한다. 알아보니 이런 문장이 나온다.
Avez-vous une petite amie? 너 여자친구 있니?
킥킥거리며 이 문장을 열심히 암송하던 이때는 이 문장이 우리의 추억의 문장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른쪽 창 밖으로 이따금 푸른 바다가 보인다.
아비뇽을 거치는 목적은 순전히 라벤더 투어와 아를 때문이었다.
라벤더 투어는 액상프로방스나 아비뇽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와 친구는 액상프로방스보다는 아비뇽이라는 곳이 조금 더 끌린다는 이유로 아비뇽을 선택했다. 사실 아비뇽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기껏해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정도였다.
1. 아비뇽 유수
2.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1. 아비뇽 유수는 역사시간에 배운 기억도 어렴풋이 나기도 하고 아비뇽에 가는 김에 나무위키 등으로 한 번 더 찾아보기도 했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역사를 내 문장으로 뭐라 설명하기가 영 어렵다. 아비뇽 유수의 '유수'는 잡아 가둔다는 뜻이란다. 더 자세한 위키백과와 나무위키의 요약을 옮겨보자면 아래와 같다.
아비뇽 유수(-幽囚)는 기독교 역사상 13세기에 로마 교황청의 자리가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머무른 시기를 말한다.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쓰인 표현이다.
-출처: 위키 백과
1309년∼1377년까지 7대에 걸쳐서 로마 바티칸의 교황이 프랑스의 남부 도시인 아비뇽에서만 머물게 된 사건.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 왕국이 사라지고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와 흑사병, 세속 군주의 성장 등으로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던 교황의 권위에 상큼하게 피니시를 날린 사건이다. 이로 인해 교황의 권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 위클리프파, 후스파, 공의회수의설 등이 득세하였으며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교황은 더욱 세속군주화되었다.
-출처: 나무 위키
어쨌거나 여행객에게 중요한 정보를 추려보자면 지금은 바티칸에 있는 교황이 1300년대에 아비뇽에 머물렀고, 그래서 지금 아비뇽에 옛 교황청이 주요 관광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교황이 아비뇽으로 터전을 옯기게 된 것은 세속 군주인 프랑스 국왕의 교회에 대한 압박이 커진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시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는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사상 처음으로 교회에 세금을 매기는 것을 시도했다. 당연히 프랑스의 교회들부터 로마의 교황청까지 크게 이 결정에 반대를 했는데 필리프 4세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당시 교황이었던 보나파시오 8세를 이단의 혐의를 세워 선제공격했다. 필리프 4세는 뒤이어 프랑스인인 클레멘스5세를 교황으로 뽑았을 뿐 아니라 교황청을 프랑스의 입김이 강하게 닿던 땅인 아비뇽으로 이전시켜 버렸다.
한편, 2.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알고 보니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의 모델은 이 프랑스 아비뇽의 여인들이 아닌, 바르셀로나의 '아비뇨 거리(Carrer d'Avinyó (Avinyó Street))의 창부들이었다고 한다. 이럴 수가. '아비뇽의 여인들'을 아는 전세계의 사람들 중, 이 반전을 아는 사람들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3. 아비뇽 다리(Pont d'Avignon)
한편, 내가 아비뇽을 계획에 넣었다고 하니 "아~ 아비뇽의 다리?"하는 친한 이가 있었다. 아비뇽의 다리가 뭐냐고 하니 자신이 공부했던 세계사 교과서에 부서진 아비뇽의 다리의 사진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서졌다고? 왜?" 궁금해져서 물었지만 친구는 영 시크하다. 몰라, 그냥 그 사진만 기억나는데.
내가 그런 궁금증을 안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위키피디아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아비뇽의 다리가 부서졌던 것는 론 강의 홍수 때문이었다.
아비뇽 다리의 본래 명칭은 Pont Saint-Bénézet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아비뇽 다리Pont d'Avign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만큼 아비뇽의 다리가 아비뇽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는 의미가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아비뇽 다리가 맨 처음 지어진 것은 1177년에서 1185 사이이다. 그러나 1226년에 다리가 크게 파괴되자 1234년에 다시 재건되었다. 재건되기 전에는 현재와 다르게 교각 부분만 암석이었고 나머지는 나무로 된 다리였다고 한다. 이때 재건을 하면서 지금과 같이 전체가 돌로 이루어진 다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뇽 다리는 론 강의 주기적인 홍수로 인해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복구되기를 반복한다. 마침내 1669년에는 대홍수가 다리를 쓸고 지나가 다리의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다리를 복구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지금과 같이 총 22개의 교각 중 4개만 덩그러니 서 있게 되었던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전쟁폭격 같은 뭔가 거창하고 비극적인 역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아비뇽 다리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 이와 관련된 상당히 재미있는 것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아비뇽 다리에 관련된 동요이다.
3. 동요: 아비뇽 다리 위에서(Sur le Pont d'Avignon)
https://www.youtube.com/watch?v=BHsER0a7MGA
'아비뇽 다리 위에서(Sur le Pont d'Avignon)'은 우리 나라의 '학교 종이 땡땡땡' 버금가는 수준의 국민동요라고 한다. 시작을 따지자면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정확히 말하면 포크 댄스를 위한 노래이고 노래 구절에 맞추어 춤을 추는 동작도 따로 존재한다.
가사는 별 내용 없이 의미가 단순하다. 다 춤을 춘다는 내용이다.
코러스
Sur le Pont d'Avignon / On the bridge of Avignon
On y danse, On y danse / We all dance there, we all dance there
Sur le Pont d'Avignon / On the bridge of Avignon
On y danse tous en rond / We all dance there in a ring
첫번째 verse
Les beaux messieurs font comme ça / The fine gentlemen go like this (bow)
Et puis encore comme ça. / And then again like this
.....
이런식으로 네번째 verse까지 있다.
아비뇽과 아를의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오르골을 보면, 당연하지만 항상 이 노래가 나오는 오르골이 있다. 오르골 소리로 들으니 멜로디가 더 서정적으로 느껴진다. 보이는 오르골마다 손잡이를 돌려 이 노래를 들었건만, 자꾸만 멜로디가 "떴다 떴다 비행기"와 헷갈려서 나는 도통 제대로 불러낼 수 없다.
스페인에서는 한 도시에 워낙 볼 것이 많고 관련된 역사도 복잡하여 상당한 의무감을 갖고 성실히 여행에 임했었다. 아비뇽에 역사가 볼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가 바뀌고 여행도 후반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자 긴장이 풀린다. 더군다나 아침부터 시작해 1시가 넘게 이어진 라벤더 투어로 체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 일단 점심 먼저 먹고 아비뇽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 근처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지도 한 장을 받았다. 걷고 걷다가 교황청과 다리를 만난다는 단순한 목적만을 갖고 거리 구경에 나선다.
라벤더 투어를 2시쯤에 마치고 숙소에서 사진을 찍으며 1시간 가까이 놀다보니 시간이 애매해져서 열려있는 식당도 거의 없다. 점심도 그냥 숙소 근처에 열려 있는 식당 중 만만해 보이는 하나에 들어간다. 프랑스치고는 싼 가격에 주문 방식도 독특하다. 냉장고에 이미 전채(렌틸콩이나 퀴노아 샐러드 등)부터 본식(라자냐, 파스타, 리조토 등), 디저트(푸딩이나 산딸기 무스 같은 것)조리가 완료된 음식이 유리병에 담겨 있다. 손님이 메뉴를 정해서 그것을 트레이에 올려서 돈을 지불하면 직원이 그것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데워 준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천천히 교황청 쪽으로 큰길을 따라 걸어가 본다. 길은 쉬워서 쭉 직진하면 된다.
야외식당이 늘어서 있는 왁자지껄한 거리를 지날 때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잘 따라가면 교황청이 있다.
교황청 안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아비뇽에서는 유적에 힘을 쏟기 보다는 여유롭게 거리를 둘러보는 것을 즐기기로 한 처음의 결심을 따른 결정이기는 했지만, 피곤한 몸 상태와 13유로라는 비싼 입장료도 한 몫 하기는 했다.
오전에 라벤더 투어를 할 때는 화창했는데, 늦은 오후가 되자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몰려 왔다. 쇠락한 교황청의 모습이 흐린 하늘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전에 투어 가이드가 이 지역은 1년 365일 중 300일은 비가 오지 않을 만큼 비가 귀하다고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결국 숙소 근처에서 늦은 저녁을 먹을 때 비를 만나고 말았다. 다만 비는 우리가 케밥을 맛있게 다 먹는 동안 전부 그쳐 있었다.
입장권 없이도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 같은 공간이 하나 있기에 들어가 본다. 교황이 떠나간 뒤로 교황청의 보물은 모두 옮겨지거나 약탈 당해 교황청 안은 바티칸의 교황청과는 대조적으로 휑하다는 글을 읽었었는데, 벽면과 천장 군데군데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아직 남아있어서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그렇게 교황청에서 딱 한 방만을 보고 왼쪽으로 돌아나왔다. 공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 올라왔는데, 오르막을 다 올라가니 바로 아비뇽을 둘러싼 론 강이 보인다.
교황청 옆 언덕에는 예쁜 공원이 하나 있었고, 엄숙한 교황청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분위기가 아기자기하고 활발하다. 작은 연못에는 오리떼가 살고, 주변에는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다. 금발에 곱슬머리인 작은 아이가 오리떼를 보고 신이 나서 내달리자 오리들이 귀찮다는 듯 궁둥이를 흔들며 느릿느릿 도망간다. 이십대로 보이는 젊은이들도 구석구석에 걸터앉아 있는데, 손에는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공원을 내려와서, 이제는 아비뇽 다리로 가기로 한다. 교황청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참고로, 교황청에서 아비뇽 다리로 가는 길에 라벤더 용품 샵이 죽 늘어서 있다. 억울하게도 가격은 오늘 낮에 들린 쏘Sault보다 많게는 두 배 정도 더 싸다. 산 것에 후회하고 그래도 참고 사지 않았던 것에는 감사하며, 라벤더 비누와 라벤더 주머니 세트를 하나 더 샀다. 라벤더 비누 하나에 말린 라벤더가 들어 있는 통통한 천 주머니가 두 개 달려 있는데, 가격은 2유로인가 3유로 밖에 안한다. 쏘Sault에서는 같은 비누 하나에 2유로를 줬었다.
아비뇽 다리도 3유로인지 5유로인지를 지불하면 직접 올라가 걸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느 블로그에서 미리 보고 온 글 덕분이다. 다리에 올라서는 별로 볼 것이 없고, 그 시간에 오히려 강 건너기용 페리를 타고 강 건너에 가면 다리의 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대로 해보기로 한다.
다리를 보며 쭉 걸으니 어느덧 다리를 지나쳤다. 론 강을 건너서야 비로소 아비뇽다리와 교황청, 아비뇽의 성곽이 한 눈에 보인다. 새삼 아비뇽이 성곽의 도시라는 점을 다시 깨닫는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로 아를을 돌고 와서 늦은 오후부터 아비뇽의 거리를 걸었다.
그야말로 걷고 또 걸었다.
친구의 제안으로 어느 카페에 들러 엽서를 써 보기도 했다. 볼 것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었던 스페인에서보다 훨씬 여유로운 스케쥴이다. 이런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