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도 만들 수 있는 중국 가정식, 시홍스차오지단
토마토 달걀 볶음(番茄炒蛋 fānqié chǎodàn / 西紅柿炒雞蛋 xīhóngshì chǎo jīdàn)은 중국인의 소울 푸드 중 하나이다. 조리법이 단순해서, 중국의 어린이들이 부모님이 외출하실 때를 대비해서 처음으로 배우는 요리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국경을 맞대고 이웃에 사는 중국인들의 소울 푸드가 토마토를 볶아낸 요리라니 조금 신기한 일이다. 한국에서 요리 재료나 채소라기보다는 과일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는 토마토의 입지와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양파나 감자, 고추와 같은 다른 외래종 채소와 달리, 유독 토마토는 한국인의 밥상에 쉽게 오르지 못하고 현대에 와서야 외래어로 된 이름을 그대로 달고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과일인가 채소인가 하는 논쟁에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이 토마토는 언제부터 중국인들의 주방 한편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남미의 원주민들이 재배하던 토마토를 구세계에 전파한 주역은 스페인 정복자들이었다. 이들이 식민지 개척의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 본국으로 가져갔던 수많은 물자 중에 토마토가 있었다. 유럽 땅에 도착한 최초의 토마토는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가 1520년대에 보낸 노란 품종의 토마토로 추측된다. 아쉽게도, 토마토는 새로운 작물에 폐쇄적인 식문화 때문에 오랜 기간 식용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관상용 식물로 재배되었다. 160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토마토는 스페인의 식탁에 나름대로 중요한 식재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여기서 또 백 년 정도가 흘러, 이웃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토마토를 이용한 요리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토마토를 아시아에 알린 이들도 바로 이 스페인 사람들이다. 당시 식민지였던 필리핀에서 토마토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필리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토마토가 교역을 통해 동남아시아 지역 및 중국 남부로 번져 나갔다. 토마토에 관한 중국어로 된 기록에 근거하면 토마토가 중국에 도래한 시기는 16세기로 추측된다. 토마토를 만난 중국인들이 이 생소하고 새빨간 열매에 붙인 이름이 바로 시홍스(西紅柿xī hóng shì, 서양 붉은 감)와 판치에(番茄fān qié, 오랑캐 가지)이다. ‘붉고 둥글며, 귀엽고 사랑스럽다’라는 다소 주관적인 서술 또한 기록되어 있다.
외양에 대한 우호적인 서술과는 별개로, 유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대중들이 토마토를 식재료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서양요리를 다루는 식당들이 생겨나고부터, 중국 농민들이 식용의 목적의 토마토를 본격적으로 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양식당에서 토마토는 주로 소스를 만드는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일반 가정에서 토마토를 먹는 방식은 이와 차이가 있었다. 웍(wok)을 이용한 볶음 요리가 발달한 중국이었기에, 중국인의 부엌에 자리 잡은 토마토도 뜨거운 불길 속에서 조리될(炒chǎo)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요리가 바로 오늘의 요리, 토마토 달걀 볶음이다. 어느 요리사가 처음으로 토마토를 요리하려 한 순간을 상상해본다. 아마도 늘 하던 대로 기름이 지글거리는 시커먼 웍 위에서 볶으면 무엇이든 맛있어질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신대륙을 휘젓고 다녔던 정복자들은 토마토보다는 황금에 더 크게 환호했겠지만,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방 안을 가득 채운 황금이 아닌 한 알의 토마토였다. 황금 장식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 끝에 소수의 손에 넘어가 역사 속에서 잊혔지만, 토마토 한 알은 극동의 중국인의 유년을 장식하는 따뜻한 기억으로 세대를 거쳐 전승될 것이다.
*기존 브런치북의 글을 다듬고 일러스트를 추가하여 올린 글입니다.
『트레블 인 유어 키친』(브레인스토어, 2021)에서 위 요리의 레시피와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