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를 하고 시장을 따라 돌아오는 길은 위험해
싼 헬스장을 찾다보니 집앞이 아니라 시장골목 안쪽의 헬스장에서 회원권을 끊게 되었다.
기존에 다니던 집앞 헬스장은 두 달 동안 리모델링 공사를 하더니 요가교실은 그 사이즈를 절반 이상 줄여버리고 온돌 바닥은 떼내버려서 찬 바닥에서 요가를 해야 했다. 대신 피티 강사는 두 배로 고용하고, 스피닝 방의 사이즈를 확 늘리고 회원권 값을 두 배로 받기 시작했다. 그 전이 지금보다 더 편안하고 좋았는데, 사장을 위한 리모델링이지 나 같은 회원을 위한 리모델링은 아니었나보다.
새로 옮긴 헬스장은 값이 싼 만큼 단점이 몇 가지 있었으니, 제일 큰 하나는 탈의실이 지나치게 비좁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게걸음으로 겨우 통과할 정도의 간격을 두고 옷장이 줄을 서 있으니, 옷을 갈아입을라치면 팔꿈치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때리지 않을까, 엉덩이끼리 닿지 안을까 주의를 들여야 했다.
두 번째 단점은 헬스장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반드시 시장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탈의실이 헬스장을 찾는 것을 짜증스러운 일로 만들었다면, 시장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은 헬스장을 다니는 이유 자체를 붕괴시키는 영향력이 있었다. 바로, 내가 시장을 통과할 때마다 요리재료 및 간식을 양손 가득 사서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닌 밤중에 요리혼이 불타올라서 이리저리 요리를 하나 해 놓고 맛만 본답시고 한 젓가락 두 젓가락 먹다가 한 그릇을 비워버리기 일쑤였다.
이 생굴 대파 파스타도 바로 그렇게 탄생한 요리 중의 하나이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건성건성 운동을 하고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미 나의 눈은 시장 곳곳의 식재료와 간식거리들을 흝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발길이 흘러들어간 시장 마트에서 나는 싱싱하고 싼 생굴 한 봉지를 보게 된다. 어떻게 먹을지에 대한 고민은, 일단 굴 한 봉지를 장바구니에 담고 나서 시작하기로 한다. 계란물을 뭍혀 굴전을 구워 먹을까, 그냥 초장을 묻혀 바다향 가득하게 날 것 그대로 먹을까? 아니면 밥솥에다 넣고 굴밥을 지어볼까?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굴을 이용한 파스타는 먹어본 적도, 만들어 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침 며칠 전에 유튜브에서 본 "제나로의 생선 스파게티(Gennaro's Fish Spaghetti)" 동영상이 떠올랐다. 뭔가 파스타에 해산물을 넣으면 따로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은데, 제나로는 별 것 없다는 듯이 올리브 오일에 마늘과 양파 등의 향을 뽑아낸 후에 생선살을 대중 발라 올려 스파게티면에 묻혀내다시피 해서 요리를 완성했다. 굴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도전해보기로 했다. 싱싱한 굴에는 아무래도 마늘이나 양파보다는 시원한 대파가 어울릴 것 같다. 마침 달래도 철이라 달래가 싸길래 매콤 쌉싸름한 달래도 차이브 대신 넣어보기로 했다.
제나로의 생선 스파게티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GXGxTUJvfw
오늘의 요리: 생굴 대파 달래 스파게티
재료.
생굴 한 봉지
대파 한 뿌리
달래 약간 (다섯 뿌리 정도)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스파게티 면
1) 오일을 준비한다. 대파를 하얀 심 위주로 잘게 자르고, 달래도 잘게 손질하여 올리브 오일을 많이 두른 팬에 볶아서 기름에 향을 입힌다.
대파의 초록 부분을 색을 위해 사용한다면, 흰색 뿌리 부분을 맛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초록 부분은 색은 예쁘지만 익혀 놓으면 질겨서 식감이 별로고, 하얀 부분이 부드럽고 향이 강하다.
올리브 오일은 되도록 듬뿍 넣는 것이 좋다. 2인분이라면 작은 밥공기로 절반 높이 정도는 쓰는 것이 좋다. 스파게티 면 전체를 오일로 코팅하려면 생각보다 오일이 많이 필요하다.
2) 면을 삶는다. 오일에 코팅하기 위해 따로 더 익힐 예정이니, 패키지에 쓰여진 권장 시간 보다 2-3분 덜 익혀야 퍼지지 않은 면을 먹을 수 있다.
3) 대파 오일이 충분히 배어나오면,
생굴을 투하한다. 굴은 빨리 익고 향이 금방 달아나므로, 오래 익힐 필요 없이 몇 번 저어주면 된다.
4) 미리 삶아둔 면을 투하하고, 소금과 후추로 간한다. 매콤한 포인트를 주려면 고춧가루를 뿌려도 좋다.
5) 제나로의 동영상을 보면 파스타를 완성하고 백이면 구십 올리브 오일을 추가로 더하고 레몬즙을 살짝 뿌린다. 나도 따라서 레몬즙을 서너 방을 떨어뜨려 본다. 비록 생레몬은 아닐 지라도.
실제로 신맛을 추가하면 요리의 맛이 다양해짐으로써 요리가 좀더 입체적인 맛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밤 11시가 넘어서 생굴 대파 파스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만든게 아까우니 이렇게 플레이팅을 하고 사진을 찍고, 그 다음엔?
만든게 아까우니 한 젓가락 먹고, 두 젓가락 먹고,
그러다보면 요 작은 한 접시는 뚝딱이다.
암, 요리는 따뜻할 때 식기 전에 먹어야지.
오일을 얼마나 퍼부었는지는 과감히 잊기로 한다.
피곤하니 설겆이만 하고 자자.
Bon Appe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