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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Dec 08. 2016

자취인도 그라브락스를 먹을 자격이 있다

자취방에서 스웨덴 연어요리

코스트코는 정말로 마법 같은 곳이다.


나는 한번도 코스트코에 가본 적이 없었다가 미국에서 1년 교환학생 경험을 하고 다시 돌아와서야 드디어 코스트코라는 곳에 가보게 되었다. 미국 시골마을에서 한국 대도시로 막 돌아와 한국에 적응이 덜 된 나는 들어서는 순간 내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착각을 했다. 씨리얼 코너 앞에서는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먹던 퀘이커 오트밀과 럭키참이 내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 떡 하니 쌓여 있었으니까. 내 야식이자 늘어나는 살의 주범이었던 럭키참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돌아왔는데, 한국에서도 자리를 잘 잡은 모습을 보니 반갑고 대견스러웠다.



본격적으로 자취요리를 시작한 이후에 다시 코스트코에 가게 된 것은 코스트코에 처음 갔던 날보다 시간적인 간격이 좀 있다. 그 사이 나는 취업 준비를 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퇴사를 하고 다른 진로를 찾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어찌보면 내 자취요리가 그 즈음에 꽃을 피운 것이 다 시기적인 연관성이 있었다. 어느것 하나 내뜻대로 흐르지 않는 예측불가의 세상 속에서,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만들어가는 질서를 만끽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로서 요리의 의미가 컸던 것이다.



미국에서 갓 돌아온 사람이 아닌 자취생으로서 코스트코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갖가지 미제 시리얼이나 과자보다도 큰 3병에 1만원 언저리인 토마토 파스타 소스나 2L에 만오천 원 정도 하는 올리브유를 보며 그 양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크게 감탄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거대한 연어 필렛이었다. 그렇게 큰 연어 필렛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홈플러스나 집앞 GS슈퍼마켓에서 큰 맘 먹고 연어 조각을 사 와서 연어 스테이크를 해 먹긴 했지만 대부분 여자치고는 작은 내 손바닥 하나 만한 것 두 조각에 8천원이니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코스트코의 연어는 달랐다. 단위가격으로는 100g에 3천원이었고 실제 판매되는 중량은 한 팩 당 1.3kg 정도였는데, 그러면 딱 크기가 과장을 보태 손 길이를 뺀 내 전체 팔 길이였고 가격은 4만 원쯤이었다. GS슈퍼에서 파는 스테이크용 연어 조각 따위는 50조각 정도는 거뜬히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4만원은 홀로 사는 자취생에게 단일의 재료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만약 내가 이 요리의 조리법을 몰랐더라면 나는 신선한 연어의 자태와 위압적인 크기에 침을 흘리면서도 4만원의 부담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적이게도 코스트코에 가서 연어 필렛을 처음 보기 바로 며칠 전에, 나는 유튜브에서 바로 이 동영상을 보고야 말았고, 그것이 내 선택을 결정지었다. 바로 아래 동영상이다.



문제의 그 동영상, Jamie Oliver does Stockholm

https://www.youtube.com/watch?v=c7J6AXX3otA



"Jamie Oliver does..." 또는 "Jamie Oliver in ..." 시리즈는 제이미 올리버의 무숱한 시리즈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이다. 세계를 여행하고 현지의 사람들과 현지의 부엌에서 현지의 재료로 요리를 하는 제이미 올리버라니,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제이미가 스웨덴의 스톡홀름 곳곳을 탐방하는 바로 이 편의 4분쯤부터, 나는 연어 그라브락스라는 요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잠깐 설명을 붙이자면, 그라브락스(gravlax)는 스웨덴 등의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중세로부터 전해 오는 요리법으로, 연어와 같이 큰 생선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염장을 하여 묻어둔 것에서 유래하였다. 그라브락스의 그라브(grav)는 파다(to dig)의 의미를 갖고 있고, 락스(lax)는 연어를 의미한다고 한다. 어찌보면 "연어 그라브락스"는 "역전 앞"이나 "아침조회"처럼 동의반복격인 표현이다.


 염장이라고는 하지만 스페인의 모하마(참치를 하몽 방식과 유사하게 엄장)처럼 소금을 들이부은 듯 짠 것은 아니고, 소금과 설탕과 술 등에 연어를 살짝 절여 수분기를 빼 내고 저장성을 높인 것이다.



제이미 올리버는 그라브락스를 만들기 위해 스톡홀름의 어시장에서 자신의 몸뚱이 만한 연어를 구했다. 굵은 소금 4 테이블스푼, 설탕 4 테이블스푼, 레몬 제스트, 비트 루트, 딜, 후추를 섞어 연어 표면을 덮었다. 그 다음, 보드카를 뿌려 설탕과 소금, 허브가 잘 흡수되도록 만들고, 랩으로 싼 누름돌로 연어 덩어리를 눌러두고 2일을 기다렸다.



완성된 연어 그라브락스는 윤기가 잘잘 흐르는 젤리 같아 보였다. 제이미 올리버의 연어 필렛의 크기와 내 필렛의 크기가 다르고, 짠맛에 대한 취향도 다를 것이기 때문에 블로그 몇 개를 더 살펴보았다.



식탐이의 하루 블로그

http://blog.naver.com/ohjh6108/220281969279

밥알하나 남정석의 요리 만들기 블로그

http://blog.naver.com/ncharisma7/30178856807


위의 두 블로그에서 재료 비율을 좀 참고 했다.




나는 일단 주재료인 연어필렛을 코스트코에서 구매하고, 거대한 연어덩어리를 배낭에 담고 결의에 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단일재료에 내가 이렇게 큰 돈을 쓰는 일은 앞으로 없을 지도 모른다. 미지의 요리에 대한 도전감과 약간의 불안함이 가슴 속에서 넘실거렸다. 되도록이면 필수적인 재료를 다 구비하고 시작하고 싶다. 홈플러스에 가서 레몬 세 개와 말린 딜(dill) 병을 샀다. 유튜버들과 블로거들은 다들 생 딜을 어디선가 구해와서 사용했지만, 그 정도의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건조된 딜을 사는 것 정도로 타협했다.



이제 그라브락스(gravlax)요리, 시작이다!




재료.


*큰 연어 필


코스트코에서 구할 수 있다. 내 팔뚝만한 것(1.3kg 언저리) 하나에 3만원대 후반~4만원대 초반이다. 이 정도로  큰 필렛을 구하기 어렵다면 소금의 양을 많이 줄여서 넣어야  한다.


*굵은 소금 4 아빠 스푼/설탕 8 아빠 스푼/통후추 약간(통후추는 없으면 생략)


제이미 올리버는 동영상에 나온 연어를 절이는데 소금을 8 아빠 스푼, 설탕을 8 아빠 스푼 1 대 1의 비율로 사용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제이미 올리버의 연어는 코스트코 연어보다 덩치가 더 크다. 내 연어에 소금을 그 정도 넣으면 그라브락스가 의도치 않게 매우 짜게 절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애초에 짠 음식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 소금/설탕의 비율을 1:2로 사용하기로 했다. 사실 연어 덩어리를 덮을 정도만 되어도 괜찮기 때문에 4스푼, 8 스푼을 따로 담아낸 것을 조금 남길 정도로 사용했다.


*레몬 제스트


레몬은 깨끗하게 씻어 껍질을 벗긴다. 치즈 그레이터 같은 것이 없었던 나는 감자칼로 레몬 껍질을 벗겨서 잘게 썰었다.


*딜과 각종 허브


딜 외에도 로즈마리 향이 잘 어울릴 것 같아 로즈마리를 추가했다.




재료 떼샷.


1) 연어는 혹시 잔가시가 남아 있지 않은지 찬찬히 살펴본다.


2) 소금과 설탕을 1대2 비율로 섞고 (나의 경우는 소금 4아빠 숟갈 설탕 8아빠 숫갈) 통후추도 섞어 넣는다.


3) 레몬 껍질을 벗겨 레몬 제스트를 준비한다. 레몬즙 자체는 따로 쓸 일이 없으니 남은 레몬은 다른 요리에 활용하면 된다.





4) 냉장고에 담을 통 바닥에 소금과 설탕, 통후추, 레몬제스트, 딜을 비롯한 허브를 올리고 그 위에 연어 덩어리를 얹는다. 그 위에 다시 소금과 설탕 등을 동일하게 얹고 연어 덩어리를 얹고 그 위에 다시 소금 설탕 등을 덮는다.







나는 담을 용기가 두 개 밖에 없어 연어를 켜켜히 쌓았지만, 넓은 용기가 있다면 굳이 쌓지 않고 연어 양면에 소금 설탕 레몬 제스트 등을 덮어 두면 된다.



5) 준비한 재료로 연어를 다 덮었다면 연어를 랩을 두른 누름돌 같은 것으로 눌러서 담는다.


연어에서 수분이 더 잘 빠져 나오도록 하기 위함이다. 애초에 그라브락스가 땅에 묻어서 숙성시킨 음식이었으니, 어느 정도의 압력이 연어에 작용했을 것이다. 자취생의 찬장에 누름돌 따위가 있을 소냐. 캔커피를 꺼내 랩을 두르고 다시 비닐봉지로 감싸 연어 위에 얹은 후 플라스틱통 뚜껑을 닫았다. 높이가 딱 적당하다.



6) 냉장고에 (5)를 넣고 2~3일 정도 숙성시킨다.


나는 1,2,3,4일차에 모두 시식을 해 보았는데, 2일차를 꽉 채우고 3일차로 넘어가는 즈음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숙성 2일부터는 통을 열자마자 레몬과 허브의 향취가 코를 찌르듯이 터져나왔다.






3일차로 넘어가던 날에 그라브락스를 꺼내 플레이팅을 해보았다.


연어에 붙은 소금과 설탕 등은 툭툭 털어내거나, 키친 타월로 닦거나, 흐르는 물에 살짝 헹구거나 취향껏 하면 된다.





원래는 사워크림을 곁들여야 하는데, 자취생 사정에 사워크림은 구하기 어렵고 플레인 요구르트에 디종 머스타드, 파프리카 파우더, 후추, 레몬즘 약간을 섞어서 소스를 만들었다. 연어와 맛이 잘 어울리지만 사실 그라브락스 따로 먹어도 그 향과 맛이 풍부하여 손색이 없다.





마치 탱글탱글한 젤리를 먹는 듯한 식감이다. 소금과 설탕의 작용으로 불필요한 수분은 빠지고 그 맛의 결정체만 남은 느낌이다. 한 조각을 입에 물면 레몬과 허브의 향, 그리고 농도 짙은 연어의 향이 터져나와 입안을 채운다. 여지껏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황홀한 맛이다.







요리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그럼,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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