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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Dec 08. 2016

렌틸콩 사랑

렌틸콩 수프


렌틸콩과 사랑에 빠졌던 한 해였다.



고기를 넣기엔 부담스럽고 야채만 먹기엔 뭔가 부족한 수프에는 렌틸콩이 딱이다. 단백질이 풍부할 것 같아서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고 포만감이 커진다. 그 맛이 튀지 않으면서도 은은히 고소해서 어디에나 잘 어울린다.


크기는 또 어떠한가. 적당히 삶아내면 꼬들꼬들한 식감이 살아 있는데, 콩의 크기가 워낙 작아서 부담스럽지 않게 식감을 즐길 수 있다. 푹 익히면 녹아내리듯이 부드럽다. 


크기가 작아서 생기는 이점은 식감뿐만이 아니다. 병아리콩이나 여타 큰 콩은 요리에 사용하기 전에 최소 한 시간 이상 물에 불려두어야 한다면, 렌틸콩은 작기 때문에 빨리 익어서 따로 불리는 과정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냉장고에 있는 갖가지 야채(주로 양파, 토마토, 가지, 애호박, 토마토)를 때려 넣고 렌틸콩을 함께 익히면 카레나 수프 어디에나 전천후로 사용될 수 있는 베이스가 된다. (야채 스톡이나 치킨 스톡을 넣어주면 감칠맛이 배가 된다)




양파, 토마토, 가지, 애호박과 렌틸콩 베이스의 야채스튜에 커리 파우더를 뿌려주면 간단한 야채 커리가 완성된다.





같은 야채스튜를 핸드 블렌더로 갈아주면 이런 비주얼의 꿀꿀이죽이 탄생하는데, 갈지 않고 야채와 렌틸콩을 그대로 먹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다. 먼저, 푹 익은 렌틸콩의 향이 더 구수하게 풀려난다. 또한 각각 따로 놀던 야채의 맛이 부드럽게 한데 뒤엉켜서 조화롭다. 단순한 물리적인 변화가 맛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꿀꿀이죽에 깜빠뉴 브레드, 갈릭 크림치즈, 무화과를 곁들여보았다.



렌틸콩 꿀꿀이죽 혼자 촬영했다면 이것이 무엇인고 했을 텐데, 어딘가 그럴싸해 보이는 무화과를 곁들이니 시골풍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가지, 애호박, 토마토 등을 넣지 않고 스튜야채 삼인방인 샐러리와 양파, 당근만을 넣어 렌틸콩과 끓여주면 미르푸아(Mirepoix) 특유의 향미와 깊은 맛이 렌틸콩의 삼삼하고 구수한 맛과 어우러져서 이것저것 다른 야채를 추가한 것보다 깔끔한 맛을 낸다. 




거기에다 매콤한 맛이 강한 쵸리조 소시지를 올리면 심심한 가운데 자극적인 매력이 있는 입체적인 맛의 수프가 된다. 쵸리조 소시지는 팬에서 따로 익혀 표면을 익혀주면 그 자극적인 맛이 배가된다. 나는 거기다 집에 남아 있는 치즈맛 감자칩도 살짝 올려주었다. 감자칩은 바삭 짭조름하고 쵸리조는 매콤하고 기름기가 넘치는데 그것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고 '아직은 건강한 수프야!'하는 위안을 주는 것은, 심심하고 구수한 렌틸콩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렌틸콩은 사랑이다.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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