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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Dec 20. 2016

스크램블드 에그 만들기에도 실수가 있을까?

자취인을 위한 달걀 요리법2: 스크램블드 에그

스크램블드 에그(Scrambled egg)를 만드는 데에도 실수가 있을까?



스크램블드 에그는 나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요리법이다. 스크램블드 에그는 어떻게 만들어도 실패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스크램블드 에그(scrambled egg)라는 이름 자체가 뒤죽박죽 섞어버렸다는 의미인데 크게 실패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나에게 있어서 스크램블드 에그는 어떻게 보면 실패를 무마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요리이기도 하다. 오믈렛을 만들거나 계란말이를 만드려다가, 한 귀퉁이가 터져서 흘러나와서 '어어, 이게 아닌데' 싶으면 나무주걱으로 이제 막 덩어리지려는 달걀을 마구 부서뜨려서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든다. 열심히 한참을 부수고 나서, '스크램블드 에그로는 괜찮네'하고 씩 웃을 수 있는 여유는 바로 스크램블드 에그라는 요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



그런데, 스크램블드 에그에 대한 글을 쓰려고 구글 검색을 해보니 바로 상단에 뜨는 것의 제목이 "당신이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드는 데 저지르는 7가지 실수(7 Mistakes You're Making With Your Scrambled Egg)" 따위이다. 스크램블드 에그는 실수니 뭐니 신경 안쓰고 막 만드는 혹은 실수에서 태어나는 요리인데, 실수라니? 황급히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도 몇몇은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몇 가지를 공유 해 본다.



<스크램블드 에그 만들 때 하는 7가지 실수>


1. 달걀 외에 다른 액체류 섞기(Adding extra liquid)

흔히 달걀물에 우유나 크림을 넣으면 스크램블드 에그가 더 부드러워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란다. 스크램블드 에그는 신선한 달걀을 적당하게 익혔을 때가 가장 부드럽다고. 우유나 크림을 섞으면 달걀물이 다른 액체에 의해 미세하게 분리가 되므로 단백질이 더 빨리 열에 의해 응고된다고 한다.


2. 달걀물을 건성건성 치기(Beating the eggs with a fork for a couple seconds)

한마디로 달걀물을 열심히 치라는 것. 달걀물을 치는 과정에서 공기가 섞여들어가서 더 폭신하고 깃털 같은 식감을 주게 된다고 한다.


3. 요리 전 준비과정에서 달걀물에 소금 뿌리기(Sprinkling on the salt before cooking)

이것은 고든 램지도 한 말인데, 달걀물에 미리 소금을 뿌리면 소금이 달걀에서 수분을 분리시켜 촉촉한 스크램블드 에그 대신 물이 새어 나오고 상대적으로 뻑뻑한 스크램블드 에그가 된다고 한다.


4. 생야채를 스크램블드 에그에 던져 넣기(Tossing in raw veggies)

야채의 익는 시간이 달걀의 익는 시간과 다를 뿐 아니라 야채에서 물이 새어나와 스크램블드 에그가 쓸 데 없이 축축해진다고 한다.


5. 달걀의 양에 비해 너무 큰 팬을 쓰기(Using a giant pan)

달걀의 양에 비해 너무 큰 팬을 쓰면 팬에 남은 열이 너무 많아서 스크램블드 에그가 눈 깜짝할 새 너무 익어서 고무처럼 뻑뻑하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6. 달걀이 다 익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불에서 내리기(Taking them off the heat when they look done)

스크램블드 에그는 뻑뻑하게 고무처럼 익어서 질겅질겅 씹히는 식감을 즐기기 위해 만드는 요리가 아니다. 입안에서 퍼지는 부드러운 식감을 즐기기 위한 것. 그것을 위해서는 중간 정도 익었다고 생각될 때 팬을 불에서 내려서 스크램블드 에그를 따로 담아내야 한다. 달걀은 달걀 자체의 잔열로도 계속 익기 때문이다.


7. 강한 불에서 요리하기(Cooking over high heat)

달걀이 불의 세기에 민감한 재료인만큼, 가장 최고의 바로 그 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기 마련이다.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불은 중~약 정도로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늘어 놓으니 참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아보이지만 정리하면 간단하다. 바로 완벽한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드는 데에 신선한 달걀, 소금, 후추, 그리고 오일류(버터나 올리브 오일 등) 외에는 필요한 것이 없으며, 살짝 덜 익은 듯한 그 부드러운 느낌이 맛의 핵심이라는 것!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드는 데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배웠으면, 잘 만드는 방법의 절반 정도는 이미 다 배웠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공부를 해 보니, 스크램블드 만드는 방법도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그냥 단순히 달걀을 휘저어 가며 익히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스크램블드 에그가 얼마나 사랑 받는 요리인지 영국인과 프랑스인, 미국인들은 각각 저마다의 스크램블드 에그 만드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그 차이를 잘 설명한 동영상이 바로 아래의 제이미 올리버의 동영상이다.


How To Make Perfect Scrambled Eggs - 3 ways | Jamie Oliver

https://www.youtube.com/watch?v=s9r-CxnCXkg



왼쪽부터, 영국식, 프랑스식, 미국식 스크램블드 에그. 자세히 보면 질감이 확연히 다르다. -출처: 유튜브



그런데 이것이 영미 유럽권만의 유난이 아닌 것이, 잘 찾아보니 인도에도(egg bhurji), 필리핀에도(Onions and scrambled eggs), 칠레에도(Scrambled eggs with digüeñes) 저마다의 스크램블드 에그 만드는 방법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중국요리 중에서도 '토마토달걀볶음(일명 토달볶)'이라는 일종의 스크램블드 에그가 존재하지 않는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기술이 요리라는데, 겸손치 못하게 이번에도 요리의 세계를 너무 얕봐 버렸다.


인도식 스크램블드 에그(egg bhurji) -출처: 유튜브



중국식 스크램블드 에그, 토마코달걀볶음 -출처 :wordpress.com







요리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얻게 되는 즐거움이 많지만, 뭔가 잃어버리는 것이 있을 때도 있다. 이 스크램블드 에그에 대한 글을 쓰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유인즉, '스크램블드 에그 만들 때 하기 쉬운 실수'이니, '각국의 스크램블드 에그 요리법' 등을 알면 알게 될수록 내가 그동안 해 오던 스크램블드 에그에 대한 자부심이 한 꺼풀 두 꺼풀 벗겨져 이제는 가느다란 양파 심지 만큼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고든 램지가 화려하고 절제된 손놀림으로 만드는 영국식 스크램블드 에그를 보고 나면, 나의 스크램블드 에그는 급하게 마무리한 초등학교 방학숙제마냥 보잘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도대체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내 머릿속을 번뜩 스쳐지나간 영화가 있었다. 바로 아름다운 탱고 장면으로 유명한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이다. 알 파치노의 경이로운 연기를 아직 보지 못한 사람도 탱고 장면의 배경음악인 "Por una Cabeza"는 한 소절만 들으면 '아, 이노래!'하며 알아차릴 것이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피아노 4중주나 5중주가 연주되고 있다면 한 곡 정도는 이 곡으로 연주하기 마련인 친숙한 곡이다.


The Tango - Scent of a Woman

https://www.youtube.com/watch?v=F2zTd_YwTvo



이 영화의 탱고 댄스 장면에서 세상의 영화 대사 중 가장 시적인 대사 중 하나가 나오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대사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스크램블드 에그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대사를 살펴보자.




아름다운 호텔 식당에서 홀로 앉아있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 소년. 소년을 대신해 앞을 볼 수 없는 퇴역한 군인 역의 알파치노가 여인에게 말을 건넨다.


-Would you like to learn to tango, darling?
-탱고를 배워보시겠소, 아가씨?

-Right now?
-지금이요?

-I'm offering you my services, free of charge. What do you say?
-당신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는 거요. 무료로. 자, 어떡하시겠소?

-Ah..I think I'd be a little afraid.
-글쎄요..좀 두려운걸요.

-Of what?
-무엇이 두렵다는 것이지요?

-Afraid of making mistakes.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요.

-No mistakes in the tango, darling, not like life. It’s simple. That’s what makes the tango so great. If you make a mistake, get all tangled up, just tango on. Why don't you try?

-탱고에는 실수가 없소이다. 삶이랑은 다르지요. 간단합니다. 사실 그게 바로 탱고가 멋진 이유이지요. 만약 당신이 실수를 한다면, 전부 헝클어버린 다음에(get all tangled up) 다시 탱고를 이어가면 되지요(just tango on). 해 보시겠소?

-All right. I'll give it a try.
-좋아요, 시도해 볼게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1992)" 중


탱고를 추며 자신감을 얻고 미소 짓는 여인을 보라!




사실 이 글의 제목을 "탱고와 스크램블드 에그"라고 지을 뻔 했다. 영화 속의 탱고에 대한 생각과 스크램블드 에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어찌나 그리 닮아 있는지. 'tangle(헝클어지다)'이라는 단어와 'scramble(뒤죽박죽으로 만들다)'라는 단어는 라임마저 맞아떨어진다.



스크램블드 에그에 대한 글을 적느라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스크램블드 에그 만들기에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스크램블드 에그는 애초에 뒤죽박죽 엉망진창 섞어버린 달걀인 것을.



 If you make a mistake, get all scrambled up, just scramble on.



어느 주말 오전의 브런치. 스크램블드 에그에 샐러드, 베이컨, 마늘빵을 곁들였다.




이것은 미국식으로 만들어본 것. 사실 주걱을 휘저어야 하는 영국식이나 프랑스식 보다 휘적휘적 만드는 미국식 스크램블드 에그가 만들기 편하다.



이것은 도대체 어떤 스크램블을 만드려 했는지 기억 나지도 않는 스크램블드 에그.





맛있으면 그만이다.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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