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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Dec 14. 2016

페타치즈를 올린 바나나 프렌치 토스트

자취생의 영양 브런치

프렌치 토스트에 관한 글을 이전에 한 번 쓰기도 했지만, 프렌치 토스트에 대한 나의 추억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프렌치 토스트는 브런치의 개념이 한국에 도입되기 훨씬 전, 내가 어린 시절에 엄마가 주말마다 자주 해주시던 주말 아침메뉴였다.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는 8시 반이나 9시쯤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대신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평일이나 일요일이나 매한가지로 걱정이나 피로 없이 살았던 유년기의 나는 일요일에도 7시쯤이면 자연스레 눈을 떴으나, 직장인이셨던 엄마는 단 하루뿐인 휴일(지금은 당연한 주5일제 이전!)의 늦잠을 놓치지 않으셨다. 늦잠이라 봤자 매일 출근하시느라 6시 전에 기상하셨던 것에 비해 두세 시간 늦게 일어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눈을 뜬 이후로 두세 시간을 공복으로 기다리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었어도 슬쩍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 한 잔을 마시거나 사과라도 한 알 씻어 먹을 것을, 초등학교 저학년만 하더라도 정말 어렸나보다. 엄마가 늦잠을 주무시는 일요일 아침마다 이불을 손에 꼭 쥐고 엄지 손가락을 빨면서 엄마가 일어나시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던 것이다. 혼자 부엌에서 무엇을 챙겨먹을 수 있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것이다. 자라날 당시에는 항상 내 스스로가 참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새삼 어린 아이는 부모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낀다.



8시 정각 즈음에 시작하는 디즈니 만화동산을 엄마가 일어나실라 소리를 낮춰 보고 있노라면 안방에서 엄마가 일어나시는 기척이 느껴졌다. "ㅇㅇ야, 일어났나~" 하시는 목소리를 들으면 잔뜩 눌러놓았던 배곯이가 갑자기 증폭되면서 반가움에 심장이 쿵쾅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부스스한 머리를 하시고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식사 준비를 하셨는데, 엄마가 부스럭부스럭 식빵 봉지를 뜯으시는 소리가 들려오면 눈은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 TV에 꽂혀 있으면서도, 머릿속에는 이미 달콤하고 노릇노릇한 프렌치 토스트에 대한 기대감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우유에 적셔 계란물을 입힌 식빵이 기름을 충분히 두른 프라이팬에 오를 때면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펴졌다. 냄새가 버틸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코를 벌름이며 엄마를 도와드린다는 핑계로 TV를 버리고 부엌으로 가서 가장 먼저 구워진 따끈따끈한 프렌치 토스트 한 점을 얻어먹었다. 엄마는 프렌치 토스트에 항상 설탕을 뿌려주셨다. 갓 만든 프렌치 토스트 한 점을 입에 넣으면 설탕이 녹아 내리는 뜨거운 빵조각을 입안에서 굴려가며 식히느라 무아지경에 빠지곤 했다.



맥모닝, 와플, 버터핑거 팬케익 등을 거치며 이제는 많은 젊은 세대에게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나 브런치의 개념이 널리 펴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런 것은 하나도 모르시는 엄마가 20년도 전부터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오셨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어떻게 유독 프렌치 토스트만 한국 대중에게 미리 알려지게 된 걸까? 혹시 그 당시에 "신혼요리 100선" 같은 요리책에 프렌치 토스트가 실려 유행하게 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버터나 '마아가린' 광고에서 프렌치 토스트를 만드는 장면이 다루어져서 널리 퍼지게 된 걸까? 혹은 분식 장려운동의 일환으로 계획적으로 도입되었나?


프렌치 토스트, 팬케이크, 스크램블드 에그, 베이컨이 갖추어진 전형적인 미국식 아침식사. 이중 한국의 가정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이 바로 프렌치 토스트와 팬케이크(핫케이크로 통용)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내가 자라날 때만 해도 "우리 아이 영양간식"이라는 표어가 이곳저곳에서 왕왕 사용되었다. "영양간식"으로 일컬여졌던 음식들은 돈까스, 치킨, 치즈, 마요네즈, 소시지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이라면 '고칼로리 음식'이나 '비만을 초래하는 음식'으로 분류되어 엄마들 사이에서 기피될 만한 것들이다. 칼로리와 당분,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을 따지는 요즘과 달리, 내가 기억이 닿는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사회에 비만에 대한 혐오는 지금처럼 심한 편은 아니었다. 50~70년대까지는 "뛰어 다니지 마라. 배 꺼질라"라는 말이 당연했을 정도로 음식이 귀했던 시대이니, 비만인구가 적었을 뿐더러 고칼로리의 "영양간식"은 비실비실한 우리 아이를 우량아동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는 좋은 양분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런 맛좋은 영양간식을 만들어 주시고 싶었던 마음에서 엄마도 마가린과 식용유를 골고루 두른 프라이팬에 계란물을 입힌 식빵을 지져내고 그 위에 설탕을 소담히 뿌려주시지 않았을까. 세월이 흘러 일요일 아침 손가락을 입에 물고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며 엄마의 프렌치 토스트를 기다리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자취생활의 외로움도 달관할 지경이 되었다. 휴가를 이용해 본가에 오래 머물다보면 엄마가 한두번 프렌치 토스트를 해 주시기도 하는데, 예전과는 그 대접이 다르다. 그 맛있는 프렌치 토스트를 식탁 위에 올려두시고는 살찌지 않도록 너무 많이 먹지 말라는 것이다. 소담하던 설탕도 이제는 삼겹살에 드문드문 왕소금 뿌려놓듯 절제가 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타박이 늘었으나 내가 주문하지 않아도 아직도 가끔 해주시는 것을 보면, 엄마도 내가 프렌치 토스트를 손가락이 빠져라 기다리던 것을 잘 기억하시나 보다.





 



추억의 프렌치 토스트를 냉장고의 재료를 이용해 좀더 요즘 스타일로 만들어보았다.


페타치즈를 올린 바나나 프렌치 토스트.



재료(1조각)


-깜빠뉴 같은 큰 빵을 조각으로 자른 것이나 바게트를 비스듬하게 자른 것 또는 식빵 한 조각

-달걀 1알

-빵을 적셔줄 정도의 우유

-소금 취향껏 약간

-바나나 한 줄

-설탕 또는 메이플 시럽 또는 매실액

-페타치즈 약간




조리법


1) 계란하나를 잘 친 후 소금간을 약간 해서 계란물을 만든다.


2) 빵 조각을 우유에 살짝 담그어 촉촉하게 한다. 너무 오래 담그면 빵이 풀어져서 프라이팬에 올리기가 힘드니 살짝 담그었다가 재빨리 건진다.


4) 프라이팬을 중불에 잘 달구어서 빵을 넣기 직전 버터를 두른다.


5) (2)의 빵에 계란물을 골고루 입힌다.


6) 버터를 두른 프라이팬에 (5)의 빵을 올려 양쪽 면 모두 노릇하게 익도록 굽는다.


7) 표면이 노릇노릇 잘 익은 프렌치 토스트를 그릇에 옮겨 담고 동그랗게 잘라낸 바나나와 짭쪼롬한 페타치즈를 조금 올린다.


8) 설탕 또는 메이플 시럽이나 매실액을 촉촉하게 뿌려낸다.




페타치즈는 내가 좋아하는 치즈 중 하나이다. 코스트코에서 400g에 8천원 정도에 샀으니, 치즈치고는 양대비 가격이 괜찮은 편이다. 물론 코스트코에서 샀을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페타치즈를 처음 맛보는 이들은 그 짠맛에 질겁을 할 지도 모르겠다. 염지를 강하게 한 치즈라 그런지 아무래도 짜다. 수출용 제품들은 보존을 위해 더 짜게 만든다고 한다. 나는 페타치즈의 짠맛이 당기지 않는 날에는 치즈 한조각을 잘라 표면의 소금물을 물에 살살 헹군 후에 치즈의 물기를 키친타올로 살살 닦은 후에 먹기도 한다.



단순한 모양의 그릇에 바나나와 페타치즈를 올려 내니 모양이 그럴 듯하다. 설탕이나 메이플 시럽 대신 매실액을 뿌렸는데, 담음새가 메이플 시럽 뿌린 것과 비슷할 뿐 아니라 새콤한 맛이 있어서 색다른 매력이 있다.



집에서 브런치 플레이트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먹을 때마다 그 원가를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내가 만든 프렌치 토스트에 양상추 샐러드 약간, 소세지 한 줄을 올리면 분위기 괜찮은 '힙'한 동네에서는 최소 1만 3천원에 팔릴 것이다. 원가를 따지면 빵 한조각에 800원 (4천원짜리 둥근빵을 5등분했다 치고) 바나나 하나에 많이 잡아 500원, 페타치즈 300원, 매실액 약간 해서 2천 원도 안될 가격인 것을. 여기에 샐러드와 소시지 하나를 더한 들 5000원은 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브런치문화에 대한 씁쓸함은 그렇다치고, 그럴싸한 프렌치 토스트가 완성되었다.


모양이 좀더 세련되다하들 엄마의 사랑이 담긴 일요일 아침의 설탕소복한 프렌치 토스트 만할까.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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