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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Dec 13. 2016

자취인을 위한 달걀요리법 시리즈1: 오믈렛

프랑스식 오믈렛과 미국식 오믈렛

자취인이라면 모름지기 달걀과 친해야 한다. 자취생활을 다룰 줄 아는 자취인은 달걀을 다룰 수 있는 자취인인 것을.



나의 자취생활은 아래의 4 개의 다른 시기를 거쳤다. 요리생활 또한 자취생활의 변화단계와 그 궤적을 공유하였다.


-나의 자취생활 단계

1. 배고픈 학생시기

2. 돈은 많지만 매우 바쁜 직장인 시기

3. 돌아온 수험생 시기(AKA실업자 시기)

4. 적당히 돈을 벌고 적당히 시간이 있는 직장인 시기

 


1. 배고픈 학생시기는 요리에 대한 관심이 있었으나 물질적 토대가 밑받침되지 못했던 시기이다.


3000원 짜리 귤 한 봉지를 사고서도 이 귤이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나 참회하던 순간이 있었던 것을. 흔히 집에서 재료를 갖추어 식사를 해먹으려면, 최소 2인부터 사먹는 것에 대비해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고 한다.  그만큼 소포장 식재료의 단위가격이 비싸고, 식재료를 샀을 때 버려지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이다. 한끼에 최소 1700원에서 3000원 하는 학생식당이 버젓이 지근거리에 있었기에, 집에서 해먹는 음식은 같은 가격의 학식에 비해 영양과 질에 있어서 크게 떨어졌다. 단순 계산을 해보자.

-제일 싼 오뚜기 햇반 하나 700원.

-달걀 한 알 200원. (30개 한 판이 5000~6000원쯤 하니까)

-참치 중간사이즈 한 캔 2200원. (코에 붙일 정도로 작은 100g 짜리가 천원에 팔리기도 하지만)

-오이 한 줄 700원(계절마다 다르지만 보통 세 줄에 2000원쯤 하니까)

자, 참치 한 캔, 밥 한 공기, 계란 한 알, 오이 한 줄의 초라한 밥상이 이미 원가로만 3800원이다! 이 정도면 모양은 구질구질하지만 학식을 먹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사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2. 돈은 있지만 바쁜 직장인 시기에는 시간에 쫓겨살았다.


퇴근이 기본 9시~10시였으니, 저녁은 회사에서 야근식비로 처리해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주말도 출근하기 싫은 마음에 침대에서 몸부림치기만 했지 요리를 구상해 볼 여력 따위는 없었다.



3. 요리에 대한 열정과 도전의식이 불타올랐던 시기는 바로 '3. 실업자 시기'였다.


이때는 요리를 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와 정신적 토양이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이다. 수험생이긴 했지만 회사에서 돈 쓸 시간이 없어 모을 수 밖에 없었던 돈이 생각보다 두툼하게 통장에서 버티고 있었다. 내 손으로 번 떠떳한 돈을 쥐고 있어서인지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 눈에 띄는 사치는 하지 않았지만, 과일을 사거나 고기를 사거나 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아도 되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안정이 되어 있었다. 본디 연약한 감성을 타고났으나, 사회초년생이 겪을 만한 고초를 마주치며 회사에서 버텨보려 애쓰던 시간들이 나름의 수련과정이 되었다. 회사에서 나온 나는 학생시절의 나보다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며 감성적으로 무뎌졌지만 그만큼 좀더 단단한 구석이 있었다.


먼저 내가 몸과 마음이 편해야 공부가 더 잘되리라 생각하였다. 다른 시간은 최대한 낭비하지 않고 공부에 몰입하였으나 아침 요가와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장보기, 아점을 손수 준비하기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오전의 일상은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요리에 몰두하는 시간은 은근하게 날선 수험생의 일상을 부드럽게 해주는 연화제였으며 폭신폭신한 오믈렛 같은 쿠션 같은 시간이었다.



4. 지금의 나는 퇴근 시간이 적당히 보장되고 돈은 이전에 비해 훨씬 적지만 그냥저냥 조금씩 모을 수 있는 직장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수험생 시절처럼 요리에 강렬하게 몰입하지는 않는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모든 일이 귀찮은 것이 당연지사. 대부분 해동시킨 밥에 달걀 프라이와 간장을 곁들여 먹는 정도이다. 하지만 일주일 중 한번 정도는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볼 정도의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자취생에게 달걀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기 위해 지나치게 돌아온 것 같다. 하지만 내 자취인생을 단계까지 나누어 가며 설명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자취인생의 그 모든 단계에서, 달걀이 필수적이고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자취생활을 시작한지 겨우 1년을 채웠을까, 모든게 어색했던 학생 시절에는 학식을 먹지 않을 때 양질의 단백질 섭취를 어떻게 저렴하게 섭취하느냐를 고민했다. 채소도 계절을 타서 애호박 하나가 2천원을 하고 양파가 3알에 5천원을 하는 혹독한 시기도 몇 번 있었지만, 사시사철 비싸게만 느껴진 것은 단연 고기였다. 대형마트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니던 자취촌 근처의 GS슈퍼. 소포장된 닭, 돼지, 소고기는 왜 그리도 비쌌던지. 카레를 해먹고 싶어 카레용 돼지고기를 골라들면 한 줌에 3천원은 기본이었다. 3천원이면 학식으로 카레라이스를 먹을 수 있는 돈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돼지고기를 사먹을 명분이 서지 않았다. 참치통조림은 또 얼마나 비싼가. 냉동된 고기는 그나마 쌌지만 하필이면 자취방에 있는 냉장고는 냉동칸이 있으나마나한 전형적인 자취방용 냉장고여서 냉동된 고기 1키로를 집어넣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양질의 저렴한 단백질원을 찾아헤메던 그때 한 줄기의 빛을 던져준 것이 바로 달걀이었다. 카레용 돼지고기 200g 남짓을 살 4천원으로 운이 좋으면 동네 마트에서 달걀 30구 한 판을 살 수 있었다. 한 끼에 고기 200g이야 아쉬울듯 말듯 금방 먹어치웠지만, 신기하게도 달걀 4알은 충분하게 느껴졌다. 달걀 4알이면 천원이 되지 않는 돈. 달걀의 저렴함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밑반찬도 달걀장조림, 특식도 달걀 프라이, 다이어트도 삶은 달걀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실업자 상태에서 요리에 전념하던 때에는 달걀프라이와 삶은 달걀에서 벗어나 달걀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법에 도전해 보았다. 유튜브의 동영상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스크램블드 에그부터 시작해서 오믈렛, 수란까지. 스크램블드 에그도 영국식, 미국식, 프랑스식 방법이 있었고, 오믈렛은 한술 더 떠서 미국식, 프랑스식, 스페인식, 이탈리아식 프리타타, 수플레 오믈렛 등 방법도 천차만별이었다. 제이미 올리버가 유난히도 달걀 요리법을 특집편으로 유난히도 많이 다루어 주었다. 참 고마운 분이다.



-도움이 될 만한 제이미 올리버의 달걀 요리법 동영상

How To Make Perfect Scrambled Eggs - 3 ways | Jamie Oliver

https://www.youtube.com/watch?v=s9r-CxnCXkg

5 Things to do With... Eggs | Food Tube Classic Recipes

https://www.youtube.com/watch?v=Jzm2kExgIPc



나름 안정적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지금도, 달걀은 여전히 내 식탁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재료이다. 가끔씩 소고기를 사서 스테이크를 구워먹기도 하고 돼지고기를 사서 삶아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불러서 같이 놀기 쉬운 옆집 친구처럼 가장 쉽고 편한 재료는 달걀이다.


최대한 늦게까지 버티며 잠을 자느라 시간이 부족한 아침에는 전날 삶아서 껍질까지 까놓은 달걀을 한두 개 입 안에 집어넣고 화장을 한다. 퇴근을 하고 돌아와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저녁에는 물을 자작하게 부은 작은 그릇에 달걀을 깨넣고 노른자를 톡 터뜨린 다음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간 돌린다. 그러면 귀찮게 프라이팬을 꺼내들지 않아도 버튼 한 클릭만으로 기름을 쓰지 않은 저칼로리의 계란 프라이(스팀드 에그?)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전자레인지에서 익힌 달걀을 꺼내서 해동한 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당근이나 오이를 곁들여 먹으면 나름 영양 균형이 맞는 간단한 저녁식사가 된다. 간편함의 극치이다. 돼지고기 요리나 소고기요리 중 아무리 쉽고 단순한 것이 있다한들 이것보다 더 손쉬울까.






오늘 내가 소개하려는 오믈렛은 프렌치 오믈렛미국식 오믈렛이다.


프렌치 오믈렛은 '프렌치'오믈렛이고 미국식 오믈렛은 그냥 '미국식'인 것이 이상하지만, 왠지 프렌치 오믈렛은 프랑스식 오믈렛이 아닌 프렌치 오믈렛이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프렌치 오믈렛과 미국식 오믈렛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순전히 조리법의 차이, 바로 그것 하나이다. 이 둘의 재료라고 해봤자 계란, 소금, 후추, 약간의 오일과 버터가 기본이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두 가지 스타일의 오믈렛을 만들 수 있다. 차이브(쪽파)나 치즈, 크림을 넣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 차이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두 오믈렛의 조리상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프렌치 오믈렛의 핵심은 '달걀물을 그냥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이는 동영상을 한번 보기만 해도 단번에 이해가 된다. 프렌치 오믈렛을 만들기로 했다면 프라이팬이 달걀물에 닿자마자 쉬지 않고 숟가락이나 주걱을 놀려서 달걀물을 손목이 아플 정도로 빠른 속도로 휘저어 주어야 한다. 달걀물이 익어서 어느정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아직 부드러울 때가 되면 휘젓기를 멈추고 프라이팬을 기울여가며 길게 늘린 럭비공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 소금간은 미리 달걀물에 해두지 말고 럭비공 모양을 만들기 직전에 해주는 게 좋다고 한다. 소금을 미리 뿌려 놓으면 뭔가 달걀이 익을 때 좋지 않은 점이 있다고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국식 오믈렛의 핵심은 '편하게 편하게, 부드럽게 부드럽게'이다. 계란물을 약불에 살짝 달군 프라이팬에 올린 다음, 10~20초를 기다렸다가 그때부터 주걱으로 달걀물을 천천히 슬슬 헤쳐준다. 이렇게 헤쳐주는 과정에서 주걱이 지나간 길을 따라 빈 공간이 생기면, 프라이팬을 기울여 그 공간에 덜 익은 달걀물이 흘러가도록 한다. 어느 부분이 먼저 딱딱하게 익어버리는 것을 방지하여 부드럽게 골고루 익은 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이다. 프라이팬에 닿은 부분이 잘 익고 위를 향한 면이 아직 부드럽게 살짝 덜 익은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반을 접어 그릇에 담아내면 반달 모양의 먹음직스러운 미국식 오믈렛이 완성된다.


사실 오믈렛 만들기를 이해하는 데에는 백번 글을 읽는 것보다 한번의 동영상을 보는 것이 훨씬 낫다.

프렌치 오믈렛 만들기의 중노동을 잘 보여주는 1인칭 시점의 프렌치 오믈렛 만들기 동영상과 슬근슬근 특유의 느긋함으로 만들어내는 미국식(아마 영국식도 동일한가?) 오믈렛 만들기 동영상이다.



프렌치 오믈렛: First Person French Omelette

https://www.youtube.com/watch?v=3oTFE6FAIrw


미국식 오믈렛: How To - make an omelette, from 'Jamie Does...'

https://www.youtube.com/watch?v=wA_Op5SoAAM




내가 만든 오믈렛의 사진을 첨부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먼저, 팔이 아플 때까지 달걀물을 프라이팬 위에서 휘저어 만든 럭비공 모양의 프렌치 오믈렛.



처음 만들어보았는데도 모양이 잘 나와서 매우 흡족했다.

보통 차이브(쪽파 비슷한 허브)를 잘게 잘라서 향과 색감을 더해주는데, 당연히 그런 것은 구하기 힘드므로 쪽파를 사서 다져 넣어 보았다.



골고루 익도록 열심히 휘저어준 덕분일까, 표면부터 안쪽까지 모두 부드럽게 잘 익어있다. 쪽파의 향이 먹을 때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은 당연지사.



심지어 모양도 참 우아하다.





미국식 오믈렛은 이에 비해 좀더 푸짐하다고 해야 하나, 푸근하다고 해야 하나.

프렌치 오믈렛에 비해 만드는 기술도 덜 들고, 그 식감도 익숙하다. 만들기 쉽다는 점 외에 매력적인 부분은, 다양한 식감의 조화를 느껴볼 수 있다는 점. 겉면과 안쪽이 골고루 다 살짝 익은 프렌치 오믈렛이 균질하게 부드러운 식감을 느끼게 해 준다면, 미국식 오믈렛은 바삭하게 갈색빛으로 익어서 고소한 바닥 부분이 맛있을 뿐 아니라 촉촉하게 설익어서 입에서 녹는 속 부분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면 나는 만들기 쉬운 미국식 오믈렛쪽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만들 때의 상황이고, 혹시라도 누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다면 우아하고 보드레한 프렌치 오믈렛을 선택할 테다.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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