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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Dec 11. 2016

미국에서의 라자냐를 추억하며

아띠나의 라자냐

미국에서 딱 10개월을 살았다. 짧다면 짧은 10개월의 시간이 내 인생을 바꾸는 결정을 하게 하는 토대가 되었고, 어린 시절 10년을 살았던 지방의 소도시만큼이나 큰 향수를 남겼다. 



주도이긴 했지만 우리나라 전주시나 안동시보다도 작은 느낌의  도시였기에, 자동차도 없었던 내가  놀러갈 만한 곳은 뻔했고  어딜 갈 때마다 아는 이를 마주쳐서 서로 머쓱해하기도  했다. 작은 곳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그 도시의 곳곳이 어제까지 살았던 곳인양  생생하게 기억난다. 트램을 타고 단 하나 뿐이었던 몰(mall)에 갈 때 어떤 역을 지나치는 지, 장을 보러 갔던 스미스(Smith's)의 인스턴트식품 코너가 얼마나 위압적이고 광대했는지, 가을이면 한국보다 훨씬 원색에 가까운 초록의 잔디 위로 샛노란 사시나무 잎이 점점이 떨어졌는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는지.



작은 도시에서 외로워한 적도 많았다. 아니, 오히려 항상 외롭고 고독한 가운데 소소한 추억들이 어두운 마음을 가끔 비추어주었다고나 할까. 다행히도 가까이 지낸 가족이 있어서 자주 그 집에 놀러가서 식사를 함께 하곤 했다. 아띠나의 요리가 어찌나 따뜻하고 맛있었는지, 나에게 미국하면 생각나는 추억의 맛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외롭고 심심하면 밤새 미드를 보며 퍼먹었던 럭키참, 친구네 방에 놀러가서 패밀리가이를 함께 보며 홀짝홀짝했던 럼콕,  기숙사식당의 주말특식이었던 브렉퍼스트부리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띠나의 요리라고 대답하겠다.



아띠나의 요리실력은 최고였는데 그 중에서 으뜸은 바로 라자냐였다. 기숙사 식당에서 먹어보았던 라자냐와는 차원이 달랐다. 세이지 우드향의 초를 켜 놓은 향기로운 부엌에서 다같이 둘러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나누어 먹는 따뜻한 라자냐 한 조각. 아띠나의 가족이 좋아했던 페타치즈와 그린올리브를 듬뿍 넣은 새콤한 샐러드와 함께 먹으면 살이 찌는 지도 모르고 세 조각이고 네 조각이고 더 먹을 수 있었다.



아띠나의 라자냐 맛을 기억하고 추억하면서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쉽게 해보지 못했다. 일단 오븐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베사멜 소스 만들기도 어려울 것 같고.



라자냐를 직접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라구소스 만들기의 성공이었다. 라구소스도 성공했는데 베사멜 소스라고 못만들겠는가.  미리 라자냐면을 익혀서 사용하면 오븐이 없어도 라자냐를 만들 수 있다는 정보도 알았다. 이제 걸림돌은 사라졌다.


내가 과연 추억의 맛을 재연할 수 있을까?

라자냐 만들기, 시작이다.



재료.


-라자냐면(오븐이 없다면 미리 끓는 물에 제시된 시간보다 1~2분 정도 짧게 삶아놓는다)

-라구소스(미트토마토소스인데, 이전에 미리 만들어놓은게 있었다)

-치즈(모짜렐라가 잘어울리지만 체다나 크림치즈도 올려도된다. 나는 페타치즈도 조금 올려보았다)

-베사멜소스 재료: 밀가루, 버터, 우유, 소금후추



요리법.


1. 라구소스를 준비한다.


라구소스 만들기가 어렵다면 시판 미트소스나 토마토파스타 소스에 간 소고기 볶아서 같이  끓이는 식으로 간단히 준비해도 된다.



2. 베사멜 소스를 준비한다.


버터와 밀가루의 양을 최대한 동일하게 맞추어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밀가루를 5 아빠숟갈 사용한다면 버터를 5아빠 숟갈을 쓰는 식이다.


너무 뜨겁지 않은 팬에 버터를 10아빠스푼 넣고 녹인다. 버터가 다 녹으면 밀가루를 10 아빠스푼 넣고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며 볶는다. 이 볶는 과정이 중요한데, 밀가루를 골고루 충분히 잘 볶아야 베사멜 소스에서 밀가루 풋내가 나지 않는다.(사실 나는 베사멜 소스 만들기가 처음이라 그 풋내를 다 없애는데 실패했다)


볶던 밀가루가 갈색으로 변하기 전에 우유를 조금씩 나누어 부어가며 계속 볶는다. 우유를 한꺼번에 들이부으면 우유와 섞이지 못한 밀가루떡이 생길 뿐이다. 맨 처음에는 볶은 밀가루를 적실 정도로 아주 조금. 그 다음에도 아주 조금 더. 이런 식으로 그때그때 밀가루가 충분히 골고루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만 나누어 넣는다. 베사멜 소스의 농도가 적당해지면(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병조림 크림소스 정도 혹은 더 진한 정도)우유 더하기를 멈추고  소금과 후추로 간한다.



사실 라구소스와 베사멜 소스를 준비했다면 라자냐 만들기는 이미 거의 다 끝났다고 보아도 좋다.



3. 오븐이 없는 사람들은 라자냐면을 끓는 물에 제시된 시간보다 1~2분 더 짧게 삶는다. 오븐이 있다면 패스해도 좋다.



4. 그다음은 쌓기만 하면 된다. 적당한 사이즈의 용기에(오븐에 넣는다면 오븐용 용기에) 라구소스-베사멜소스-라자냐면-라구소스-베사멜소스-라자냐면-라구소스-베사멜소스-라자냐면-라구소스 이런 식으로 쌓는다. 맨 위에는 라구소스를 얹고 그 위에 준비한 치즈를 뿌린다.




5. 준비한 라자냐를 익힌다. 면을 미리 삶아두었다면 맨 위에 올린 치즈가 녹을 정도만 익혀주면 된다. 전자레인지에서 2분 정도면 충분하다.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라자냐를



한 조각 잘라서 접시 위에 예쁘게 담아본다.



베사멜소스에서 살짝 밀가루향이 나는 살짝 어색한 라자냐이지만 라구소스를 신경써서 만들어서 그런가 꽤나 맛이 깊다. 라자냐면은 푹 익어서 포크로 자르면 쑹덩쑹덩 잘린다.


머리로는 잠깐 잊고 살았지만 혀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한 입 먹자마자 아련하게 아띠나의 식탁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후각이 강렬한 기억의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글을 읽었는데, 미각도 그러한가 보다.






아띠나가 곁들여주던 페타치즈와 그린올리브 샐러드가 없어서 그런가, 한 조각만 먹어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



아니면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위가 줄은 건가.

그 당시 내가 좀 많이 먹기는 했다.






통통하고 새까맣게 그슬렸던 마냥 잘 먹던 미국에서의 나를 추억하며,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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