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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Dec 10. 2016

누군가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저녁

깻잎 참치 주먹밥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요리를 시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배는 고프고, 밖에서 사 먹기에는 돈이 아깝거나 자극적인 음식이 싫고, 누가 먹기 좋은 음식을 딱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지만 자취생에게 그런 것은 소망일 뿐 기대가 될 수 없다. 하물며 냉장고에 밑반찬도 없는 것을. 냉동된 밥에 참치 통조림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저녁에 집에 들어왔을 때 보글보글 된장찌개와 따뜻한 밥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비단 남성 중년 가장만이 가질 수 있는 로망이 아니다. 20대 후반의 외로운 자취생도 그러한 환상을 꿈꾸어볼 수 있다. 환상을 환상으로만 간직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얼마 전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퇴근 시간이 40분 가까이 단축이 되니, 저녁 배곯이를 하기 전에 집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이전 같으면 퇴근길 내내 증폭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지 않고 김밥천국이나 편한 밥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녁밥을 해 먹는 것이 아주 쉬워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몸은 피곤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싫다. 배만 고프지 않으면 이대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다 잠이 드련만. 옷만 갈아입고 20분 여째 드러누워 있다가 결국 자꾸만 침대로 가려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부엌 쪽으로 갔다. 식욕과 휴식욕 중 식욕의 승리이다. 



그러고 많은 일이 그러하듯 시작이 어려울 뿐 한번 시작하면 물 흐르듯이 진행된다.  냉장고와 찬장을 탐색하며, 장을 보러 나가지 않고 만들 수 있을 만한 요리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장을 크게 본 지 오래되어, 한 가지 멋들여진 요리를 뽑아낼 만한 재료다운 재료가 없다. 채소를 보충한답시고 사놓은 시들어가는 깻잎 몇 장 양파 한 망, 참치 한 캔, 달걀 몇 알 뿐. 이 재료로 만들만한 요리를 생각하니 딱 두 가지가 떠오른다. 비빔밥이냐 주먹밥이냐. 아무래도 비빔밥이 만들기도 간편하고 시간도 적게 들지만, 기왕 차려 먹는 것 예쁜 그릇에 예쁘게 차려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자취생이 뭘 그렇게 예쁘게 차려놓고 먹느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혼자 먹는 밥인데 대충 먹게 되지 않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월화수목금토일 일주일 중 밥을 일곱 번 차려먹는다 치면 그중 다섯 번은 정말로 불쌍해 보일 정도로 대충 먹는 것이 사실이다. 라면에 밥을 말아먹거나, 달걀을 전자레인지에 익혀서 해동시킨 밥에 넣고 간장과 참기름에 비벼먹는 식이다. 그러나 그중 두 번 정도는, 제대로 예쁘게 차려먹게 된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고스란히 나의 만족감을 위해서이다. 아니, 굳이 누구를 위한다고 하면 내 찬장 속에서 언젠가 한번 사용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귀여운 그릇들을 위해서라고나 할까.



어쨌든, 오늘의 요리는 참치 깻잎 주먹밥이다.



재료.


-기름기를 뺀 참치 한 캔.

-양파 반 개 또는 한 개.

-마요네즈, 머스터드(디종 머스터드 또는 홀그레인 머스터드), 소금 후추.

-밥(김밥이 그러하듯 주먹밥도 고슬밥보다는 진밥 또는 찰밥이 좋다)

-깻잎 필요한 주먹밥 개수만큼.







1) 양파는 잘게 썬다.



달걀 속도 해 넣을까 싶어 달걀도 삶아 보았는데, 아무래도 깻잎에는 참치가 어울려서 그냥 샐러드처럼 먹었다.



2) 참치는 기름기를 빼 둔다. 뚜껑을 완전히 다 따지 말고 그 상태에서 안으로 누른 상태에서 통조림 캔을 기울여 기름을 따라내면 쉽게 참치 기름을 뺄 수 있다.



3) 다진 양파는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돌려 익혀서 매운맛을 빼낸다. 


팬에 볶아도 되지만 피곤한 저녁에 그런 수고를 할 리가. 설거지를 줄여주는 전자레인지가 최고다.



4) 기름을 뺀 참치, 머스터드, 마요네즈, 소금 후추를 익힌 양파가 든 볼에 넣고 잘 섞어서 참치 소를 만든다.


사실 나는 이럴 때 어울릴 만한 다른 재료들도 몰아넣는 경향이 있다. 파프리카 파우더와 오레가노도 넣어보았다. 사실 맛에 큰 차이는 없다.






5) 밥도 그냥 두면 심심하니까 간을 좀 한다. 소금 후추에 참기름이면 된다.


나는 일부러 심심하게 모자랄 정도로 간을 했다. 엄마가 올려보내 준 맛있는 김치와 먹을 거니까.




참치소와 마찬가지로 계란소도 만들어 볼 수 있다. 마요네즈, 머스터드, 소금 후추가 들어간다. 집에 오이피클이든 마늘쫑 피클이든 피클 종류가 있으면 꼭 다져 넣는 게 좋다. 계란에는 피클이 정말로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6) 재료가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는 쌈 싸기의 시간이다.


비닐장갑이니 하는 것으로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간편하게 주먹밥 쌈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데,



밥과 참치소를 깻잎 위에 조금 올리고




바로 그 깻잎을 쥔 손을 조물조물해서 주먹밥의 모양을 잡는 것이다.





주먹밥을 하나 싸고 하나 먹는 욕구를 최대한 참으면서 나를 기다리던 그릇에 플레이팅한다.




오밀조밀 귀여운 주먹밥 완성.

간이 심심해서 엄마가 보내준 새콤한 김치를 조각내서 곁들여 먹으면 잘 어울린다.




저녁을 해놓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을 만들 순 없지만, 내가 먹어주기를 올망졸망 기다리는 주먹밥은 만들어낼 수 있다.





만드는 덴 근 한 시간, 먹는덴 한 순간.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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