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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Dec 21. 2016

빵으로 스프를 끓인다고?

빵으로 만든 스페인 전통 마늘스프, 소파 데 아호Sopa de ajo

여행지에서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한 미련이 많은 편이다.

아쉽게 못 먹고 돌아온 음식이 있으면, 그 음식을 놓쳤던 바로 그 순간을 계속 생각하며 돌아와서 오래토록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이런 음식에 대한 집착을 잘 알고 있기에, 올해 7월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스페인의 음식에 대해 이틀 동안 검색을 수시로 하고 먹어볼 음식 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여행길에 오르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얻고 우선순위를 세워 두어서, 한정된 기간 동안 효율적으로 최대한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어보자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다음은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무위키 사이트참고해 간추려 본 스페인 요리 경험 위시리스트이다. 먹어본 것에는 O 표시를 했다.


<이번 여름 스페인 여행 요리 위시리스트(O는 실제로 먹어본 것)>


O 핀초스 (Pinchos)

소파 데 아호 (Sopa de Ajo)

O 가스파초 (Gazpacho)

살모레호 (Salmorejo)

코시도 마드리예뇨 (Cocido Madrilleño)

사르수엘라 (Zarzuela)

O 엠빠나다(empanada)

O 추로스(Churros)

O 마사판(Mazapán)

O 파타타 브라바 (Patatas Bravas)

칼소타다(Calçotada)

O 토르티야 (Tortilla)

코치니요 아사도 세고비아노 (Cochinillo Asado Segoviano)

O 풀포 가예고 (Pulpo Gallego)

O 감바스 알 아히요(Gambas al ajillo)

아로스 콘 레체 (Arroz con leche)

O 파에야 (Paella)

피데우아 (Fideua)

O 하몬(Jamón)

O 초리소 (Chorizo)

모하마 (Mojama)

O 바칼라오 (Bacalao)

O 판 콘 토마테 (Pan con Tomate)

O 보까디요(Bocadillo)

O 상그리아 (Sangría)

O 띤또 데 베라노 (Tinto de Verano)

O 셰리주

O 오르차타 (Horchata)

O 플란 (Flan)



약 10일 정도의 스페인에서의 일정에서 최선을 다해 다양한 음식을 접하려 꾸준히 노력했고, 그 결과가 바로 저 스무 개의 'O' 표시이다. 2 주가 안되는 시간 동안 저 정도의 요리라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음식을 조금씩 저렴하게 맛보기 딱 좋은 타파스 문화의 공로가 컸다. 물론 당시의 유로 환율과 스페인의 싼 물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꽤나 다양한 종류의 요리를 맛보았다고 해서, 먹지 못했던 요리들에 대한 미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랄까. 살모레호라든지, 소파데 아호 같은 메뉴를 메뉴판에서 보기는 하였으나 별 생각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넘겼던 순간이 자꾸 떠오르는 식이었다. 스페인 여행을 회고하는 순간마다 '오늘은 스페인 요리보다 파스타가 땡겨', 하며 피데우아 사진이 붙은 입간판을 지나치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던 순간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면 코시도 마드리예뇨를 잘 한다고 해서 어렵게 찾아간 식당이 한 시간 후에 문을 연다고 해서 배가 너무 고파 그 한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가게에 들어가서 평범한 메뉴를 먹었던 순간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마침내는 아쉽게 놓친 요리들의 이름을 줄줄 외울 지경이 되었다.



그런 미련에 사로잡혀서였을까, 한국에 돌아와서 일부러 스페인 레스토랑을 여러 번 찾아다녔다. 마침 집 근처에도 스페인 식당이 하나 새로 문을 열었다. 반가운 마음에, 장보러 가는 길에 식당을 발견한 바로 그 날에 혼자 의연하게 자리를 잡고 메뉴를 세 개나 시켜먹어보았다. 하지만  메뉴판을 정독하다시피하여 고른 요리를 부푼 기대를 안고 기다렸건만, 스페인의 식당에서 느꼈던 그때의 강렬한 즐거움은 다시 느낄 수는 없었다. 토르티야(스페인식 감자오믈렛)는 프라이팬에서 갓 구워내 뜨거운 김이 풀풀 나는 대신에 미리 만든 것을 잘라서 데워서 나오는 식이었다. 스페인에서 먹었던 것과는 달리 보름달 같이 둥그런 오롯한 한 덩이가 아닌 손바닥보다 작은 한 조각이 나왔는데 7천원이었다. 해산물 파에야도 매한가지였다. baby squid를 먹물소스에 익힌 요리에는 꼴뚜기 만한 baby squid가 채 10마리도 들어있지 않았고, 감바스 알 아히요는 새우는 6마리 밖에 없는데 9천원이나 했다.



한국에서 스페인 요리가 그 질이나 정통성(authenticity)에 비해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는 것을 푸념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인 줄은 잘 안다. 재료 수급의 어려움도 조금 있을 테고,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메뉴를 파는 데 대한 리스크도 가격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6,7천원에 먹을 수 있는 순두부 찌개가 미국에 가면 12달러에 팔리는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작은 프라이팬만한 토르티야가 스페인에서 5유로(6천원 정도)였다해도 그것의 5분의 1정도 되는 크기의 식어빠진 토르티야 한 조각이 7천원이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할 지도 모른다. 현지물가로 가볍게 접할 수 있을 요리들이 한국에서는 비싸게 팔리는 것은 스페인 요리 뿐 아니라 태국 요리, 베트남 요리, 그리스 요리 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스페인 식당들만을 탓하는 것은 편파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페인을 여행하는 배낭 여행자로서 느꼈던 스페인 요리의 아름다움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파인 다이닝 쪽은 나와는 거리가 먼 분야이기에, 내가 경험한 스페인 요리에는 가스파초를 시키면 투박한 국그릇 한가득 가득 채워서 나오고 빠에야 2인분을 시키면 배고픈 성인여성 두 명이 달려들고도 해치우지 못해 옆에 앉은 노부부와 절반은 나누어 먹던 그런 푸짐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식당주인들과 한국의 식당주인들이 맞서 싸워야할 현실의 적은 두 나라 간의 거리만큼이나 다를 것이므로, 한국에서도 그런 따뜻한 스페인 요리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사리 문을 연 식당들에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그냥 직접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 푸짐하고 저렴하고 따뜻하게 준비할 수 있는 스페인 가정식. 재료만 있다면 내가 직접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 생각을 하자마자 유튜브 검색어로 "Spanish recipe"를 검색하니 절반 이상은 빠에야 요리법이 나왔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토르티야 요리법이었다. 그 사이에서 유독 내 눈에 띈 것이 바로 이 '소파 데 아호(Sopa de Ajo: Soup of Garlic)'였다. 소파 데 아호는 내가 스페인의 타파스 바에서 "이건 나중에 먹을 수 있겠지"하며 넘겼다가 그 이후로 영영 만나지 못해 미처 먹어보지 못하고 돌아온 요리 중 하나였다. 아쉽게 놓쳐버린 요리라는 점 이외에 재료도 간편해서,  빵과 햄 종류, 올리브 오일, 파프리카 파우더, 마늘 정도만 있으면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마늘과 빵을 넣어서 끓이는 스프라니, 이것보다 간단하면서도 이국적이고 서민적인 스페인요리가 또 있을까. 이 요리를 설명하는 Food Wishes 채널의 Chef John의 소개를 들어보니, 이 수프는 먹을 만한 재료가 부족할 때스페인 중부의 가정에서 많이 끓여먹던 수프라고 한다. Chef John은 혹시 음식과 돈이 부족하여 굶주리고 있는 대학생이라면 꼭 시도해보기를 바란다는 인삿말 또한 덧붙였다. 혹시 나를 말하는 건가? 이제 대학생은 아니지만 쓸 수 있는 돈도 별로 없고 굶주리고 있는 것은 비슷하니, 딱 이거다 싶었다.




소파 데 아호 만드는 순서를 재미있게 잘 설명한 동영상

Spanish Garlic Soup - Sopa de Ajo Recipe - Bread and Garlic Soup ㅣ Food Wishes

https://www.youtube.com/watch?v=fixHiTWKRWA




소파 데 아호(Sopa de Ajo) 이미지  출처: foodwishes.com



-출처: 유튜브




참고로 '네이버 지식백과'에 '소파 데 아호(Sopa de Ajo: Soup of Garlic)'에 대한 설명이 잘 갖추어져 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마늘과 파프리카 파우더 덕에 얼큰하면서도 식감이 부드러워 해장용으로도 인기가 높은 수프라고 한다.


‘아호’는 스페인어로 '마늘'을 뜻하므로, 요리명 자체가 '마늘 수프'라는 의미이다. 카스티야와 레온지방에서 먹는 전형적인 수프의 형태가 스페인 전역으로 퍼진 음식으로,전날 먹고 남은 딱딱한 빵을 활용했던 스페인의 소박한 가정식에서 유래하였다. 형편이 넉넉치 않던 시기에 아침과 점심 끼니를 해결해 주었고, 소화불량의 완화를 위해 먹는 습관이 있었다. 또한 사순절 단식 기간에 간단히 먹던 음식이었다. 고기를 넣지 않아 절제를 추구하는 종교 차원의 식단으로 적정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는 육수로 수프를 만드는데, 이는 맛을 위해 추가된 레시피이다.재료는 달걀, 식초, 올리브 오일, 딱딱한 바게트 또는 빵, 마늘, 닭육수, 후추, 파프리카, 고춧가루, 파슬리 등이다. 만드는 방법은 우선 냄비에 물과 식초를 넣고 휘저어 물결을 만들면서 수란을 준비해 둔다. 달군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바게트를 굽다가 마늘과 각종 양념을 넣어 함께 볶는다. 냄비에 닭육수를 붓고 끓기 시작하면 바게뜨와 마늘 볶은 것을 넣은 다음 뚜껑을 덮어 15분간 끓인다. 결과물을 그릇에 담고 수란을 얹은 후 파슬리를 뿌리면 완성이다. 기호에 따라 치즈 가루를 뿌려 풍미를 더하기도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푸짐하고 따뜻했던 스페인의 요리를 추억하며, 스페인의 부엌을 자취방으로 불러보자.





재료. (2~3인분 기준)


-아주 얇게 편을 뜬 마늘 10알 정도(취향에 따라 더 넣어도 좋다)

-햄이나 지방 부분을 떼어 낸 베이컨(스페인 햄을 구할 수 있다면 넣어보자)

-올리브오일 머그컵 반 컵 정도.

-단 맛이 없는 바게트나 깜빠뉴 종류의 빵 하나

-파프리카 파우더 많이

-고추가루 약간

-소금과 후추



조리법.


1. 단맛이 없는 바게트 같은 식사용 빵을 준비해서(마르고 오래된 빵일수록 좋다)



이렇게 잘게 잘라준다.



2. 오븐이 있다면 오븐에서, 아니면 프라이팬에 올려서 빵의 수분을 날리고 바삭하게 만든다. 입에 넣으면 과자처럼 바삭할 정도가 좋은데, 후라이팬에 가만히 두면 탈 수가 있으니 자주 뒤집고 옮겨준다.



빵이 바삭하게 잘 구워졌다.





3. 이제 소파 데 아호(Sopa de Ajo: Sopa는 수프, Ajo는 마늘을 의미)의 핵심재료인 마늘을 등장시키자. 마늘은 최대한 얇게 편을 써는데 칼로 할 자신이 없다면 채칼 종류를 사용해도 된다. 올리브유는 3분의 1머그컵 정도를 냄비에 담고 온도를 살짝 높인다.



4. 올리브유가 살짝 따뜻할 때 편을 썬 마늘을 냄비에 넣는다. 마늘이 황금빛으로 익을 때까지 약 2분 간 잘 저어준다.



5. 마늘이 익으면 준비한 햄이나 베이컨을 넣어서 1분 정도 익혀준다.


나는 햄이 없어서 흰 지방 부분을 뗀 베이컨을 두 줄 잘라넣어주었다.



6. 이제 소파데아호의 먹음직스러운 붉은 색을 결정 짓는 파프리카 파우더를 넣어준다. 파프리카 파우더는 대형 마트의 향신료 코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에게는 전혀 맵지 않으므로 예쁜 색을 위해 아낌 없이 넣어주면 된다. 나는 아빠 숟갈로 네 스푼 가득 넣었다.



7. 마늘과 햄, 기름에 파프리카 가루의 맛이 잘 배도록 1 분간 잘 섞어준다.




8. 이제 바삭바삭하게 잘 구워진 빵을 넣고 골고루 잘 섞어준다.


붉은 오일과 잘 섞은 빵. 이대로 먹어도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자, 이제 치킨스톡이 등장할 차례. 따로 만들면 더 좋겠지만 제일 간편한 것은 아무래도 고형 치킨스톡.





9. 냄비에 상온의 물을 빵의 양에 따라 2~3컵  정도 붓고 고형 치킨 스톡을 한 알 넣어준다.



10.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이 끓으면 불을 중불로 줄이고 5분간 더 끓인다.


원하는 농도에 거의 이르렀다 싶으면 소금과 후추로 간을 더하고 고춧가루도 취향껏 넣어준다.


국물색이 예쁘게 우러나왔다.





11. 이제 달걀을 넣어서 수란처럼 익혀줄 차례. 이 부분에서는 샥슈카 만들기와 유사하다.


주걱으로 스프에 달걀 만한 작은 웅덩이를 만든 다음에 달걀을 조심스럽게 흘러넣는다.


뚜껑을 덮고 달걀을 익혀준다. 흰자가 부드럽게 익고 노른자가 형태는 잡혔지만 터뜨리면 흘러나올 정도가 다 익은 상태. 완전히 다 익지 않도록 잘 확인한다.






걀 하나가 터지긴 했지만 적당히 잘 익은 것 같다.



접시에 예쁘게 담아낸다. 빵 덩어리와 수프를 먼저 담고 그 위에 달걀을 올린다.



물컹한 빵의 질감이 익숙해질 듯 말듯 생소하지만 마늘 맛이 깊은 국물은 어쩐지 낯이 익다.




빵 하나에 마늘 조금으로 이렇게 푸짐한 수프를 만들 수 있다니 신기할 뿐이다. 단추로 스프를 끓인 동화가 생각나기도 하고. (물론 단추로만 끓인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빵의 질감이 너무 생소해서 이 한 그릇을 다 비울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지만, 한 그릇을 다 비울 때쯤 되니 이 요리의 맛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의 할머니가 끓여준 것 같은 맛이랄까. 처음 만들어본 생소한 조리법의 요리이지만 어쩐지 푸근한 기분이 드는 것은 마늘의 힘일까?




앞으로도 더 많은 스페인을 나의 부엌에서 만날 수 있기를,


Buen Apet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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