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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Dec 24. 2016

북미의 크리스마스 음료, 에그노그 만들기

술이 들어가 알딸딸한 어른을 위한 크리스마스 음료

운이 좋게도 미국에서 살았던 10개월 남짓의 기간 동안 미국인의 가정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길 기회가 있었다. 

자주 교류하며 지내던 미국 가족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워낙 대가족인지라 드넓은 미국 중서부 곳곳에서 가족의 자녀 기준 육촌까지의 친척들이 모여들었고, 작지 않은 2층집이었지만 사람이 많아 손님들은 게스트룸, 거실 소파, 지하의 오락실 및 TV방 등에서 복닥복닥 함께 잠을 잤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했는데, 꼭 내가 어릴 적에 명절 전날 사촌들과 한 방에서 딱 붙어 잠이 들었던 것과 같았다. 그날 밤에는 처음 본 사람들과 어울려 밤새 게임을 하고 수다를 떨다가 결국 지하실 소파 어딘가에서 잠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른 가족의 명절모임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밤을 지샌 그 용기가 정말로 가상할 뿐이다.


남의 가족모임 한 가운데서도 씩씩하게 잘 어울려 놀 수 있었던 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친척들의 배려 덕택이었다. 이방인인 나를 기꺼이 초대해준 미국인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귀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즐거움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잔뜩 취해 온갓 간식을 쌓아놓고 'Ticket to Ride'니, 'Monopoly'니 하는 게임을 하다가도, 어딘가 가슴 한 쪽이 뭉클해질 때가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외로움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수 년이 지나 지금 글을 쓰며 미국에서의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니 더 절절한 느낌이 든다. 나를 포함한 사촌들이 어른이 되어버리고 어린 우리를 끼고 밤새 화투를 쳤던 어른들이 손자나 손녀를 볼 시기에 이른 지금, 명잘 전날 하루 종일을 같이 놀고도 밤늦게까지 엎치락 뒤치락 하던 그 밤들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닿기 때문이다.


가족이 모여 함께 게임을 하는 크리스마스의 풍경. -사진출처: Pinterest



겨울이 더 추운 자취방에 홀로 앉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다보니, 왁자지껄했던 미국에서의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 더욱 그리워졌다. 그때 내가 떠올린 단어 하나가 바로 에그노그(Eggnog)였다. 밤새 게임을 하다 출출할 때 누군가 익숙한 몸짓으로 냉장고에서 꺼내왔던 연노랑빛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료. 한입을 마시자 단맛과 부드러움이 입안에 퍼졌고 이로 인해 나의 미국 크리스마스 추억에 미각적인 측면이 추가되었다. 


항상 내게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 음료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에그노그(Eggnog)는 북미에서 사랑 받는 크리스마스 음료로, 우유와 생달걀, 설탕, 술을 섞어 따뜻하게 데웠다가 식혀서 먹는 부드럽고 달콤한 음료이다. 먹음직스러운 연노랑빛은 달걀 노른자에서 비롯한 것이다.


어여쁜 연노랑빛 때문에 언뜻 바나나우유처럼 보이는 에그노그. 바닐라향이 가미되기 때문에 맛도 바나나우유와 비슷하다.


전통적인 레시피에서는 에그노그에 전체 양의 4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술(브랜디, 위스키 또는 럼)을 넣는데, 어찌보면 어른들을 위한 음료인 셈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에그노그를 먹는다면 쉽게 취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1826년 미국의 사관학교에서 '에그노그 폭동(Eggnog Riot)'이라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에그노그에 술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학교 측이 학생들에게 술이 들어가지 않은 에그노그만을 마실 것을 강요하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학생들이 외부에서 갖가지 술을 기숙사로 밀반입하였던 것. 학생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술을 마셔댔고 이에 따라 많은 기물이 파손되었으며 결국 군법회의까지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사건도 있었지만 여전히 술을 넣은 레시피가 널리 사랑 받고 있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먹기 위해 또는 가볍게 마시기 위해 술을 아예 빼고 에그노그를 만드는 일도 많다.



물론 인스턴트 음식의 천국인 미국에서 사랑 받는 음료인 만큼, 슈퍼에서 사서 바로 마실 수 있는 형태로도 다양한 제품이 존재한다. 평소에는 구석 한 귀퉁이만 차지하고 있다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시작하면 진열공간이 수배로 늘어나기도 한다.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살 수 있도록 출시된 제품인 만큼 알콜 성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가정에서 만드는 에그노그와는 다르게 색감이나 질감을 위해 색소나 전분이 추가되기도 하고 설탕이 과다하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홈메이드 에그노그는 좋아하지만 인스턴트 에그노그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의 경우는 인스턴트 에그노그도 꽤나 맛있게 먹었다. 미국인들의 다양한 취향을 맞추기 위해 저지방 우유나 두유, 쌀우유로 만든 에그노그도 존재한다.


다양한 인스턴트 에그노그들. 


북미를 대표하는 명절 음료인 만큼 '에그노그(Eggnog)'라는 이름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맞다. 가장 오래된 에그노그에 대한 기록은 1775년에 메릴랜드에 살았던 Jonathan Boucher라는 성직자가 쓴 시이다. 다만 그 어원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종료되지 않았는데, 'Egg(달걀)'은 그 연원이 명백해 보이니 남은것은 'nog'라는 말이 왜 붙어있냐는 것이다. 학설에 따라 'nog'는 스코틀랜드산의 독한 술을 의미하기도 하고 술을 담는 나무잔을 의미하는 중세영어단어 'noggin'이 변형된 것이 되기도 한다.


한편, 북미 지역에서 사랑 받는 크리스마스 음료이지만, 우유와 생달걀, 설탕 및 알콜을 섞은 음료는 유럽 및 남미 지역에도 존재한다. 다양한 국가에 그 지역에 맞게 변형된 형태로 에그노그와 비슷한 음료가 존재하는데, 음식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항상 그렇듯 어느 나라가 원조인지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미에서 먹는 에그노그는 흰자를 설탕과 섞어 머랭으로 만든 것을 위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 노른자+우유+크림으로 된 에그노그 자체에 머랭을 섞어서 질감을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에그노그와 비슷한 이탈리아의 Zabaione은 노른자와 설탕, 와인(주로 모스카토 와인)으로 만들어 차게 먹는다.



네덜란드의 Advocaat은 달걀 노른자와 설탕, 브랜디를 섞어서 만든다.







자, 이 정도로 에그노그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직접 만들어 보자.


가장 많이 참고한 동영상: Homemade Eggnog Recipe – How to Make Classic Christmas Eggnog

https://www.youtube.com/watch?v=RWIYCGVTNLM


재료.


-신선한 달걀 4개 : 흰자와 노른자를 나눌 예정.

-넛맥(Nutmet, 육두구) 가루 1 티스푼 + @ : 대형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음

-바닐라빈 1줄 : 바닐라 액기스를 취향껏 넣어도 된다.

-설탕: 달걀노른자에 설탕 1/3 컵 &  달걀 흰자(머랭)에 설탕 1 아빠숟갈

-우유 2컵 : 저지방이나 무지방 우유를 쓰면 식감 및 혀에 감기는 질감이 오리지널과 달라지니 일반우유(wholemilk)를 쓰면 좋다.

-크림(heavy cream) 1컵 : 내 경험상 크림이 없다면 생략해도 괜찮다.

-: 버번 위스키나 럼주 1/2~3/4 머그컵 혹은 소주컵 가득 3~4잔 정도, 취향에 따라.


* 말리부 럼을 사용한 팁

나의 경우 찬장에 말리부 럼이 있었고 평소에 베이킹은 전혀 하질 않는지라 바닐라빈이 없었다. 

에그노그 하나를 만든다고 큰 마트에나 가야 파는 바닐라빈을 사기는 귀찮고, 그래서 말리부 럼의 바닐라+코코넛향을 이용하기로 했다. 위의 재료에서 바닐라빈을 빼고 말리부럼을 사용하여 바닐라향을 말리부 향으로 대체한 것이다! 먹어본 결과 미국에서 먹었던 추억의 맛과 은근 비슷했다. 단, 말리부 럼에 이미 설탕이 많이 들어가 있으므로 에그노그가 너무 달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노른자에 들어가는 설탕의 양을 한 숟갈 이상 빼주는 것이 좋다.





요리법. 


1. (달걀 분리) 달걀 4개를 준비하여 달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한다. 머랭치기용인 흰자에는 절대로 노른자가 들어가면 안된다.


2. (노른자 준비) 달걀 노른자를 거품기로 잘 저은 다음에 설탕 3분의 1컵 정도를 넣고 부드럽게 잘 섞일 때까지 저어준다.


3. (우유 데우기) 냄비에 우유 2컵, 크림 1컵, 넛맥 가루, 바닐라빈(계피스틱을 함께 넣어도 좋다)을 넣고 70도 정도가 될 때까지 데운다.


4. (커스터드 믹스 만들기)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설탕과 함께 섞은 달걀 노른자를 넣고 약불에서 약 3~5분간 잘 저어주며 데운다. 온도는 70도~80도 정도를 유지하며, 절대로 달걀 노른자가 응고되어서는 안된다. 숟가락을 담그었을 때 뒷면에 살짝 코팅이 될 정도의 질감일 정도가 가장 좋다.


5. (식히기와 알콜 더하기) (4)의 커스터드 믹스는 냄비에서 다른 용기로 옮겨 랩을 덥고 잘 식혀준다. 얼음물에 담그거나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 다 식은 커스터드 믹스에 취향에 따라 럼주나 위스키를 넣으면 된다.



사실 이 커스터드 믹스까지만 만들어도 충분히 에그노그라고 할 수 있다. 아래부터는 철저히 가장 전통적인 레시피를 따른 것으로 번거롭다면 여기에서 멈추고 (5)의 에그노그를 즐겨도 무방하다.



6. (머랭 만들기) 차가운 보울(bowl)에 달걀 흰자를 넣고 잘 저어준다. 전동 휘핑기가 있으면 좋고 아니면 팔고생을 좀 해야 한다. 거품이 고루 올라올 정도가 되었으면 설탕 1 아빠숟갈 정도를 넣은 후 뻑뻑해져서 심지가 뾰족하게 올라올 때까지 빠르게 저어준다.


머랭의 질감은 셰이빙 크림과 비슷한 정도일 때가 좋다. -사진출처: Youtube채널 FoodWishes


7. (에그노그에 머랭 섞기) 차게 식은 커스터드 믹스에 머랭의 절반을 넣고 부드럽게 잘 섞어 준다. 뻑뻑하게 올린 머랭을 섞음으로써 음료의 가벼운 느낌이 줄어들고 질감이 풍부해진다.


내가 만든 노른자+우유+설탕+말리부 믹스와 머랭. 둘을 섞기 전의 사진이다.



8. (에그노그 위에 머랭 올리고 장식하기) (7)의 에그노그를 컵에 옮겨 담고 그 위에 머랭을 적당량 올린다. 그 위에 계핏가루나 넛맥가루를 조금 올려 장식한다.



에그노그 위에 머랭을 살짝 올리고 넛맥가루를 그 위에 뿌려 완성했다.





이로써 바닐라빈 없이도 에그노그가 완성되었다. 말리부에 바닐라향과 코코넛향이 강하게 가향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에그노그 느낌이 난다.




바닐라빈 없이 에그노그를 만들게 해준 공신, 말리부와 함께.




향기롭고 부드럽다. 나는 럼주를 좋아하여 설탕을 많이 빼는 대신 말리부를 듬뿍 넣었다. 


바나나우유처럼 순진하고 청순한 외모인데 한 모금만 마셔도 술기운이 확 올라오는 것이 재미있다.





특별했던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고마운 에그노그.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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