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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Jan 25. 2017

카레만큼 쉬운 비프 크림스튜 만들기

일본인의 소울푸드, 크림스튜

일본 여행을, 정확히 말하면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 같은 대도시와는 달리 오키나와는 쇼핑이 주목적이 되기는 어려운 여행지이다. 하지만 내 나름 쇼핑에 대한 상당한 기대가 있었다. 옷 쇼핑도 아니고, 장신구 쇼핑도 아니고, 바로 일본 식재료 쇼핑이었다.


집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에 핸드폰을 붙잡고 열심히 외웠던 가타카나가 식재료 쇼핑에서 큰 몫을 해냈다. '카레, ' '쿠리-무, ' '타코 라이스' 등을 느리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에 제2외국어로 배울 때는 히라가나는 어찌어찌 외워도 이것저것 다 비슷하게 생긴 가타카나는 그렇게 외우기가 싫더니, 요즘 들어 이렇게 집중해서 단기간에 잘 외워낸 것이 또 있나 싶을 정도이니 뭔가 우습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국제거리의 돈키호테에서, 이온몰의 맥스 밸류에서 아래와 같은 일본 식재료를 골라왔다. 보기에는 많아 보여도 내 나름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것은 아직 일본 요리(정확히 말하면 요리법과 요리 재료)에 대해 아는 바가 부족하여, 막상 어떤 제품이 요리를 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지겨워하실 새라 찬찬히 둘러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곳에서만 급하게 집어 든 것도 아쉬운 점 중 하나이다.




다행히 일본 요리는 잘 몰라도 오키나와 요리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고 갔기 때문에, 또 오키나와에 머무는 동안 오키나와 요리를 실제로 맛볼 수 있었기에 오키나와 토속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은 제법 잘 골라왔다.


내가 골라온 재료들은 아래와 같다.


<오키나와 토속요리 재료>


-후: 밀 글루텐을 모아서 건조한 제품. 빵 같은 맛과 고기 또는 볶은 달걀 같은 질감이 있다. 참푸르 요리에 주로 쓰인다. 사진에서는 왼쪽 아래 길쭉한 막대기 빵 같이 보이는 것.


-참푸르 소스: 오키나와 볶음요리 참푸르를 만드는 소스. 맛을 보니 다시다의 감칠맛이 많이 느껴진다.


-타코 라이스 재료: 오키나와 향토요리로 자리 잡은 타코 라이스 키트. 아직 열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쥬우시 재료: 오키나와의 향토요리인 쥬시(또는 쥬우시)는 우리나라의 건강밥 같은 느낌이다. 이것도 아직 열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그 밖의 일본요리 재료>


-고형 카레: 한국에서도 일본 고형 카레는 찾아보기 쉽지만 특정 브랜드 제품만 보이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주로 보는 브랜드 외에도 정말 많은 브랜드에서 다양한 고형 카레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 고형 크림스튜 소스: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스튜'요리에 대한 국민적인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크림스튜 소스 또한 카레 못지않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이 있었다.


-뭔가 알기 힘든 찌개 육수 소스: 실수로 비슷한 요리를 만드는 제품을 두 개나 사버렸다. 일종의 다시다 같은 것이려나? 고형과 젤형 두 가지를 사 왔다.


-쯔유

-가쓰오부시

-타코야키 소스

-오차즈케 가루

-밥에 뿌려먹는 조미 제품 몇 가지



오키나와 토속 요리 재료는 돈키호테에 잘 구비되어 있었고, 맥스 밸류는 일반 마트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할인 제품이 잘 정리되어 있어 선택을 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또한 국제거리의 맥스 밸류 2층에는 다이소가 있어서, 일본 그릇을 싼 값에(1000원~2000원 사이) 구입할 수 있었다. 도자기 거리가 있을 정도로 오키나와 도자기가 나름의 유명세를 갖고 있기는 해도 수제품은 가격이 워낙 비싸서 그리 마음에 끌리는 제품이 있지 않는 이상 쉽게 구매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이소에서는 달랐다. 아무런 고민 없이 마구잡이로 집어 담아도 2000엔을 채우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오키나와 국제거리 근처 다이소에서 산 그릇들. 200엔 짜리 하나 빼고 전부 균일가 108엔!






오늘 도전한 요리는 '비프 크림스튜'이다. 맥스 밸류에서 산 고형 크림스튜 소스를 사용하기로 했다. 실제로 사용해보니 '루(roux, 버터와 밀가루, 우유로 만드는 화이트소스)'와 약간의 염분, 다시다 맛이 짬뽕된 느낌의 재료였다. 요런 인스턴트 재료가 없다고 해도 충분히 버터, 밀가루, 우유만 있으면 크림스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참고한 레시피는 오키나와 여행 이후로 내가 한참 빠져 있는 유튜브의 'Cooking with dog' 채널의 '치킨과 뿌리채소로 만든 크림스튜' 레시피이다.



Cream Stew with Chicken and Root Vegetables (Recipe) l Cooking with dog

https://www.youtube.com/watch?v=gEcbLyb4cms&list=PLoVNPiL6Ea8zYSN0Vd23T3o_5TWRaAYuD&index=43


조심스럽지만 능숙하게 사랑스러운 팬케이크부터 복잡한 일본 라면까지 다양한 요리를 척척 만들어내는 친근한 셰프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매력점은 바로 호스트인 '프란시스'이다.


호스트이자 나래이터인 푸들 '프란시스'와 어떤 요리든 척척 만들어내는 '셰프'가 진행하는 'Cooking with dog'


셰프는 일본어로 첫인사와 마무리 인사만을 담당하고, 모든 영어 내레이션은 바로 이 회색 푸들, 프란시스가 맡는다. '하이. 아임 프란시스, 더 호-스트 오브 디스 쇼-, 쿠킹ㄱ 윗드 도그'라며 천연덕스럽게 쇼를 이끌어가는 일본어 억양의 내레이션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하이. 아임 프란시스, 더 호-스트 오브 디스 쇼-, 쿠킹ㄱ 윗드 도그'


일본인의 크림스튜 사랑은 같은 동양인인 한국인이 보기에 좀 유난스러운 데가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일본인들은 크림스튜를 먹기 시작한 걸까? 왜 일본의 어머니들은 된장국을 끓여내듯 크림스튜를 끓이게 된 걸까?


살짝 검색을 해보니, 일본에 크림스튜가 도입된 시점은 메이지 유신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크림스튜는 일본에서 '요쇼쿠 (yōshoku (洋食 western food))' 요리로 분류되는데, 요쇼쿠 요리는 식생활 전반에도 서구 문화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일본 민간에 도입시키고자 했던 메이지 정부의 노력을 바탕으로 일본에 정착하게 된 나름 유서가 깊은 요리이다. 이 분류 요리의 유명한 동기동창생으로는 한국에도 널리 퍼진 일본식 카레와 하이라이스, 돈가스, 카스텔라, 크로켓, 오므라이스 등이 있다. 크림스튜가 일본에서 이토록 잘 자리 잡은 음식이라면, 왜 카레는 한국의 식탁에 자연스럽게 정착했는데 크림스튜는 그러하지 못했는지 의아해질 정도이다.



일본인의 소울푸드, 비프 크림스튜를 만들어보자!



재료.


-고기류: 소고기나 닭고기가 잘 어울릴 것 같다. 나는 소고기를 선택. 자취생인지라 고기양이 풍족하지는 않다.

-채소류: 냉장고 사정을 검토한 뒤에 양파(1.5개)와 당근(1줄), 감자(3개), 샐러리(송송 썬 것 한 줌)를 넣기로 했다. 셰프는 여기에 연근과 터닙(turnip), 타로(taro)도 함께 넣었다.

-소금, 후추, 월계수 잎 한두 장

-크림스튜 스톡: 크림스튜 스톡이 없다면 동영상에서 셰프가 한 대로 직접 루를 만들 수 있다. 팬에 버터를 녹이고 동량의 밀가루를 조금씩 넣어 밀가루 향이 날아갈 때까지만 잘 볶은 뒤에 우유를 조금씩 부어가며 만들면 된다.

-우유 200~300ml



조리법.


1) 고기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소금 후추 간을 해둔다.



2) 준비한 채소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준비한다.



3) (1)의 고기에 밀가루를 솔솔 뿌리고 각각의 면을 밀가루로 살짝 코팅한다.



4) (3)의 고기를 올리브유를 두른 뜨거운 팬에 올려 겉면을 씨어링 해준다. 속까지 다 익힐 필요는 없다.



5) 고기를 팬에서 덜어내고, (4)의 팬을 될 수 있다면 그대로 사용하여 준비한 야채들을 넣고 감자가 반쯤 익을 때까지 볶는다.



6) (5)의 야채와 (4) 고기를 한 냄비에 넣고 살짝 볶다가 모든 재료를 충분히 덮을 정도로 물을 붓고 20분 정도 끓인다.


끓이기 전.



20분 간 끓인 후.





7) 이제 고형 스튜를 넣을 차례. 나는 4등분 한 것 중에서 1.5 조각을 썼다. 1조각이 1에서 1.5인분의 스튜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하니 재료의 양을 가늠한 후 취향껏 사용하면 된다.


만약 고형 스튜가 없다면 버터와 동량의 밀가루, 우유로 루를 만들어서 더하면 된다.





8) 고형 스튜를 넣었다면 야채가 모두 익을 때까지 5~10분 더 끓인다.





9) 이제 피날레로 우유를 넣을 차례. 우유 200ml를 냄비에 넣고 중약불로 끓이면서 농도를 맞춘다. 소금, 후추로 간하고 파슬리 등의 허브를 뿌린다.




고소하고 따끈따끈한 크림스튜 완성!




다이소에 산 그릇들을 냉큼 닦아서 한 상을 차려보았다.



크림 스튜는 분명 서양요리에 가까운데, 이렇게 일본 식기에 담아 밥과 반찬을 곁들여도 잘 어울려 든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일본인들이 크림스튜를 즐겨먹는 장면을 매체를 통해 몇 번 접해서일까?



1,2천 원짜리 인스턴트 크림수프 믹스와 비교하면 많이 미안할 정도의 맛이다. 우유 향이 고소하고 소고기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잘 익은 감자는 부드럽게 우유 향 속에서 바스러진다.



난생처음 해보는 일본 가정식 소꿉놀이의 메인 메뉴가 비프 크림스튜인 것이 썩 마음에 든다.





이타타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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