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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Jun 03. 2017

스웨덴 대사관저에서의 저녁식사와 스웨덴 요리 도전

더 많은 질문과 추억을 품고 돌아오다

인터넷에서 꾸준히 연재를 해본 것은 브런치가 처음, '작가'라는 이름을 목에 걸고 어떤 모임에 참석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만큼 이 '브런치X스터디 인 스웨덴, 스웨덴의 경험을 나누다'에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앗!'하고 소리를 지를 정도로 흥분했었다.



어떠한 모임이 있으면, 그 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각자의 목적을 품에 안고 약속 장소로 향하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맨 처음 '브런치X스터디 인 스웨덴' 모임에 대한 글을 읽고 기대한 것은 아무래도 '스웨덴 대사관저에서 제공하는 저녁식사'였다. 안 그래도 브런치에 요리에 대한 글을 연재하면서부터, 요리에 대해 알아가고 경험하는 것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이 내 안에서 자라나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느껴오던 차였다. 그냥 스웨덴 식당에 가는 것도 아니고 스웨덴 대사관에서 제공하는 저녁식사라니, 그 정통성(authenticity)이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딱딱하고 행정적인 대사관보다 더 사적이고 내밀한 '대사관저'에 손님으로 초청받는 것 또한 특별한 경험이 될 터였다. 대사관이라면 교환학생 비자를 얻기 위해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찾아간 것이 전부가 아니었던가. 마치 내가 폭탄 테러범 이기라도 한 양 보안검사를 받고, 불법체류라도 할 것인 양 인터뷰를 받아야 했던 차갑고 딱딱한 경험이 아닌, 구성원의 일부로서 존중받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귀중한 자리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기대가 부풀어오는 것을 누를 수가 없었다.


대사관에서의 저녁식사 외에, 답을 얻고픈 질문이 생겨난 것은 스웨덴에 대한 사전 공부를 하면서부터이다.


공부를 따로 하기 전까지, 스웨덴 하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은 피상적인 이미지들에 불과했다. 파랑과 노랑 국기, 그 색을 그대로 따온 이케아(IKEA)와 특유의 북유럽 스타일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이케아 하면 떠오르는 미트볼과 연어요리, 직접 생연어를 절여서 연어그라브락스를 만들어보았던 경험,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 추위, 눈과 침엽수림, 순록, 금발 장신의 전형적인 북유럽 백인의 이미지, 북유럽 인테리어, 깔끔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도자기 브랜드 로스트란드(Rörstrand), 스페인 출신의 Zara와는 어딘가 분위기가 다른 디자인의 H&M, 업무 시간 사이에 갖는다는 화합 파티 FIKA, 신사동의 FIKA라는 스웨덴식 카페에서 먹었던 달콤하고 폭신한 셈라, 복지국가, 무민과 삐삐의 고향, 카모메 식당, 시나몬롤 같은 이미지 등등... 마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 " 하는 식의 단편적인 이미지의 나열이 이어졌다.







위키피디아와 나무 위키, 신문기사 등을  통해 스웨덴에 대해 얼마간 공부를 하고 나서야, 스웨덴에 대한 초등학생급의 이해 수준을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전 공부를 통해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들은 아래와 같다.


- 출산율이 1.98명으로 선진국 중 매우 높은 수준, 이와 더불어 '라테 파파(카페라테를 한 손에, 아이를 한 손에 든 아버지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가족친화적인 문화가 있다.


- 국회의원 청렴도가 높고 국회의원의 수입은 국민 평균소득의 1.7배 밖에 되지 않는다.


- '북유럽의 독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알짜배기 제조 강국이다. 볼보(자동차 중장비), 일렉트로룩스(전자), 이케아(가구) 외에도 게임, 제약 분야에서도 선두적인 위치에 있는 국가이다.


- 소득 격차보다 자산 격차가 큰 나라이다. 의사 평균 월급이 최저시급 아르바이트생의 3배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평등성이 느껴지지만 상위 10%의 인구가 국가 부의 3/4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소득 평등의 색다른 이면이 느껴진다.


- 영어를 원활하게 구사하는 (막힘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인구가 무려 86%!


- 스웨덴어는 게르만 어족에 속하기 때문에 영어나 독일어와의 유사성이 크다.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라면 명사에 성별이 있지만 동사의 인칭 변화는 없다는 점이다! 동사의 인칭 변화가 없다는 점이 사실이라면, 독일어 및 다른 유럽어에 비해 외국어로서 배우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특유의 발음 체계가 외국어로 익히기에 매우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 스웨덴 사람들이 영어를 너무 잘하기 때문에 영어 대신 굳이 어렵게 스웨덴어를 배워서 이들과 소통할 필요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권리(freedom to roam)'이라는 것이 있어 어느 곳이어서 누구든 산책을 하고, 텐트를 치고, 베리류와 버섯류를 채취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사유지라 할지라도 예외는 없다.


-  최근 무슬림 이민자가 늘어 이민자가 총인구 비율의 20%에 이른 다문화 국가로 자리 잡았다. 무슬림 인구의 증가에 따른 특유의 사회문제도 이슈가 되고 있다.


스웨덴에 대한 지식들이 머릿속에 추가되자, 내가 이 모임에서 답을 얻고 싶은 질문도 한 가득 늘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스웨덴 사람들의 뛰어난 영어실력과 그 이유''스웨덴 사람들의 자녀 양육과 교육'에 관련한 것이었다. 마침 이 모임의 주제가 '스웨덴의 교육과 스웨덴으로의 유학'이라는 점을 알게 되자, 나는 이 질문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스웨덴 대사관저는 길상사 근처, 그중에서도 언덕이 높은 곳에 있었다. 하필이면 비가 많이 내려서 평소에 안 신던 구두를 신은 발이 미끄러워 찾아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훈훈한 기운이 감도는 대사관저에 발을 들인 순간, 스산한 기운에 떨던 몸이 온기에 녹듯 내 긴장도 녹아내렸다. 정말 오랜만의 파티 분위기였다. 기분 좋게 웅성거리는 소리와 웃음소리, 옅게 흘러나오는 음식 향기가 삽시간에 내 마음을 설레었다.



따뜻한 환대를 받고 들어선 응접실에서 창 밖을 보니, 스산한 봄비에 젖은 자연이 눈에 들어왔다. 방문객용 의자가 TV 앞에 3줄로 늘어서 있었다. 의자 맞은편에는 귀여운 컵케이크가 말없이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방문객이 모두 모이자,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안 회그룬드 대사님의 환영사로 스웨덴의 밤이 시작되었다. 밝은 미소와 유머가 방문객들의 긴장을 해제했다. 무엇보다 방문객들과 격식 없이 어울리고 음식이나 방문객이 앉을자리, 택시 등 실무 구석구석을 살피는 적극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한민국 대사를 외국에서 만났다면 아무래도 더 긴장하게 되지 않았을까?


대사님의 환영사 다음의 첫 연사는 우메오대학의 인지공학과 그레그 닐리 교수님이었다. 현직 대학 교수로서 스웨덴의 교육, 특히 고등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인으로서 스웨덴에 거의 정착하셨다고 하는데, 스웨덴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고 했다.


스웨덴의 대학교육에 대한 설명 중 흥미로웠던 점은 아래와 같다.


- 대부분의 대학교는 국가에 의해 관리, 운영된다. 사학도 일부 존재하지만 이들 또한 국가에서 정한 스케줄과 학과별 국가표준을 준수해야 한다.


- 한 학기 동안 여러 과목을 동시에 수강하고 6월 중순 즈음에 기말고사를 우수수 보면서 학기를 끝내는 우리나라의 학생들과는 달리, 스웨덴의 대학생들은 한 수업을 수 주에 걸쳐 압축적으로 듣고 끝낸 후, 다음 과목으로 넘어가는 형태로 한 학기를 보낸다. 주어진 기간 동안 한 가지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도가 빠르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따라잡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고도 한다.


- 스웨덴 대학의 수업 성적은 세 가지 등급 (Fail, Pass, Pass with Distinction)으로 나뉜다. 이렇듯 단순화된 절대평가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학생 수나 수준과는 관계없이 A+, A0, A- 등으로 세분화된 상대평가를 내려버리는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최소한 학점에 숨을 허덕이며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수업은 피해서 수강해야 하는 한국의 대학생들보다는 더 큰 자유를 누리리라.


- 스웨덴의 교수-학생 관계는 매우 수평적이다. 보통 한국인이 미국에 가면 반말/존댓말의 체계가 없고 교수에게 스스럼없이 '헬로'하는 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본디 미국인인 그레그 닐리 교수님이 오랜만에 미국 대학으로 돌아갔을 때의 경험담이 무척 재미있다. 바로 미국 학생들이 자신을 지나치게 깍듯이 대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레그 닐리 교수님의 강연이 어느 정도 끝날 무렵, 나는 피어오르는 질문에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질문의 기회가 오자마자 나는 놓치지 않고 질문하였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엄청난 경쟁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스웨덴의 고등학생들은 어떤 학창 시절을 보내고 어떻게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지", "한국의 진학 경쟁은 대학의 서열화가 뚜렷하기 때문인데 스웨덴의 대학은 어떠한지" 가 내 질문의 요점이었다.


교수님은 미국과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적절히 활용하여 나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주셨다. 스웨덴의 대학은 대학별로 특화된 분야가 있고 서열화가 한국이나 미국보다 덜 하기 때문에 진학에 대한 압박이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자신의 친구들만 보아도, 고등학생이 되면 어떤 대학교에 가야 할지, 성적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는 그 모습이 스웨덴의 삶에 익숙해진 자신에게는 영 딴 세상 같다고 한다.


언뜻 최근 이슈 중 하나인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연상시키는 대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대부분의 대학교육 기관이 국가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시스템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안일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수도권 과잉집중 현상으로 인해 서울에 위치한 국립대학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립대학이 수도권의 사립대학에 순위를 내어준지 수십 년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사립대를 포함한 거대한 시도를 시작하지 않는 이상 국립대만을 대상으로 하는 개혁은 사립대학교의 고삐를 풀어주는 역효과가 날 것이라 우려하는 입장이다.



두 번째 연사는 우메오대학에서 관광개발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에너도희져' 작가님이었다. 스웨덴에서의 유학 경험과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을 맛깔나게 정리해서 연재하고 있는 인기 브런치 작가이기도 하다.


앞서 그레그 닐리 교수님의 강연이 스웨덴의 대학교육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물꼬를 트는 것이었다면, 에너도희져님의 강연은 마치 내가 스웨덴에서 수학하는 학생이 되는 것인 양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에너도희져님은 스웨덴에서의 생활을 SWEDEN이라는 철자를 살려 S(Social trust, 사회적 신뢰), W(Winter, 겨울), E(Education, 교육), D(Diversity, 다양성), E(Equality, 평등), N(Nature, 자연)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Sweden이라는 단어로 키워드를 이끌어낸 재치도 재치이지만, 자신의 경험담을 맛깔나게 버무려 자신 있는 목소리로 진행하는 강연에서 진정성과 노련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겨울이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견딜만하다는 이야기, 실내체육이 발달하고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어울려 공부하는 대학 분위기, '라테 파파'로 대표되는 남녀평등과 곧 출산을 앞두고 평등한 역할 분담과 양육 계획을 위해 노력하는 에너도희저님의 친구 부부 이야기, 친구들과 산과 호수로 열매와 버섯을 따러 다니는 자연 속에서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내가 아직 학생이라면, 분명히 혹 했을 만한 매력적인 강연이었다.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긴 했지만 스웨덴에서 공부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직장에 뿌리박은 나 자신의 처지가 조금은 서러워진다.


마지막 연사는 우메오대학 산업디자인과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디자인 전공의 엄세현 씨였다. 디자인 전공인 그녀가 교환학생 국가로 스웨덴을 고른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충분히 이해할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디자인'하면 예쁜 것 나아가 편리한 것 정도를 생각하는 것에 반해, 스웨덴의 디자인 교육은 사용자를 위한 문제 해결과 인간성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왔다고 전했다.



세 가지의 유익한 강연이 끝나고,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저녁식사 시간이 돌아왔다. 저녁식사는 한국에서는 거의 경험해보지 못했던 '스탠딩 식사'로 이루어졌다.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다양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지 못하고 자리에 속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서 움직이면서 식사를 하며 자유롭게 교류하라는 대사관측의 배려였다. 이러한 배려에 나는 일백 프로 동의하였다. 덕분에 대사관 직원분들, 대사관 인턴 학생 및 한국으로 유학 온 스웨덴 학생들, 다양한 분야의 브런치 작가님들과 브런치 서비스 관계자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먹는 동안 나는 많은 경험을 했다. 내가 팔로우하고 있었던 브런치 작가님을 실제로 만나고 놀라기도 했고, 은막 뒤에서 브런치 서비스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브런치 서비스 관계자분들께 브런치 서비스에 관해 품고 있던 질문을 털어놓기도 했다.


음식은 훌륭했으며, 스웨덴의 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정갈하고 정성 들인 음식과 서비스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글의 서두에서 이 모임에 참석하기 전 몇 가지 질문을 품고 왔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스웨덴식 식사에 대한 궁금증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스웨덴의 교육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도 세 가지의 강연으로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풀지 못한 미스터리는 이제 단 한 가지. 스웨덴인들은 어찌 그렇게 영어를 잘하냐는 질문이었다. 파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이 질문을 묻기에 적절한 상대방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바로 스웨덴 대사관 인턴 대학생들이었다.


귀여운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스웨덴 대사관 인턴 학샏을.


먼저 그들에게 학교 영어수업이 어떠했는지 물었다. 10명 안팎의 소규모에 다양한 활동식 수업을 한다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대답은 의외였다. 20명 이상의 대규모 수업에 교사는 1명이라는 것이었다. 학교 영어 수업에 만족했냐고 물으니 또다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수업보다는 TV를 통해 영어를 더 많이 배웠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는 별로 재미가 없었지만 TV를 켜면 항상 영미권의 TV쇼와 드라마가 쉼 없이 방송되었는데, 이를 계속해서 보다 보니 영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영어가 다른 유럽어에 비해 쉽기 때문에 배우기가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람. TV를 보면 영어가 된다고?  스웨덴 사람들의 영어실력에 관한 질문은 해결되기는커녕 더 깊은 미궁 속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런 망언을 들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수년 전 교환학생 시절 만난 네덜란드 학생도, 영어를 너무 잘하길래 어찌 영어를 공부했냐 물어보니 TV로 배웠다는 말을 했었다. 자신이 워낙 TV를 좋아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막이 없는 프로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영어를 벗어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예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같이 꼬박꼬박 일본 애니메이션을 한 시간 이상 보고 학원에 갔던 일을 떠올려 본다. 따로 일본어를 배운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웬만한 문장은 들으면 적당히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주 나오는 간단한 문장들은 어느새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스웨덴 사람들의 영어실력에 관한 해답은 스웨덴어-영어 간의 언어적 유사성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론을 내려보았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단순히 TV를 많이 보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망언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이 일본어를 배우기 쉬운 것처럼, 스웨덴어를 쓰는 사람은 같은 게르만 어족에 속하는 영어를 배우기가 쉬울 것이다. 물론 언어적 유사성 외에 그들의 외국어 교육 방식에서도 반드시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스웨덴을 직접 방문해서 그 비결을 눈으로 관찰하고 싶다.







스웨덴 사람들과 스웨덴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한 작가님들을 만나 대사관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저녁식사를 먹은 소중한 경험에 대해, 감사를 표하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을 고민해 보았다. 결국, 요리 블로거라는 나의 정체성에 맞는 마무리가 가장 나답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는 스웨덴의 요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먼저, 저녁식사 테이블에 올라와 있었던 스웨덴 요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사관저에 차려진 다양한 요리들.






스웨덴의 대표 요리라 하면 '스웨디쉬 미트볼'을 빼놓을 수 없다. 이케아의 세계 진출과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스웨덴 요리로 자리매김하였기 때문이다. 스웨디쉬 미트볼을 먹을 때는 그레이비소스와 새콤한 링곤베리 잼, 매쉬드 포테이토를 빼놓을 수가 없다. 링곤베리 잼은 한국의 이케아에서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라브락스'또한 대표적인 스웨덴 요리이다. 생연어를 소금과 설탕 및 각종 허브에 숙성시키는 요리인데, 불필요한 수분이 빠져 더욱 쫀득해진 질감과 풍부한 향이 매력적인 요리이다.


나도 몇 해 전에 코스트코에서 연어 필렛을 통째로 사다가 그라브락스를 담가 본 적이 있다. 짠 음식을 잘 못 먹는지라 그때는 소금량을 원 레시피보다 줄여서 사용했다. 대사관저에서 맛본 그라브락스는 내가 만들었던 그라브락스보다 짠맛이 강했다.



'스웨디시 미트볼'이나 '그라브락스'는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요리이지만, 이번 만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는 아무래도 처음 먹어보는 요리였다. 위 사진의 Jansson's Temptation(Janssons frestelse, 얀손의 유혹)은 평범한 캐서롤처럼 보이지만 독특함이 숨어있다. 캐서롤 안에 비릿하면서도 담백한 안초비(Ansjovis)가 듬뿍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름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스웨덴의 안초비를 이탈리아의 안초비와 같은 것이라고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의 안초비는 멸치과의 생선을 절여서 만드는 데 반해, 스웨덴의 안초비는 sprat이라는 작은 청어를 절여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이탈리안 안초비와는 달리, 스웨덴의 안초비는 한국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이 요리를 만들기 위해 굳이 이케아까지 가서 스웨덴 안초비 통조림을 눈이 빠져라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안초비 외에 감자와 달걀, 우유가 들어가는 이 캐서롤은 고소하면서도 언뜻언뜻 느껴지는 바다향이 이채로웠다. 오븐만 있으면 장땡인 캐서롤 요리인만큼, 안초비만 어디서 구할 수 있으면 만들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키쉬 같은 느낌이 드는 파이 요리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 이름은 알지 못한다. 스웨덴의 전통요리에 달걀과 우유를 베이스로 한 타르트(파이 또는 푸딩이라고도 불림) 요리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비슷한 요리로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아스파라거스와 훈제연어 타르트(Sparrispaj med rökt lax) -출처: http://www.swedishfood.com
연어푸딩(laxpudding) -사진 출처: http://www.swedishfood.com





부드럽기가 일품인 스테이크 요리도 있었다.



맥주 맛도 기가 막혀서, 원래 식사할 때 맥주를 잘 곁들이지 않으면서도 맥주를 연이어 두 잔이나 마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인상 깊었던 Jansson's Temptation(Janssons frestelse, 얀손의 유혹)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스웨덴 안초비가 없는 얀손의 유혹은 만들어도 만든 것이 아니다 싶어서 다른 요리로 선회하였다.


내가 도전한 요리는 '연어 푸딩(lax pudding)'이다. 오븐만 있다면 라면 만들기만큼 쉬운 요리이다. 한 번 만들 때 많이 만들어두면, 가족 여럿이서 이틀 남짓은 두고두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재료.


베이킹이 아니라 단순한 캐서롤 요리인지라 재료의 계량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나도 원 레시피로 비율만 대충 가늠하고 내 맘대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Wilton 브라우니 팬을 사용했는데, 본인이 사용할 팬이 이보다 크거나 작다면 적당히 재료의 양을 가감하면 된다.


- 훈제 연어나 그라브락스 200g (나는 통연어 스테이크 한 캔, 단백질이 많은 것이 좋다면 취향껏 더하면 된다)

그렇다. 원래는 통조림 따위가 아니라 말랑한 훈제 연어나 향긋한 그라브락스를 층을 이루어 쌓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자취생의 냉장고에 훈제연어처럼 고급스러운 재료가 존재할 리가 없다. 마침 홈플러스에서 한 캔에 천 원 하는 연어 통조림을 여럿 사두었었다. "어차피 익으면 다 똑같은 거야~"라고 합리화를 완벽히 한 후, 요리를 시작했다.


-슬라이스 한 감자 두 컵~세 컵

-잘게 썬 양파 반 개 (큰 양파 기준. 작은 양파라면 한 알)

-달걀 2개

-우유 1.2컵(원래는 우유와 크림을 2:1의 비율로 섞어서 만들어야 하지만, 저지방 우유를 써도 충분히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났다)

-버터 1 테이블스푼 이상

-소금, 후추

-딜(dill, 생허브일수록,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자취생에게 생허브란 그저 화면 너머의 존대이다..)



요리법.


1) 달걀, 우유, 소금, 후추를 잘 섞는다.



2) 오븐에 넣을 팬 안쪽에 버터를 발라 코팅하고 감자, 양파, 연어 순으로 쌓아 올린다. 본인이 원하는 높이까지 층이 올라왔다면 맨 위층은 감자로 덮어준다.



3) (2)의 재료에 (1)의 커스터드를 붓는다.



4) 허브를 뿌리고 필요하다면 소금,  후추 간을 더 한 다음에



5) 치즈나 빵가루를 올린다.



6)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 30분~40분 정도 익힌다. 표면이 노릇하게 익었다면 꺼내도 좋다.



락스 푸딩 완성! 집에서 담근 피클을 곁들여 저녁식사로 먹었다.



이케아에 스웨덴 안초비를 사러 갔다가 사려던 안초비는 못하고 귀여운 회색 접시를 사 왔다. 이것 말고도 연두색 접시, 유리접시, 밀크팬, 각종 테이블 매트에 4만 원 정도를 털려서 돌아오고 말았다.



크림 없이 우유와 달걀로만 캐서롤을 만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오히려 이 편이 덜 기름져서 담백한 요리를 선호하는 내 입맛에 꼭 맞았다.



우유와 달걀로 이루어진 커스터드는 푸딩처럼 부드럽고 고소한데, 감자 특유의 식감과 훈제 연어 향이 어우러져 낯설지만 호감이 가는 조화를 이룬다.



스웨덴 대사관저의 저녁식사에서 맛본 '얀손의 유혹'을 집에서 만들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락스푸딩도 충분히 새롭고 매력적이다.




다음날은 주말이라서, 더욱 여유롭게 락스푸딩을 맛볼 수 있었다. 주말 아침에는 배가 고프니까 전날 저녁과는 달리 푸짐하게 차려먹었다.








스웨덴에 대한 뜻깊은 기억과 추억을 선사해주신 스웨덴 대사관과 브런치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포스팅이 늦어진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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