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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Apr 24. 2017

다이어트와 치킨의 양립 가능성

꼬깔콘으로 만드는 오븐에 구운 치킨

브런치에 요리에 관련한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왕왕 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렇고 요리를 하는 것도 그렇다. 요리를 하는 것 자체보다도, 지저분한 부엌을 정리하고 새로운 요리의 레시피 동영상 끊임없이 되돌려 보며 사진을 찍으며 요리하는 것이 사실 좀 부담스럽다. 가끔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요리를 하고 싶은데,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과 브런치에 글을 쓸 만한 재료를 얻고 싶은 욕망이 뒤엉켜서 상당한 결심을 하고 조리대 앞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글 쓸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자유롭게 요리를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어떤 요리이든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고, 나의 경험과 생각을 남들과 나누는 일에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지금의 상황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요리든 글이든 아직 어설픈 구석이 많지만, 내가 만든 요리 사진을 넣은 글을 한  완성하는 데에 나름의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아무리 맛있는 요리를 해도, 그것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면 뭔가 완성이 되지 않은 듯한 아쉬운 느낌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의 요리는 위에서 언급한 이런저런 사정을 생각해 보았을 때, 예전의 자유로운 마음을 살려서 만든 요리라고 볼 수 있다. 참고한 레시피도 없고 순전히 여지껏의 요리 경험으로 체득한 직감(gut feeling)으로 만들어낸 요리이다. 만들게 된 상황도 즉흥적이며 처음에는 브런치에 올릴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리과정을 사진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생각지도 않게 결과물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한번 같은 요리를 만들면서 요리과정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이 요리를 만들게 된 날, 나는 무척 치킨이 먹고 싶었다. 치킨, 치킨, 치킨, 노래를 부르며 퇴근을 하는 길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과자가 먹고 싶어서 편의점에 가서 2+1으로 꼬깔콘 두 개와 치토스 하나를 샀다. 치토스가 당기다니, 그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나는 매달 주기적으로 치토스를 먹는 시기가 있다. 여성들은 누구든 겪는 바로 그 시기. 치킨과 과자가 왜 퇴근길의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과자를 세 봉지나 끌어안고 집에 도착하기는 했는데, 나는 여전히 치킨이 먹고 싶었으며, 동시에 꼬깔콘도 먹고 싶었다. 그 순간 섬광처럼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 하나. 


'오븐으로 꼬깔콘 치킨을 만들자!'


그때부터 치킨 생각이 너무 간절해져서, 식탁을 깨끗이 치우고 촬영 준비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바로 꼬깔콘 치킨 만들기에 착수했다. 다시 말하지만 아래의 요리과정 사진은 순전히 두 번째 꼬깔콘 치킨을 만들 때 촬영한 것이다.



재료.


-꼬깔콘 1 봉 (고소한 맛이나 군옥수수맛 추천!)

-닭가슴살 2개

-달걀 1알

-밀가루 약간

-소금 후추 약간


[허니 머스터드소스 재료]

-디종 머스터드 약간

-꿀 약간

-레몬즙 약간


재료 분량이 '약간' 투성이인 것은 실제로 계량은 전혀 하지 않고 직감과 기분에 근거해서 요리했기 때문이다.

꼬깔콘이 모자라면 2+1으로 산 나머지 한 봉을 뜯으면 되는 것이고 달걀이 모자라면 한 알을 더 풀고, 밀가루가 모자라면 조금 더 덜어내면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손 가는 대로 만들면 되는 요리이다.



조리법.


1) 닭가슴살은 치킨 핑거 사이즈로 가늘고 길게 자른다. 소금 후추 간을 해둔다.


덩어리가 작을수록 더 바삭한 치킨이 된다.



2) 밀가루, 달걀물, 지퍼백에 넣고 부순 꼬깔콘을 접시에 담아 늘어놓는다. 밀가루-달걀-꼬깔콘 순으로 닭가슴살에 묻힌다.



3) 오일을 살짝 발라 코팅한 오븐 팬에 (2)의 닭가슴살을 늘어놓고 180도~19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익힌다.

얼마나 익혀야 하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도가 너무 뜨거워서 꼬깔콘이 탄다 싶으면 온도를 170도 근방까지 낮추었고, 그러다가도 빨리 익지 않는다 싶으면 다시 온도를 높였다. 치킨과 함께 먹을 야채를 다듬으면서 간간히 잘 익었다 지켜보면 된다.



4) 먹음직스러운 갈색빛이 돌 정도로 노릇하게 익었다면 오븐에서 꺼낸다.


사실 오일을 발랐다고 해도 닭가슴살이 오븐 팬에서 깨끗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성급하게 떼내다 보면 가장 맛있는 바삭바삭한 꼬깔콘 부위가 팬에 눌어붙어 닭가슴살과 분리되고 만다. 고소한 꼬깔콘을 조금이라도 잃지 않으려면 닭가슴살을 팬에서 떼내는 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븐에서 구운 꼬깔콘 치킨 완성! 


위의 사진은 처음 만들어 먹었던 날의 꼬깔콘 치킨이다.



원래 치킨을 먹을 때 깨끗하고 순정한 마음으로 치킨을 올곧게 대하지 못하고, 기름기를 키친타월로 닦아내거나 눈물을 흘리며 맛있는 껍질을 조금씩 벗겨서 남들에게 양보하는 못난 인간이 바로 나란 인간이다.


이 꼬깔콘 치킨은 바삭하고 고소한 껍질을 벗겨내는 고뇌의 순간을 맞이할 일이 없어서 너무나도 만족스럽다. 기름에 튀긴 것도 아니고, 기름이라면 팬을 코팅할 때 썼던 약간의 기름과 꼬깔콘 자체의 기름뿐이다.



꼬깔콘 그 자체만 해도 맛있는데, 오븐에 구우니 그 고소한 맛이 수십 배는 증폭되는 것 같다. 더욱 바삭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곁들인 허니 머스터드소스와도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엄넘넘....



두 번째로 만들 때는 손님이 있어서 닭가슴살을 4개나 썼다. 접시에 담긴 것은 그중에 예쁘고 잘난 놈만을 골라 담은 것이다.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뻗쳐서 늘어놓으니 오징어 다리를 튀겨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닭가슴살 네 개 정도 분량이라면 꼬깔콘을 1.5~2 봉지는 써야 한다.



꼬깔콘을 먹는 것보다는 이렇게 치킨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몸에 더 좋지 않나 생각해본다. 원리는 이렇다.


꼬깔콘 한 봉지를 그 자리에서 해치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퇴근길에 지하철을 타는 15분 남짓한 시간 안에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허기가 채워질 리는 없다. 오히려 어중간하게 느껴지는 포만감에 건강에 좋지 않다는 죄책감이 더해서 기분이 나빠질 뿐이다.


꼬깔꼰 치킨은 어떠한가? 고소함이 배가된 꼬깔콘의 맛을 즐기면서도 치킨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이다. 단백질을 섭취함으로써 칼로리 대비 높은 포만감을 주는 것도 장점이다. 결론은 어차피 한 봉지 뚝딱할 운명이었던 꼬깔콘이, 이렇게 훌륭한 한 끼 식사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다이어트와 치킨은 양립 가능하다. 꼬깔콘 치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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