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방에다 글을 질러놓았다.
중요한 건, 어디에 싸질렀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나의 찌꺼기로서 생을 마감한 글자들에게 사죄하는 바이다.
이제는 브런치스토리를 제자리삼아 차곡차곡 정리하려고 한다.
내가 12살이 되자 국민학교는 초등학교가 되었다.
아, 이제는 국민이라서 다니는게 아니라 기초실력을 쌓기 위해 학교를 다녀야 하는구나.
나는 피아노를 그만두는 대신 성적에 도움이 되는 백일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문해력과 논술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진 않았다. 한자가 기본과목으로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때 한자를 잘 익혀둔게 지금까지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좋은 기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학보사 면접을 봤다.
합격을 시켜준 이유가 비인기부서에 지원해서인지 정말 그럴싸한 기사를 내서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을 시작으로 '흰종이 위의 선들'에 지나지 않았던 글이 나와 꽤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학보사 출신이라고 하면 사회에서도 어드벤티지를 주었다. 졸업 후 출신빨로 작은 방송국의 방송작가가 되었고, 여러 여행웹진에 정기적으로 글을 납품(?)하는 기자가 되었다가, 마케팅 회사의 카피라이터로도 취직했고, 닷컴들의 웹기획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결혼을 했고, 시간이 흘러 임신5개월이 지날 때쯤 새벽 2시에 회사 문을 잠그며 퇴근한 그날을 마지막으로, 짧은 경제활동은 막을 내렸다. 2008년 4월이었다.
2024년, 막내딸을 유치원에 입학시키면서 나와 남편은 유초중고생이 골고루 분포된 6인 가정을 이룩하였다.
16년이라는 터널을 통과했을 뿐인데 키가 약 3센치 작아졌고 무려 네 명의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중이다.
나는 네 아이의 엄마다.
그 아이들은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으로서 집을 중심으로 각자 동서남북으로 등하교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전업주부로서 이 동네에서만큼은 세상다양한 종족들과 소통하고 있고,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경제적 문화적 수준을 저울질하며 살아가고 있다.
막내가 유치원에 입학했으니 이제는 내 할 일을 찾아보고 싶었다. 경제활동이나, 경제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자기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급하게 세운 계획들은 연이어 실패(포기)했고, 지금은 많은 걸 내려놓고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장기적인 플랜을 짜려는 단계에 있다. 대체 왜 이러고 사는지 체념도 했었지만 실패를 경험하며 얻은 것도 꽤 많았다.
잔재주라고 하기에는 소중한 서예, 글씨, 캘리그라피가 그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아차리게 해주었고, 운좋게 글씨에도 소질이 있다는 것까지 얻어걸린 것이다.
글이란 것은 남 보라고 쓰는 것이다.
일기가 아니라면, 내가 쓴 글의 목적을 남이 달성해줘야 하는 것이다. 편지는 심금을 울려야 제맛이고, 광고카피는 고객을 낚아야 한다. 기획서는 현실로 이룩되어야 하고 출간한 책은 입소문을 타야 한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좋은 글이란 작문실력에 영업력을 더해, 보는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하게 하는데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손글씨가 영업사원이 되어 큰 역할을 해준다.
나는 이제 내 소중한 글과 글씨를 불특정다수에게 퍼뜨리는 찌꺼기가 아닌, 선택된 이들에게 선물하는 응원으로 쓰고 싶다. 응원은 힘이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겐 다짐이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사과 또는 용서가, 혹은 용기가 되고 고백이 될 것이다.
첫글 기념 일단 한번 질러보는 소개글:
반갑습니다. 브런치에 첫 글을 쓰게 된 청유입니다. 글씨세계에선 선생님이라고 불러줍니다. 누굴 가르쳐본 적이 없는데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저도 왜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끔 공모전에서 상을 타오는데, 거기선 작가님이라고도 해주시네요. 학부모 그룹에선 누구 엄마라고 부르고요, 성당에선 자매님이라고 하고 남편은 여보라고 부르고.. 가끔 고객님이라고 불러주는 데도 많습니다. 아들이 한달 사이 폰을 세개나 해먹어서 얼마 전에 삼성서비스센터에 갔는데 VIP고객님이 되었죠.
여러분도 인간 홍길동보다는 누구의 어떤 사람으로서 더 많은 역할을 부여받았을 겁니다. 어딜가나 사람사는거 다 똑같지요.(라고 하지만 내가 제일 못난 것 같은-이것조차 다 똑같음) 그래서 일상의 이야기에 붙어있는 살점들이 내 살갗 같고 공감이 가고 함께 슬프거나 기쁘고(=질투나고) 그럴거예요. 어느누구나 누구의 어떤 사람이기 때문에요.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신혼 때 서울에 살다 식구가 불어 예산에 맞추고자 경기도로 온 건데, 아이가 넷인데다 연령이 다양해 아마 이 동네에서 제가 제일 발이 클 겁니다.
뭐, 크게 다를까요? 여러분과 저의 삶이, 살고 있으니 사는 거고 그렇게 됐으니 그런겁니다. 어차피 그렇게 저렇게 흘러가는 세상을, 그저 글로써 예쁘게 치장하며 사려는 것뿐이랍니다. 아무쪼록 제가 드리는 글에서 삶의 영감을 받을 수 있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