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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Sep 15. 2024

소리 지르는 나의 글

오늘도 사방에다 글을 질러놓는다.

중요한 건, 어디에 싸질렀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나의 찌꺼기로서 생을 마감한 글자들에게 사죄하는 바이다.




내가 12살이 되자 국민학교는 초등학교가 되었다.

아, 이제 국민인지 외국민인지간에 기초실력을 쌓기 위해 학교를 다녀야 하는구나.

나는 피아노를 그만두는 대신 성적에 도움이 되는 백일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문해력과 논술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진 않았다. 한자가 기본과목으로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때 (좋은 성적만을 위해) 한자를 잘 익혀둔게, 지금까지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최고의 기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역사를 잊은 이에게 미래는 없다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학보사 면접을 봤다.

합격을 시켜준 이유가 비인기부서에 지원해서인지 정말 그럴싸한 기사를 내서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한자성적이 좋아서인가?) 어쨌든 그것을 시작으로 '흰종이 위에 있는 어떤 흘김'에 지나지 않았던 이 나와 꽤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학보사 출신이라고 하면 사회에서도 어드벤티지를 주었다. 졸업 후 나는 출신빨로 작은 방송국의 방송작가가 되었고, 여러 여행웹진에 정기적으로 글을 납품(?)하는 기자가 되었다가, 닷컴들의 웹기획서를 작성해 주었으며, 마케팅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취직했다. 

결혼을 했고, 시간이 흘러 임신5개월이 지나갈 때쯤 새벽2시에 회사 문을 잠그며 퇴근한 그날을 마지막으로, 짧은 경제활동은 막을 내렸다. 2008년 4월이었다.


2024년, 막내딸을 유치원에 입학시키면서 나와 남편은 유초중고생이 골고루 분포된 가정을 이룩하였다.

16년이라는 터널을 통과했을 뿐인데 키가 약 3센치 작아졌고 무려 네 명의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중이다.

나는 네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그 아이들은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으로서 집을 중심으로 각자 동서남북으로 등하교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전업주부로서 이 동네에서만큼은 세상다양한 종족들과 소통하고 있고, 그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경제적 문화적 수준을 저울질하며 살아가고 있다.

막내가 유치원에 입학했으니 이제는 재테크라던지 경제활동을 해야만 한다. 아등바등 급하게 세운 계획들은 당연한 듯 이미 연이어 실패(포기)했고, 지금의 상태라 하자면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히 돌아보자'의 전단계인 '나는 대체 왜이러고 사는거냐'단계에 있다고 보인다.


1. 이제 다시 시작이야! 화이팅! 시작 단계

2. 생각보다 잘 안되지만 노력해보자! 투지 단계

3. 방향을 조금 바꿔볼까? 실험 단계

4. 아예 다른 일을 찾으면 잘 될거야! 재정비 단계

5. 2~4가 여러번 반복되는 혼란 단계

6. 안되는 일일수도 있구나.. 낙담 단계

7. 나는 왜이러고 살지? 체념 단계

8. 마음을 내려놓으니 길이 조금 보이는 희망 단계

9가 올까요?


하지만 5를 경험하며 얻은 것도 많이 있었다.

잔재주라고 하기에는 소중한 서예, 글씨, 캘리그라피가 그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아차리게 해주었고, 운좋게 글씨에도 소질이 있다는 것까지 얻어걸린 것이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려고 한다


글이란 것은 남 보라고 쓰는 것이다.

자물쇠 채워두고 나 혼자만 들춰보는 일기가 아니라면, 내가 쓴 글의 목적을 남이 달성해줘야 하는 것이다. 편지는 심금을 울려야 제맛이고, 광고카피는 고객을 낚아야 한다. 기획서는 현실로 이룩되어야 하고 출간한 책은 입소문을 타야 한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좋은 글이란 것은 작문실력에 영업력을 더해, 보는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하게 하는데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손글씨가 영업사원이 되어 큰 역할을 해준다.


나는 이제 내 소중한 글과 글씨를 불특정다수에게 퍼뜨리는 찌꺼기가 아닌, 선택된 이들에게 선물하는 응원으로 쓰고 싶다. 응원은 힘이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겐 다짐이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사과 또는 용서가, 혹은 용기가 되고 고백이 될 것이다.



공개될지 말지 모르지만 일단 한번 질러보는 소개글: 

반갑습니다. 브런치에 첫 글을 쓰게 된 청유입니다. 글씨세계에선 선생님이라고 불러줍니다. 누굴 가르쳐본 적이 없는데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저도 왜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끔 공모전에서 상을 타오는데, 거기선 작가님이라고도 해주시네요. 학부모 그룹에선 누구 엄마라고 부르고요, 성당에선 자매님이라고 하고 남편은 여보라고 부르고.. 가끔 고객님이라고 불러주는 데도 많습니다. 아들이 한달 사이 폰을 세개나 해먹어서 얼마 전에 삼성서비스센터에 갔는데 VIP고객님이 되었죠.

여러분도 인간 홍길동보다는 누구의 어떤 사람으로서 더 많은 역할을 부여받았을 겁니다. 어딜가나 사람사는거 다 똑같지요.(라고 하지만 내가 제일 못난 것 같은-이것조차 다 똑같음) 그래서 일상의 이야기에 붙어있는 살점들이 내 살갗 같고 공감이 가고 함께 슬프거나 기쁘고(=질투나고) 그럴거예요. 어느누구나 누구의 어떤 사람이기 때문이죠.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신혼 때 서울에 살다 식구가 불어 예산에 맞추고자 경기도로 온 건데, 아이가 넷인데다 연령이 다양해 아마 이 동네에서 제가 제일 발이 클 겁니다. 

뭐, 크게 다를까요? 여러분과 저의 삶이, 살고 있으니 사는 거고 그렇게 됐으니 그런겁니다. 어차피 그렇게 저렇게 흘러가는 세상을, 그저 글로써 예쁘게 치장하며 사려는 것뿐이랍니다. 아무쪼록 제가 드리는 글에서 삶의 영감을 받을 수 있길 바라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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