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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Sep 24. 2024

딸 방정리 급여 계산 좀...

얼마 전에 중고생 딸 둘이서 같이 쓰는 방에서 바바바.. 바.. 바.. 바퀴벌레가 나왔다.

청소를 안 해서라고 단정 할 순 없지만, 먹다 남은 음식이 늘 있었고 물건들이 쌓여있어서 벌레가 나올 틈이 많아 보였다.


나는 청소에 약간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잔소리는 따로 할지라도 가끔 내가 직접 아이들 방을 뒤집어엎는 식으로 청소를 대행해 줬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하면서 내 만족 하에 그냥 했다.


가끔은 아이들이 잘 보이는 곳에 경고문을 붙이기도 했었다.

0월 0일까지 청소 안 할 시 벌금 만원


경고문에 대한 반발은 항상 있었다.

"나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

나의 비난도 항상 뒤따랐다.

"그래? 그럼 너네 더럽고 냄새나니까 가까이 오지 마."

그래서인지 못내(?) 기한 내로 미션을 끝내곤 했다.


청소를 싫어하거나 왜 필요한지 모르는 아이들이 꽤 많다.

발 디딜 곳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공간의 정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줘도 아이들에겐 추상적일 뿐이다.

그래서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라면, 꼭 필요한 개념은 이해가 아니라 주입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가 있는데 그래줄래? X

이래서 저래서 그래야 돼 △

해 O


뭐, 민주적인 요즘 육아스타일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주입되다 보면 싫으나 좋으나 습관이 되고 말 것이다.


클 만큼 큰 우리 들을 겪어보니 이미 지저분함이 익숙해졌다 해도 고칠 수는 있었다. 다만 조금 돌아가긴 해야 했다.

이러나저러나 가장 큰 효과를 본 건 '보상'이었다.

잘못하면 벌, 잘하면 보상을 준다는 건 아주 단순한 규칙인데 그 쉬운 걸 체계적으로 운용하는 데에는 사실 어려움이 많다. 가장 어려운 점은 보상의 기준이 자녀와 내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나름의 밀당전략으로 싸워보고는 있지만, 양 쪽에게 다 만족스러운 결론이 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엄마: 기간 내 청소 불이행 시 벌금 만원

딸: 내가 쓰는 방인데 웬 참견이셔?


딸: 기간 내 청소 이행시 용돈 만원

엄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에 웬 보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전적 딜은 논리가 통하지 않을 때 최고의 차선책이었다.


"방이 너무 더러우니까 청소해"

"안 더러운데요?"

"해. 주말까지 시간 줄게. 안 하면 만원 벌금 있음"

"아 왜! 싫어."

"지저분하잖아. ."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더러워요."

"됐고, 방 청소 잘하면 니가 갖고 싶었던 베개커버 사줄게."

"그럼 이불도 세트로 사주면 청소할게"

"그럴 순 없어. 대신 두 달 동안 깨끗하게 유지한다면 이불도 고려해 볼게."

"치사하다."


치사해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더 들어가진 말자. 주도권이 엄마에게 있었다는 것에 집중하자.

안 하면 벌금 만원, 하면 베개커버 교체, 두 달 유지 시 이불 추가. 협상에 성공했다.



방정리에 대한 의견충돌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나는 방법을 조금씩 바꾸면서 청소를 하게끔 만들어야 했다.

한번은 숙제를 놔두고 등교한 딸에게 다급한 구조요청이 왔는데, 그걸 빌미로 방청소계획안을 받아낸 적도 있었다. 청소를 주제로 시시콜콜한 편지를 쓰다가 왠지 구차해 보여서 쪽지로 대체해 붙여두기도 했다. 어쩐 일로 스스로 정리를 할 때면 '인생네컷 이렇게 쌓아두지 말고 앨범이라도 사'라는 핑계로 용돈을 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분위기 따라 상황 따라 적절하게 정리요구를 들이밀었다. 점점 잘 먹히는 건 내 스킬도 늘어났음이라..


https://brunch.co.kr/@ylemn/14


방정리가 필요한 이유

방의 정리상태가 곧 방주인의 정신상태라는 것은 여러 연구와 논문⑴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내가 어수선해서 방이 지저분하기보다는, 지저분한 방을 방치하면 내 정신이 어수선해진다는 순서로 설명해주고 있다.

정신이 여유로워지면 방을 정리하겠다? 그게 성사될 일은 거의 없다. 방 정리가 돼야 내 정신도 정리를 시작할 수 있다.

더 이상 공간이 없다? 아니, 정리를 위해 새 선반을 구매했으나 정리가 끝난 뒤 새 선반만큼의 공간이 또 생긴 일을 많이 겪어봤을 것이다.

정리할 시간이 없다? 가장 형편없는 변명이다. 정리가 안돼있어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훨씬 더 많다. 지저분한 책상 위에서 펜슬을 찾아 헤매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렇듯 정리는 나의 대기전력이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필수불가결한 행동이다. 이를테면 시간과 돈, 내 정신머리 등을 말이다.


이런 이론을 토대로 설득이 가능한 자녀가 있다면... 정말 부럽다.

그보다 앞서 스스로 깨닫고 행하는 아이가 있다면... 있다면... 있나요?



⑴ UCLA <Home Organization Project (HOP)>2009, 린스턴 대학 신경과학 <시각적 자극과 뇌의 처리 용량에 대한 연구>2011, Journal of Neuroscience 2011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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