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등불과도 같은 수많은 명언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깨달음의 기회이다.
그 등불의 밝기에 따라, 앞길의 전부를 조망할 수도 혹은 발치의 흙 한 줌만 겨우 가늠할 수도 있다. 불완전한 혜안 속에서 등불로 삼고자 했던 인생의 진리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얼마나 오래" 깨우치게 했는가.
우리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존재하는 물질을 영위하고 또는 그것으로 생명을 꾸려가지만 과연 그것이 나를 세상에 연결시켜 함께 세월을 쌓아가는 것인지는 냉정히 따져볼 일이다. 같은 맥락으로, 대대손손 리메이크를 거듭하며 세상을 돌아다니는 진리들이 그대들의 안에 정착한 것이 아니라 정거장에서 떠나버린 버스와 같다면 그것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실재하는 것들은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유일한 공통점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수명이 다하면 썩고, 무너진다. 그 과정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이 곧 "실재"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 자체가 영원할 수 없으리라. 결국,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을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내가 필사를 위해 매일매일 찾아내는 명언 같은 것들. 그것은 계속해서 나를 만든다. 우리가 따르려는 인생의 진리가 사실은 역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나의 등불이 되어준 진리와 명언들은, 실재하지 않으나 어디에든 존재하며 실체있지 않으나 어디로든 움직인다.
드라마는 픽션에서조차 이야기한다.
"마음이 제일 중요해."
이 허상의 진리를 실재와 이어주는 것은 지혜와 가르침일 것이다. 삶을 아는 스승이 있어도 가르침이 없다면 스승이 아닌 것이고, 가르침이 있어도 깨달음이 없다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또한 깨달음이 있어도 행하지 않는다면 깨달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진리란 마치 공기와 같아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법이다. (법? 그러고보니 대한민국의 법 역시 그러하다. 요새는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우리가 깨달음 없이 살아가더라도, 그 진리들은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며 때로는 인생의 등불로, 때로는 내면의 지침서로서 우리를 이끈다. 실재하는 것들이 수명의 끝을 향할 때, 존재하는 깨달음은 더욱 농익어 우리 안에 살아있는 것이다.
내 힘으로 움켜쥘 수 있는 것들은 내가 아껴줘야 맥을 이어간다. 이리도 일방적일 수 있는가. 하지만 그 뒤에선 실체 없는 인생의 진리가 늘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음을 돌아본다. 보고자 하면 보인다. 그저 문득 뒤를 돌아보라. 영원할 그것이 뒤를 봐주고 있으니. 내가 할 일은 그저, 깨달은 바를 행하는 것.
그리고 이쯤에서 중대한 사실 하나를 투척해본다. 실체없이 존재하는 많은 것들 중 가장 냉정한, 그렇지만 우주를 통틀어 가장 정확하고 공평한, 그리고 실재하는 형물의 성장과 수명을 관장하는 것.. 존재의 우두머리, 그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사실. 그것은 영원할 것이며, 실재함으로 인해 소멸을 앞둔 내가 가장 존경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