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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리 Jun 02. 2023

두바이에서 산 것들

에르메스 스카프랑 프로틴 과자를 샀다

거의 삼 년 만에 비행기를 탔다. 출장이기는 하지만 외국인으로 둘러싸인 새로운 환경에 간다는 것은 늘 설레는 일이다. 이번 여정에서는 무엇을 보고 (사고)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기대 속에서 두바이에 도착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어쩌면 단순한 것 일지도 | 에르메스


에르메스에 청바지를 입고 들어가도 될까?

두바이몰에 도착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잠시 번쩍번쩍한 몰에 들어가자 괜히 보세 가방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괜히 명품 매장에서 무시를 당했다는 인터넷 썰들도 생각이 났다. 그렇게 쭈뼛쭈뼛 엄마 선물을 사기 위해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머쓱할 정도로 직원은 친절했다. 친절한 인사는 기본이고 귀 기울이며 제품을 추천해 주고 엄마 마음에 드는지 전화를 하고 고민하는 동안에도 눈치는커녕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기다려주었다. 오히려 직접 스카프를 매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대화하는 과정에서 차림이나 나이에 따라 차별하는 어떠한 말이나 제스처도 하지 않는다는 점도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그 과정이 어찌나 매끄럽던지 정신을 차려보니 30분 후에는 쇼핑백을 들고 매장을 나오고 있었다. 명품 매장에서 그 정도야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소비 금액이 커도 불친절한 직원은 있다. 소비를 할 때 유쾌한 경험만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신기하게도 두바이에서는 소비자로서 유쾌한 경험이 많았다. (소비 금액이 크던 작던) 그리고 그 경험을 관통하는 건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친절한 인사, 기분 좋은 대화, 겉모습이나 나이, 성별, 인종에 따라 차별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것 같은 것들. 관광지에서 이런 것들을 만나기 얼마나 어려운 지 알기에 새삼 더 신기했다. 이렇게 소비자가 원하는 건 어쩌면 굉장히 단순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본적이고 단순한 걸 제공하지 못하는 회사가 많고. 나도 앞으로 일을 하며 이 순간들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별 것 아닌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일수록.

아무튼 그래서 70만 원짜리 스카프를 질렀다는 소리...


실수보다 중요한 건 | 터키쉬 티 


그렇게 기분 좋게 스카프를 구매하고는 동행이 있는 터키 디저트 전문점으로 향했다. 동행에 비해 조금 늦게 도착한 터라 가볍게 차 한잔만 추가로 주문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차가 나오지 않았다. 오랜만의 해외라 들떠있는 데다가 곧 두바이 분수쇼를 보러 가야 하기에 별생각 없이 직원분에게 주문이 잘 들어갔는지 확인을 요청하며 안 들어간 거면 괜찮으니 그냥 취소하고 일어서겠다고 말했다.

사과의 의미로 직원이 내어준 차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이 와서는, 주문이 안 들어가 미안하다며 사과의 의미로 무료로 차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저녁을 먹으러 갈 거라 그냥 주문을 취소해 달라고 했는데도 작은 사과의 의미이니 꼭 받아달라며 달달한 터키쉬 딜라이트와 함께 차를 내어줬다. 그리고 내어준 차는 정말로 꼭 내 취향이었다. 결국 나올 때에는 마신 차를 한 통 구매하고 나왔다. 


이전에 서비스 실패에 대해 배울 때, 서비스가 실패하더라도 그 회복 노력에 따라 오히려 소비자의 신뢰도가 높아질 수도 있다는 내용을 배운 적이 있다. 실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받은 작은 서비스 덕분에 오히려 차 한통을 구매하고 온 나를 설명하는 게 아닐까. 인생에서 실수보다 중요한 건 대처법이란 걸 차를 사며 다시금 깨달았다. 


나이 들어서 하는 여행의 장점 | 프로틴 과자 


두바이에서 수많은 새로운 장면을 보았지만 가장 신기한 것은 이전 여행까지 내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분명 예전에도 있었을 텐데 지금의 나만 볼 수 있는 것들.
마트에 진열된 비건 식품과 프로틴이 그 예 중 하나다. 삼 년 전에는 외국에 이렇게 비건 식품이 많은 것을 알지도 못했다. 베지테리언 이냐는 질문을 받은 것조차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헬스장 근처에 가보지도 없던 내가 프로틴이 눈에 보일 리도 없고. 이번 여행에서는 마트에서 프로틴 과자를 집어 들었다. 한국에서 보지 못하던 수많은 식물성 단백질 식품에 한참을 코너 앞에 서있었다. 

소비자로서의 경험이나 가게의 브랜딩에 대해서 생각한 것도 처음이다. 현지인 맛집인지 관광지인지 정도를 구분했지 그 이상으로 이 가게에서는 어떻게 소비자에게 접근하고 어떤 경험을 주고 싶어 하는지를 해외여행에서 깊이 고민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라이브 펍에 간다거나 낮술을 하는 것도 첫 배낭여행에서는 없던 일이다. 


여행은 젊을 때 하는 거라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며(아직은 이 표현을 쓰기에는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가는 여행은 내게 더 넓은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취향은 새로운 곳에 갔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닐 수 있게 해 주고, 생각은 더 밀도 높게 그곳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여행을 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온 새로운 곳에서 보이는 것들이 많아진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때로 여행은 일상 속에서 내가 얼마나 부지런히 취향과 생각을 쌓아왔는지도 보여주는 기회일지 모른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통해 나를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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