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의 불빛이 드디어 우리의 안 방으로 들어오다(2).

저장 강박증 엄마와 살고 있습니다.

by 생각잡스 유진


가난은 어린아이조차도 철들게 만든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엄마를 대신해서 아기를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니 철부지 개구쟁이 6살 아이도 어른이 된다.

지금 우리집 막둥이의 나이다.

이제야 스스로 해내는 일들이 하나씩 늘고 있는 막내.

그렇게 생각해보니 나의 6살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6살 아이는 언제 배웠는지도 모르게 갓난쟁이 아기에게 우유를 타 먹이고 어부바를 해서 낮잠을 재우고, 우는 아기에게 노래도 불러준다.

아이에게 아기를 맡기고 일 나간 엄마는 얼마나 불안하셨을까.


큰 애가 6살이 되었을 때 아침 강의가 있어서 집에 혼자 두고 나와야 할 때가 있었다. 남편과 둘째는 시댁에 가고 부재중이었다. 2시간 동안의 강의였는데 강의 내내 안절부절이었다. 혼자 있는 딸 걱정에.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순간이다.



새벽녘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을 옷을 챙겨입고 나가는 엄마의 실루엣은 어른의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두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엄마의 빈자리와 두 동생도 지켜야 하는 마음이.

그때,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엄마 손에 들려 있던 달콤한 간식.

콩국도넛.

어른이 되어서 안산역 근처에서 다시 보게 콩국은 옛기억을 한번에 몰고 왔다. 완전히 잊고 있던 등대의 기억을 말이다. 따끈하고 구수하던 콩국물에 쫄깃한 찹쌀빵이 녹아있던 그 음식은 엄마의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었다. 따끈한 국물은 두려웠던 마음을 일순간에 물러나게 한다.



엄마, 등대를 벗어나기로 결심하다.

9살이 되던 해, 우리는 등대를 벗어나 아파트 살이를 하게 되었다. 말이 아파트지 30세대도 채 되지 않는 나홀로였다. 한 지붕 아래 여러 채가 있는 것은 등대의 생활과 같지만, 단단한 철문으로 집집마다 자신의 공간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예전 셋방과는 다르다. 같은 툇마루에 미다지 문으로 옆집을 나누던 그 집과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엄마가 등대에서 벗어나려고 결심한 것은 사소한 일에서이다.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받는 무시는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목표를 가지게 한다. 목표는 사람을 무섭게 만든다.


엄마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아랫집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들렸다.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갔다.

방문을 여는데 아랫집 아주머니가 빠른 손동작으로 이불로 무언가를 덮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눈치없는 딸은 ‘엄마, 통닭냄새 나.’

엄마도 냄새로 이미 이불 속 '그 무언가'는 통닭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엄마는 얼른 전하려는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이후로 이곳을 벗어나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고 한다.

‘꼭 잘 살 거다.’

통닭이 목표를 만들어주는 순간이다.

엄마는 지금도 말씀하신다.

먹는 걸로 그러면 안된다고. 먹는 걸로 그러면 그 상처는 오래간다고.


엄마는 후덕한 인상에 인심 좋은 아줌마이지만 독한 면도 있었다.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여자다.

그리고 우리는 4년 만에 우리집을 가지게 되었다. 방세 칸에 화장실 하나가 있는 아파트.

목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가난에 대한 무시를 받을 때마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던 엄마는 마음속에 품은 목표들을 티내지 않고 하나씩 이뤄냈다. 그리고 후일에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때 그런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려고 했지.’

지금 와서 들어보면 엄마는 다 계획이 있었다.



가난하다고 체념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은 엄마의 젊은 날이 찬란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셔서.

통닭의 기억, 상처는 오래갔다. 엄마에게.

아파트를 장만하고 나서 엄마가 시작한 일은 프랜차이즈 통닭집(그 기억이 그렇게 이어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통닭집 사장님이 되고 나서 세 딸에게 가장 먼저 해 준 것은.

1인 1닭.

딸들에게 실컷 먹어보라고 엄마는 통닭 세 마리를 튀겼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렇게 남의 집에서 맡은 통닭 냄새에 몇 년을 가슴 아파하던 엄마는 원없이 통닭을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