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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Jun 30. 2023

부부(不否)

아닐 부, 아니 부

부부(不否)      

이렇게도 안 맞아 부부(不否)인가. 아닐 부, 아니 부, 아니아니아니 부부


어디선가 본 것처럼 “당신은 내 인생의 로또 같아. 맞는 게 하나도 없어.”라더니 진짜 맞는 게 그다지 없다. 성격도 취향도 심지어 외모도. 누가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우린 날로 달라지고 있는데 말이다. 


소 같은 눈을 하고 있는 남편과 족제비 같은 눈을 하고 있는 나. 두리뭉실한 체격의 남편과 나날이 말라가고 있는 나. 부부라고 소개하기 전까지는 두 사람이 같이 서 있어도 부부처럼 안 보일 게다. 

성격 좋아 보이는 남편은 예민하고, 성격 깐깐해 보이는 나는 둔하다. 

술취향도 남편은 소주, 나는 맥주. 

과묵할 것 같은 남편은 은근 말이 많고, 말하기가 천직처럼 보이는 나는 오히려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말을 안 한다.  

텍스트를 좋아하는 나, 영상을 좋아하는 남편.

꼼꼼한 성격의 남편, 매사 대충대충 훠러릭인 나. 

어린 시절도 산골에서 자란 남편과 바닷가에서 자란 나. 허허. 그러고 보니 자란 환경도 정반대네. 

남편은 산속에서의 추억을 종종 이야기하고 나는 바다에서의 추억을 말한다.

나열해 보니 줄줄이 나온다. 

그 외에도 여럿 있지만 생략.      


그러다보니

이틀이 멀다하고 싸운다. 미묘한 감정 차로 시작되는 싸움은 신혼 때는 큰소리를 내며 서로를 이기겠다고 싸우고 지금은 말 안 하고 얼마나 버티는지를 겨루며 싸운다. 

솔직히....난 아쉬울 게 없다. 말 안 하고 지내도.      

최근에도 사소한 문제로 싸웠다. 내 뒤통수에서 쉰 남편의 한숨으로 싸움은 시작됐다. 할 말이 있으면 하고 해결하면 되는데 말없이, 체념하듯 쉬는 한숨은 못 참는다. 그 속에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 말하고 싶은 게 많지만 말해서 뭐해. 내가 참고 만다.’

일하고 들어와서 옷도 제대로 못 갈아입은 상태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럴 때 뒤통수에서 한숨을 내쉬니 그냥은 못넘어 간다. 

“뭐? 왜 한숨인데?”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왜 시비야.”

“한숨이 말을 하잖아.”

“한숨이 무슨 말을 해. 그냥 쉰 건데.”

“내가 오빠하고 산 세월이 12년째야. 숨소리만 들어도 메시지가 들려.”

“뭐라는 거야.”

그날따라 조금 예민했던 탓도 있었겠지만 분명 한숨에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날 이후로 일주일가량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왔다. 아버지 기일을 기점으로 일주일 전부터 말을 하지 않았던 우리 부부는 이날이 고비다. 

‘어쩌지. 말하기 싫은데. 어떻게 이날을 지혜롭게 넘길까.’

음식과 상차림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우리 두 사람은 눈 한 번 맞추지 않는다. 

시선 피하기. 

동생 내외가 오고 제사를 모두 지내고 저녁밥을 먹는 시간 필요에 의한 한 두마디씩 건넨다. 

아주 간단명료하게. ‘여기, 이거. 저기’

이 세 마디로 대화는 충분히 이루어진다.      

분위기 감지가 빠른 동생 내외가 눈동자로 말을 한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싸웠어?’

‘어......’


저녁과 함께 자연스레 술이 한 두잔 오갔다. 

술은 뾰족한 마음을 둥글게 만드는 마법의 물이다. 

오가는 술잔에 어느새 말도 오가고 시선도 오가고. 

잠시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 복도에서 남편과 마주쳤다.

“당신은 왜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

남편은 원망스런 말투로 말한다. 

“내가? 그런 적 없는데, 자주 했는데.”

가만히 떠올려보면 고집이 진짜 센 건 내 쪽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밖에서는 잘하는데 집에서는 잘하지 않는다. 

남편과 문제가 생겼을 때도 끝까지 하지 않는 말이 미안해다. 

미안해하고 사과해 버리면 모든 문제가 나로 비롯되었다고 인정하는 것 같아. 싫다.      

‘미안해’

속으로 한마디 하고, 눈빛으로 전했다. 끝까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미안해.      



아버지의 기일. 

아버지의 임종날. 

내가 결혼하기 정말 잘했구나, 평생 이 고마움을 남편에게 전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그날이다. 엄마와 나, 동생들은 슬픔에 잠겨 챙겨야 할 일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맏사위인 남편은 모든 걸 해결해주었다. 

아버지를 자신의 고향 선산에 모시고 가서 묘터를 다지고 묘를 만들 수 있게 해 준 것도 

남편이다. 



딸밖에 없는 집에서 든든한 아들 노릇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대소사는 모두 남편이 해결해준다.

‘그랬구나. 우리 남편이...’

아버지의 기일은 그 마음을 다시 떠올려주는 특별한 날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잘 하지 못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자주해야겠다. 


아..그러고 보니 맞는 부분도 꽤나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장남, 장녀라는 점. 

학창시절 운동을 했다는 점. 

어학을 전공한 점.

술을 좋아한다는 점. 

멘탈이 강하다는 점.


아버지의 기일날 부부((不否)는 어느새 부부(扶附, 서로 돕고 의지하다)가 되어있어다.

고마워. 남편.          

브런치글은 이혼이야기를 써야 조회수가 잘 나오던데,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이번에도 조회수는 안나오겠네. 

그래도 고마워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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