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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Feb 16. 2024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인생은 정극이 아닌, 코미디

 

이른 새벽, 일어나 가장 먼저 화장실을 찾는다. 변기 위에 앉아, 반쯤 감긴 눈을 번쩍 뜨려고 애쓴다. 

그때 들어버렸다. '쫄쫄쫄'. 

시냇물이 흐르는 자연 속도 아니고, 아무도 깨지 않은 조용한 화장실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인지는 이내 눈치챘다. 바로 위층에서 소변을 보는 소리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내 머리 위에서 누군가 대소변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천장을 한 번 쳐다본다. 우리 집은 2층이다. 18층 아파트니, 그러니 내 머리 위에서 볼일을 보는 집은 16가구다. 모르고도 그냥 잘 살아갈 수 있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괴로웠던 적이 있던가.     

때마침 잠에서 깬 남편에게 말한다.

"이사 가자."

"무슨 소린지. 이 새벽에.."

"단독주택이면 좋겠어. 그러면 좋겠어."

방금 전 들은 민망한 소리를 예로 들어가면서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단독주택으로 가길 바란다며, 이게 다 아이들을 위한 거라 둘러댔다. 사실, 주택에 대한 오랜 로망이 있었는데 머리 위 화장실 상상은 확신을 안겨준 거다.     



저녁을 준비할 무렵, 아파트의 안내 방송이 시작된다. 이른 새벽에 화장실을 사용해서 잠을 잘 수 없다는 민원이 들어온다. 너무 이른 새벽에 화장실 사용은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너무 이른 새벽에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에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또다시 새벽 생각이 떠올랐다. 내 머리 위에....     



남편이 힘겹게 회사를 다닌다. 이번 사장은 지역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동향이 아닌 직원들을 은근히 따돌리며 힘들게 한다고 한다. 하루 이틀 들었을 때는 남편 대신 사장 욕을 하며 간접적 투쟁을 해주었다. 1년이 넘어가고 2년째가 되니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남편이 안쓰러워,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든 말든 그곳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라고 했다. 가정이 있어 사표는 안 될 것 같고, 휴식기를 갖고 싶다는 남편에게 그럼 아무 생각 말고 딱 1년만 쉬라고 한다. 20년이 넘게 회사에 충성한 남편에게는 부당한 대우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평소 회사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남편이 최근에 자주 이야기를 꺼낸다.     

"오빠,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자신만 생각해. 가족도 아니고, 회사는 더더욱 아니야. 오빠 자신만 생각하라고! 오빠가 죽겠는데 다른 사람 생각은 왜 해.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     

한층 더 격앙된 목소리로, "오빠 멋대로 살아라고!! 제발 책임감 따윈 버리고!"     

"그래도 돼?"

"어, 그래도 돼!!"     

마치 어린아이처럼 어른에게 허락받듯 '그래도 되냐'는 말을 연거푸 한다. 결심이 선 듯한 표정으로 호기롭게 출근한 남편이 퇴근해서 한다는 말이,     

"그런데,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내가 회사를 그만두거나 휴식기를 갖는 건 내 손해인 것 같아. 그냥 버틸 거야. 어차피 조금만 더 버티면 사장은 바뀔 거고. 그때까지 버틸 거야. 보란 듯이."     

눈물이 날 것 같은 이 남자의 책임감에 감동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오빠."

"응."

"오빠, 사장 사무실 몇 층이야."     

일전에도 회사를 찾아가서 내가 사표를 집어던지고 오겠다고 한 적이 있어서 남편은 이번에도 그럴 거냐는 듯이 묻는다.     

"그게 아니고. 안 찾아갈 테니 사장 사무실이 몇 층에 있냐고!"

"8층에 있어. 그런데 왜?"

"음... 좋아! 이제 앞으로 화장실은 9층으로 가."

"잉?"

"9층에도 화장실 있지?"

"그럼, 있지."

"앞으로 사장이 열 받게 하면 9층 가서 똥을 누라고.떵을~~!!!마니~~"

"............................................................................"     

세상을 온몸으로 진지하게 살아가는 남편에게 나의 조언은 실소도 터지지 않는 어이없는 이야기다.

 대답도 하지 않는다.     




몇 달 뒤, 남편의 직장 상사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제수씨~! 저도 요즘 9층 화장실 가요."

"네???..........................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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