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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Feb 19. 2024

타인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은 어쩌면 나를위한 일일지

인생은 코미디가 아닌 정극.

주말 아침은 여느 평일보다도 바쁘다.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겠다는 의무감이 앞서는 날이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한다.

몇 주전 지인이 알려준 송도 세계문자박물관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거리와 입장료, 주변 볼거리를 검색한다. 무료입장이라는 문구가 반갑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입장료가 부담스러운 전시도 종종있다.




50분의 거리를 달려 오전 10시 30분쯤 도착했다. 10시 개장의 박물관은 조용하다. 우리가 첫 손님인 것 같기도 하다. 안내데스크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릴 향했다. 천방지축 삼 남매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한 아이가 한마디씩만 해도 듣는 사람은 나 혼자여서 몇 마디만 오고 가면 머리와 귀가 아프다. 한창 말하기 좋아하는 나이인 일곱 살의 막내는 종일 재잘거린다. 입장객이 없는 조용한 전시관과 박물관은 가끔 부담스럽다.  

1층의 기획전시를 먼저 보고 지하의 상설전시로 내려가기로 했다.


'문자와 삽화-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를 만나다' 라는 특별전시가 있다. 삽화는 글의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책에서 먼저 시작하였다고 한다. 종교와 문자는 깊은 관련이 있다. 종교로 인해 문자의 발달, 인쇄술의 발달에 박차를 가했다고 할 수 있다. 1층 전시장에 그림과 종교와 문자를 전시해둔 이유, 그리고 종교적 자료들을 배치해 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자와 종교의 관계는 인류 역사 속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다. 종교적 신념과 가르침의 보급을 위해 문자가 발전했으며, 인쇄술의 진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관계성은 여러 역사적 사례를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성경의 대중화는 문자 해독 능력의 향상과 함께 인쇄술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는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종교적 문서의 기록, 보존, 전파를 위한 수단으로서 문자와 인쇄술은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하상설전시실로 가면 ‘세계문자와 인류 문명의 위대한 여정’이라는 주제로 쐐기문자, 이집트문자, 한자, 한글 등 문자 55종의 유물과 지털 이미지를 통해 문자의 역사를 보여준다. 9개의 주요 나라의 언어로 제공되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나 이집트 피라미드 형태의 전시관 내부를 체험해 볼 수 있어서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내부 전시물들은 잘 정돈되어있고 관람하기 편안한 동선이었다.      

둘째 아이가 한 곳에 머물러 눈을 떼지 못한다. 무엇인가 싶어 다가가서 보니, 맹인들을 위한 점자, ‘훈맹정음’의 전시였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백성을 위한 한글에서 따온 이름으로 맹인들을 위한 ‘훈맹정음’은 자음과 모음을 점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훈맹정음의 기원, 박두성 선생의 친필로 쓴 점자의 필요성은 한참을 들여다보며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 타인을 향한 깊은 이해와 배려의 표현이 ‘훈맹정음’으로 탄생한 것이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의사소통을 보다 쉽게 만들고자 창제한 문자다. 모든 백성이 평등하게 배움의 기회를 가지고 글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했으면 하는 애민의 마음이 바탕이 된 결과다. 세종대와의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박두성 선생님이 개발한 훈맹정음도 따뜻한 시선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훈민정음이 있다면,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훈맹정음이 있어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닫히고 세상도 닫히고 맙니다.”

박두성 선생은 말한다. 자신은 좋은 일이라고 해서 한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을 하느라고 한평생 지나온 것일 뿐이라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저 필요한 일을 한 것 뿐이라고 말하는 박두성 선생의 뜻이 나에게 잘 전해졌다.

타인을 향한 깊은 이해와 공감은 어떠한 형태로선 선순환되어 돌아온다. 세종대왕의 뜻이 박두성선생에게,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와닿은 것처럼 말이다.      


박두성 선생님의 겸손의 말처럼 우리가 타인을 위해 하는 일은 어쩌면 나, 너, 우리를 위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좀 더 밟은 곳으로 데려다 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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